자전거성지순례 – 죽산성지

1.
과천성당 부림지역의 달 행사로 죽산성지를 다녀왔습니다.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죽산성지는 그동안 자주 찾았던 성지와 많이 다릅니다. 죽산성지는 이름난 양반 순교자가 없습니다. 이름이 찾은 25분의 순교자들은 힘없는 백성입니다. 이전의 박해와 달리 병인박해에는 일반 백성들이 주로 탄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이렇게 잡힌 백성들은 서울까지 압송하지 않고 죽산에서 사형을 시켰습니다. 사형을 하더라도 모진 고문을 반쯤 죽은 상태에서 참수와 같은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산성지는 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형장입니다. 박해 시대의 신앙선조들은 순교를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로서 위주치명(爲主致命)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로 인하여 신부님은 신앙선조들의 순교를 적색순교(赤色殉敎)라 말하십니다.

이름있는 순교자들이 남긴 신안의 증거들이 많고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백성들의 순교라고 하여 덜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고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신부님이 강론때 소개하신 홍치수 프란치스코 순교자의 삶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홍치수 프란치스코 순교자는 부부가 같이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을 걱정한 어린 아들이 먼 길을 와서 감옥에서 밥을 조금씩밖에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구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든 주먹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전해주려 하였습니다. 감옥을 맡고 있던 관리들은 “너무나 배가 고픈 천주쟁이들이 밥을 보면 눈이 뒤집혀 서로 싸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감옥으로 아들을 데라고 갑니다. 그러자 홍치수 프란치스코는 아들이 가져온 주먹밥을 조금씩 감옥에 있던 형제,자매들에 나누어주고 부부는 굶습니다. 이를 본 아들이 크게 울며 다시 구걸을 하여 더 큰 주먹밥을 만들어 옵니다. 감옥에서 주먹밥은 받은 홍치수 프란치스코가 주먹밥을 나누어주려고 하자, 형제, 자매들이 “같이 먹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하여 똑같이 주먹밥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몇 일후 아들을 만난 홍치수 프란치스코는 조사가 끝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에 아들은 “부모님과 같이 죽겠다”고 하지만 부모님은 “감옥에서 더 어려운 이를 위하여 주먹밥을 나누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집으로 돌아가 집안을 세우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순교보다 값진 순교이다”라고 하여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몇 일후 죽산에서 순교합니다.

이상의 삶을 소개하시면 신부님은 적색순교가 아닌 백색순교를 말하셨습니다. 빨강 피가 아닌 하얀 땀으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를 끊어 버리고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순교하는 마음으로 작은 순교를 실천할 때, 그 삶이 백색순교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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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산성지를 조성할 때 무명씨 순교자들의 유품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유품들을 모아서 무명순교자의 묘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품이 발굴된 곳에 나무로 표시를 하고 방향을 묘역을 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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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으로 성지를 찾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화전을 일구고 그릇을 빗으면 살았던 신앙선조들에게 신앙을 생활이고 생활의 빛이었을 듯 합니다. 사랑은 먼 곳에 있지 아니하고 가까운 곳, 나보다 낮은 곳에 있습니다. 다시금 자전거로 다녀올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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