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과 고요사이에서

1.
3.
나이 때문인지 오랜동안 집중하면 머리가 멍합니다. 하는일이 모니터와 함께 해야 해서 겨울동안 몸에 쌓인 전자파도 한 몫을 할 듯 합니다. 봄맞이 일광욕 겸 산행을 합니다. 요즘 젊은 이에게 인기가 있다고 하는 관악산입니다. 관악산에서 기를 받으려고 오른다고 하네요. 조용헌이 쓴 칼럼에서는 이런 산을 화산이라고 합니다.

“화산(火山)은 어떤 산인가? 바위 봉우리들이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모양의 산이다. 가야산(합천)·설악산·달마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산들은 기도발이 잘 받는다. 기도발은 불꽃처럼 다가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문필봉을 좋아하지만 불교 사찰에서는 화산을 좋아한다. “

다만 경험상 기운을 받으려다가 바위의 기운에 눌려서 기운을 뺏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흙산을 다녀오면 몸이 가뿐한데 악산을 다녀오면 기운이 빠지는 분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강한 햇살아래 바위산을 오를 때 흘러내리는 땀이 저에게 보약과 같아서 자주 오릅니다. 남들이 다니는 등산로는 아니고 한적한 샛길같은 길입니다. 등산객이 거의 없는 길을 따라 능선 중턱까지 걷습니다. 맨 번 찾는 바위에 앉아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산들산들 봄바람이 땀을 식혀줍니다. 머리가 맑아집니다

2.
도시 사람들에게 농한기가 없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이들에게 휴가가 농한기일 듯 합니다. 이제는 농사가 먼나라 딴나라 사람들의 일인 듯한 도시생활입니다. 저도 도시인이지만 농번기도 있고 농한기도 있습니다. 김장을 마지막으로 25년 수녀원 농사일이 끝냈습니다. 새해가 밝아서 26년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토요일 첫 봉사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대부분 밭이 놀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이전보다 더 넓은 곳들을 비닐로 덮었습니다. 마을 이장님에게 부탁하여 지난 주에 작업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할당받은 작업은 고랑을 풀로 덮는 일이었습니다.
밭농사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이 잡초제거입니다. 한 여름 뙤약볕이 내리쬘 때 김매기를 하면 죽을 맛입니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 몇 달 죽을 고생을 합니다. 그래서 고랑을 폐 비닐로 덮었는데 이번에는 마른 풀로 덮네요. 폐 비닐에 난 작은 구멍을 뚫고 생명이 솟아나는데 물과 공기가 쑥쑥 흐르는 건초더미로 역부족일텐데 걱정입니다.ㅠㅠㅠ
밭옆에 고사리밭이 있습니다. 고사리뿐 아니라 여러 풀들이 자랐습니다. 특별히 제초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서 지난 겨울 생명을 다한 풀들이 말라서 밭을 덮고 있습니다. 이를 낫으로 짤라서 덮기로 하였습니다.
멀리서 본 고시라밭은 회색빛입니다. 여전히 겨울입니다. 겨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참나무때문에 항상 그늘인 곳에서 낫질을 하니까 검은 빛 흙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차가운 느낌입니다.

“아직 겨울이구나..”

자리를 옮겨서 볕이 잘드는 곳에서 낫질을 했습니다. 놀라운 모습입니다. 땅을 덮고 있던 풀을 베어내니까 푸릇푸릇한 새싹들이 여기저 자라고 있습니다. 쑥도 보이고 냉이도 보이는 듯 합니다. 봄이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봄은 땅속, 땅위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위대함입니다.
낡은 것을 걷어내고 새 것으로 채우는 일을 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개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보면 낡은 것이 세상의 중심인 듯 보입니다.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새로 움트는 싹을 봅니다. 싹을 잘 자라게 하려면 낡은 것을 걷어내는 낫질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싹이 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낡다고 하는 모든 것을 걷어낼 수 없습니다. 세상사 모 아니면 도는 없습니다. 누굴 죽이기 보다 새로운 것이 더 힘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밭에서 낫질를 하면서 오만 잡 생각을 합니다. 내 맘속에서 낡은 것을 걷어내면 무엇이 있을까, 사회의 낡은 것을 걷어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 가능할까…
그렇게 오전나절 농사일이 끝나갑니다.아! 봉사입니다.


3.
세상이 복잡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도피 방법중 하나가 드라마 시청.. 그래서 얼마 전부터 보고싶었던 드라마를 봅니다. ‘박하영 여행기’를 끝내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보고 있습니다. 오기미 나오코 감독이 만든 영화들, 카모네 식당, 안경, 토일렛, 요시노이발관을 좋아했는데 비슷한 창작물입니다. 갈등보다는 서로간의 이해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오늘 새벽에 본 에피소드는 ‘즐거움은 훈련되는 것’입니다.

장면중 익숙했지만 지금은 어색한 장면이 나옵니다. 한석규가 침대옆에서 간호를 하는데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느 때부터 병원을 가면 간병인이든, 가족이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봅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문화인 듯 합니다.
뒤돌아보면 무언가를 보는 것도 시간에 따라 달랐습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젊을 때는 신문을 보았습니다. 지하철 선반에 두고간 신문을 항상 애용하였습니다. 간간히 책도 읽었습니다. 아니면 눈을 감고 생각을 합니다. 느낌을 정리하기도 하고 주어진 과제를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는 것으로 바뀔 때 저는 묵주기도를 택하였습니다. 디지탈을 조금이라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어집니다. 다만 카톡같은 놈들 때문에 휴대폰을 보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보는 것을 멈추고 생각해야 하는데 몸은 편한 걸 하라고 합니다. 폰을 보면서 잊으라고 합니다. 그래도…
번역 작가인 강창욱은 암환자인 아내 정다정의 음식을 몸으로 하면서 바뀝니다. 생각도 바뀌고 관계도 바꿉니다. 음식은 마음으로 만들고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희망은 생존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영원한 생존은 불가능합니다. 끝이 있는 생명에게 희망은 무엇일지. 희망의 재정의를 고민해봅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계속 볼 예정입니다. 보려고 계획중인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싶지않아
여행을 대신해드립니다.

방영때 인기를 얻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잔잔히 편한 마음으로 생각의 여백을 줍니다.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