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부분적인 은행 국유화가 이루어지고 국가에서 지급보증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이런 논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그룹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찬성하는 그룹속에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그룹중 두개의 글을 옮겨봅니다.
2. 아래글은 후쿠야마교수가 뉴스위크에 기고한 글입니다.한글본은 내일신문에 번역한 기사입니다.(전문번역)
후쿠야마 교수의 ‘미국주식회사의 몰락’
규제완화로 시장질서 문란 … 이라크 침공으로 민주주의 후퇴
‘역사의 종말’을 통해 공산주의 몰락을 예고해 세계석학 대열에 올랐으며 국가(State)의 개입이 강대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효과적인 관료체계를 중시할 것을 주장한 미국 존스 홉킨스대 프랜시스 후쿠야마(Fukuyama·사진) 교수가 금융위기에 봉착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의 붕괴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0월 13일자 뉴스위크 최신호에 게재된 ‘미국 주식회사의 몰락’(The Fall of America Inc.)이란 기고문에서 현 상황은 감세와 규제철폐로 대변되는 레이건 시대의 종언이라면서 미국이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감세와 작은 정부를 버리고 금융기관에 대한 강한 관리감독을 실시하며 공공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따라 국가와 관료체계의 시장개입을 반대하는 논리가 확산된 한국사회에서 독자들이 음미할 만한 내용이다. 이를 세 차례에 걸쳐 전문을 게재한다.
미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의 파산. 하루만에 1조달러 가치 주식의 휴지조각화. 미국 납세자들에게는 7000억달러라는 계산서.
월스트리트의 붕괴 규모는 이보다 더 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미 국민들 스스로도 왜 자신들이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같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는 이미 금융시장 붕괴로 미국이 치러야할 보다 큰 대가는 미국 ‘브랜드’에 대한 타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념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통령에 선출된 이래 본질적으로 두가지 미국의 이념이 세계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첫번째 이념은 낮은 세금과 가벼운 규제, 작은 정부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특정 시각이다. 레이거니즘은 한 세기간 이어져온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규제철폐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당대의 질서가 됐다.
두번째 이념은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후원자로서의 미국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보다 번영되고 개방적인 국제질서 가는 최상의 길로 인식됐다. 미국의 파워와 영향력은 무기와 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의 민주정치 형태를 매력적으로 보고 그들이 속한 사회도 같은 노선에 따라 발전하기를 바라는 데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조지프 나이 정치사회학자는 이를 ‘소프트파워’라고 명명했다.
미국 브랜드의 신용이 얼마나 떨어질 지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2002~2007년 사이 세계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을 동안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 중남미 포퓰리스트들이 미국의 경제 모델을 ‘카우보이 자본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을 무시하기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성장의 동력인 미국 경제가 선로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를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위험에 처해있다.
더 나쁜 것은 범인이 바로 미국식 모델이라는 점에 있다. 작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미국정부는 금융부문을 적절히 규제하는데 실패했고 사회전반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도록 내버려뒀다.
민주주의는 이보다 먼저 퇴색했다. 사담 후세인이 WMD(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을 보다 광범위한 ‘자유 아젠다’와 연관시키며 이라크전쟁을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갑자기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무기가 됐다.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레토릭은 미국의 헤게모니 조장을 위한 변명으로 들리게 됐다.
우리가 현재 당면한 선택은 구제금융 투입이나 대선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미국 브랜드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다른 모델들이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혹독한 시험을 거치고 있다. 우리의 뛰어난 명성을 회복하고 우리 브랜드의 매력을 되살리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금융부문을 안정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도전과제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대선 후보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둘 중 누가 승리하던 수년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미국식 모델의 무엇이 건전하고 무엇이 잘 이행되지 못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분명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싸움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
많은 언론과 미디어 논평자들이 월가 붕괴가 레이건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지적했다. 이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지적이 의심할 여지없이 정확하다.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11월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은 변함없다. 위대한 이념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 상황 속에서 탄생한다.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이념이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가 세대를 주기로 좌에서 우로 이동하고 또 뒤로 되돌아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레이거니즘(혹은 영국의 대처리즘)은 그 당시에는 옳았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후 전 세계 정부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1970년대, 관료적 형식주의에 의해 숨이 막힌 큰 복지를 내세운 국가와 경제는 커다란 기능장애가 있음이 계속해서 입증됐다. 그 당시는 전화가 비쌌고 구하기 어려웠다. 또 비행기 여행이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으며 대다수 사람들이 정부 조절 하에 낮은 이율을 지급하는 일반은행에 저축하던 때였다.
‘부양 자녀가 있는 가족 지원’(AFWDC)과 같은 프로그램은 저소득 가정이 일하고 결혼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했으며 결국 가정은 와해됐다. 레이건-대처 혁명은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함으로써 전통산업이 위축되거나 문을 닫게 돼 엄청난 고통을 유발했다. 하지만 동시에 30여년간의 성장과 정보기술과 생명공학과 같은 새 산업부문 출현의 토대를 마련했다.
국제적으로 레이건 혁명은 ‘워싱턴 컨센서스’로 해석된다. 워싱턴 컨센서스 하에서 미 정부와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IMF(국제통화기금), WB(세계은행)와 같은 기관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제를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같은 포퓰리스트들로부터 일상적으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초인플레이션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을 괴롭혔을 때 이들 국가의 부채 위기의 고통을 성공적으로 완화해 준 것이 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였다. 이와 유사한 시장 친화적 정책들이 중국과 인도를 오늘날의 경제적 발전소로 변모케 했다.증거를 더 원한다면 세계의 가장 극단적 큰 정부의 예인 소비에트연방과 기타 공산국가의 중앙계획경제를 살펴보면 된다.
1970년대까지 이들은 거의 모든 점에서 자본주의 경쟁자들에게 뒤져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이들의 몰락은 강압적 정부주도의 강력한 복지국가의 역사적 종점에 다다랐음을 분명히 했다.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구조전환적 운동과 마찬가지로 레이건 혁명 역시 많은 추종자들에게 과도한 복지국가에 대한 실용적 대안이 아닌 완전무결한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길을 잃었다. 다음 두 가지 개념은 신성불가침이었다. 첫째 감세가 자기금융이 돼야 한다는 것과 두 번째는 금융시장이 자기조절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세=성장촉진 신화
1980년대 이전 보수주의자들은 재정적으로 보수적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보다 더 많이 지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거노믹스는 소위 ‘래퍼곡선’으로 불리는 모든 감세가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정부는 결국 많은 수입을 거둬들인다는 개념을 도입했다.
실제로는 전통적 관점이 옳았다. 지출을 줄이지 않고 세금을 감면하면 결국은 파괴적인 손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1980년대 레이건 감세는 큰 적자를 유발했다. 반면 1990년대 클린턴 증세는 흑자를 유발했으며 21세기 초 부시 감세는 보다 큰 적자를 유발했다. 하지만 왠일인지 클린턴 집권기에 미국 경제가 레이건 시대만큼이나 급속히 성장한 점은 감세를 확실한 성장 열쇠로 보는 보수적 신념을 흔들어 놓지 않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화가 수십년간 이같은 논리적 결함을 가렸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끝없이 미국 달러화를 쥐고 놓지 않으려는 자세였고 이는 미국 정부가 고성장을 누리면서도 적자에 빠지도록 했다. 어떤 개도국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딕 체니 부통령이 초창기에 부시 대통령에게 “1980년의 교훈은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거듭 말한 것도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였다.
레이건 시대 2기의 신념인 금융규제 철폐는 실제 신봉자와 월가 기업들의 부정한 동맹으로 밀어붙여졌으며 1990년대에는 민주당의 신조로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은 대공황 당시 도입된 상업은행을 투자은행 업무로부터 완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과 같은 오래 계속되는 규제가 혁신을 방해하고 미국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옳았다. 하지만 규제철폐는 현 금융위기의 핵심인 CDO(부채담보부증권)와 같은 파생상품의 홍수를 유발했다. 어떤 공화당원들은 여전히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헤지펀드를 위한 보다 큰 세금감면을 수반하는 구제금융법안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증거다.
문제는 월가가 실리콘밸리와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적은 규제의 손이진정으로 유익하다. 금융기관은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정부가 그들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다른 사람의 돈을 취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억제할 경우에만 번창할 수 있다. 월가가 실리콘밸리와 다른 또 다른 이유는 금융기관의 붕괴가 주주와 직원뿐 아니라 많은 무고한 방관자들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부정적 외부성’(negative externalities)이라고 부른다.
레이건 혁명이 위험하게 표류하고 있다는 조짐은 지난 10년에 걸쳐 명확해졌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조기경보였다. 태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조언과 압력에 따라 1990년대 초 자본주의 시장을 자유화했다.
대량의 핫머니(투기성단기자본)가 이들 국가로 흘러들어 투기적 거품을 유발하고 문제의 조짐이 보이자마자 다시 급히 빠져나갔다. 어디서 들어본 얘기 아닌가. 한편 미국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금융시장을 걸어 잠그거나 엄격한 규제를 실시한 중국과 말레이시와 같은 나라들의 경우 훨씬 덜 취약했다.
아시아금융위기는 조기경보
두 번째 위험 신호는 미국의 누적된 구조적 적자다.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1997년 이후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자국 공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금융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포스트 9·11의 미국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세금을 감면할 수 있었으며 야단스런 소비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또 비싼 2개의 전쟁비용을 지불하고 동시에 적자예산을 펼칠 수 있었다.
이로인해 비틀거리면서 늘어만 가는 무역적자는 2007년 한해 7000억달러의 손실을 내며 유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조만간 외국인들은 미국이 자신의 돈을 쌓아 두기에 썩 훌륭하지 않은 장소라는 판단을 할 것이었다. 미국 달러화의 하락은 우리가 그 상황까지 왔음을 보여준다. 명백히 그리고 체니 부통령의 말과는 반대로 적자는 중요한 문제다.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레이건 시대는 이전에 이미 종식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부는 민주당이 설득력 있는 후보와 논거를 제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유럽과는 매우 다른 미국만의 특성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교육수준이 낮은 노동자 계층은 확실히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근거해 사회당이나 공산당 혹은 다른 좌파성향 정당에 표를 던진다. 미국의 경우 이들 계층은 좌우 어느 쪽으로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들은 뉴딜 기간 동안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 민주연합 편에 섰으며 이는 1960년대 린던 존슨 대통령 하의 ‘위대한 사회’기간 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닉슨과 레이건 시절에는 공화당에 표를 던지기 시작해 1990년대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하에서는 공화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교육수준이 낮은 노동자 계층이 공화당에 표를 던질 때는 종교나 애국심, 가정의 가치, 총기 소지와 같은 문화적 이슈가 경제적 이슈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다.
이 유권자 그룹은 다가올 11월 대선을 결정지을 것이다. 특히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몇몇 요동치는 주에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버드 교육을 받았으며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반영하는 오바마 후보로 방향을 틀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쉽게 동일시 할 수 있는 매케인이나 페일린을 고수할 것인가.
민주당 행정부가 집권하는데는 1929년에서 1931년의 대공황이 필요했다. 여론조사는 2008년 10월 우리가 또다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브랜드의 또다른 결정적 구성요소는 민주주의와 전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의 의지다. 이 이상주의적인 미국의 외교정책 노선은 우드로 윌슨의 국제연맹에서 루즈벨트의 ‘4개의 자유’를 거쳐 레이건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향한 “이 장벽을 무너뜨리자”라는 촉구로까지 지난 세기 동안 변함없이 유지돼왔다.
외교와 민간 사회단체의 지원, 자유미디어 등을 통한 민주주의의 촉진은 단 한번도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라크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이용함으로써 부시 행정부가 많은 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군사개입과 정권교체를 위한 용어로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이라크에서 벌어진 혼란 역시 민주주의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중동은 미국이 사우디와 같은 비민주국가를 동맹으로 지지하고 선거를 통해 집권한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단체와 공조하기를 거부하면서 민주당이 됐던 공화당이 됐던 미 행정부에게 지뢰밭이다. 미국은 ‘자유 아젠다’를 옹호할 때 더 이상 큰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
미국식 모델은 부시 행정부의 고문 사용으로 크게 손상됐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안보를 위해서라면 헌법적 보호는 참혹하리만치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관타나모베이와 아부그라이브에서 얼굴에 두건을 씌운 죄수는 많은 비 미국인의 눈에 자유의 여신상을 대신해 미국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민주당 영향력 확대될 듯
지금부터 한달 후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던 미국의 새로운 시대와 세계 정치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월가의 붕괴가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로 확산되면서 거대한 포퓰리즘적 분노가 일어나려고 한다. 경제의 많은 부분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갈수록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패권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8월 7일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이 이를 뒷받침한다. 무역협정과 IMF·세계은행으로 글로벌 경제를 실현하는 미국의 능력은 축소될 것이다. 미국의 금융자본 역시 줄어들 것이다. 또 세계 많은 곳에서 미국의 이념과 조언, 심지어 지원조차 이제까지와 달리 덜 환영받게 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재브랜드화를 위해 누가 더 좋은 위치에 있는가. 버락 오바마 후보는 분명히 최근의 과거로부터 최소한의 짐을 갖고 있다. 또 그의 초정당적 스타일은 오늘날의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 나아갈 것을 모색한다.
그는 실제로는 이론가가 아닌 실용주의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합의구축기술은 공화당원뿐 아니라 제어하기 어려운 민주당원을 공동의 목표 아래 하나로 모아내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비로소 검증될 것이다.
매케인의 경우는 최근 몇주간 테디 루즈벨트와 같이 월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크리스 콕스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발길질을 하고 고함을 쳐 공화당을 포스트 레이건 시대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공화당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 어떤 종류의 공화당원인지, 또 어떤 원칙이 새로운 미국을 정의하는지 스스로도 완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느낌을 주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은 결국에는 회복될 것이다. 전 세계가 다 같이 경기 침체로 고통받게 된 이후 중국이나 러시아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미국은 1930년대와 70년대 심각한 좌절로부터 회복했다. 미국 시스템의 적응력과 미국민들의 회복력 덕분이다.
하지만 또 한번의 회복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미국의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 먼저 우리는 레이건시대의 세금과 규제에 관련된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금감면은 기분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성장이나 소비를 촉진하지는 않는다. 장기적 재정 상황을 놓고 볼 때 미국인들은 앞으로는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야만 할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을 따라가기 위한 규제철폐나 조정자의 태만은 우리가 목격한 바와 같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지 않고 비전문화되고 비도덕적인 미국의 전 공공부문은 다시 구축되고 새로운 자긍심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 정부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다.
미국 브랜드 회복 가능
이같은 변화에 착수하면서 우리는 과도한 수정을 할 위험이 있다. 금융기관은 강한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경제의 다른 부문 또한 그러한지는 분명치 않다. 자유무역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강력한 원동력이자 미국의 외교적 도구다.
미국은 기존의 직업을 옹호하기보다는 근로자들이 세계의 상황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보다 나은 지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세금감면이 자동적인 번영을 향한 통로가 아니라면 자유로운 사회적 지출도 그렇지 않다.
공적자금 비용과 달러화의 장기적 약세는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책임한 재정정책은 자칫 문제를 가중시킬 수 있다.
보다 적은 비 미국인들이 미국의 조언을 들으려 하겠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레이건 모델의 특정 측면을 활용함으로써 혜택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금융시장의 규제철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럽대륙의 경우 근로자들의 긴 휴가와 짧은 근로일, 직업보장 그리고 다른 많은 혜택이 생산성을 저해하고 있다. 이는 재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위기에 대한 비계발적인 대응은 우리가 가장 큰 변화를 이뤄야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레이건 혁명은 50년간의 진보주의자와 민주당원의 집권을 깼으며 시대의 문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때 신선한 아이디어였던 것은 진부한 도그마로 딱딱하게 굳었다. 정치적 토론의 질은 생각뿐 아니라 반대당의 동기마저 문제 삼는 당파에 의해 조악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직면한 새롭고 힘든 현실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미국 모델에 대한 최종 시험은 스스로를 다시한번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 될 것이다. 대선 후보의 말을 인용하자면 뛰어난 브랜드화는 돼지에 립스틱을 칠하는 문제가 아니라 첫째로 팔 만한 적절한 물건이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에게 이를 위한 힘든 일이 맡겨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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