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간 자리

1.
설 명절부터 지금까지 기계처럼 일만 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은 기본이고 철야도 몇 번 했습니다. 몸이 굳어지고 머리는 멍해집니다. 크런치모드입니다. 프로젝트를 하면 항상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최초의 목표가 최후에도 목표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뀝니다. 기능적인 요구사항 보다 비기능적인 요구사항이 나올 경우 참 풀기 어렵습니다. 어떤 요구사항은 설계때부터 고려하지 않으면 풀기 어렵습니다.

지난 한달. 개인적으로 오직 하나에 집중했던 시기입니다만 넓게 보면 쓰나미가 지난간 자리의 허전함이 남아 있고 잿더미속에서 새싹이 움트는 변화도 느낍니다.

2017년말부터 불어닥친 비트코인의 쓰나미는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결말은 10,000 달러를 넘어서던 비트코인 가격의 폭락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곳곳에서 깡통계좌가 늘어나고 관심은 떨어지고 동계올림픽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고 다시금 북한이 전면에 등장하였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블록체인을 육성하기 위해 암호통화를 키우자는 쪽도, 암호통화 없어도 블록체인을 확대하자는 쪽도 찻잔속 움직임입니다. 국경없는 거래소로 자본유출을 시도하였던 세력도 목표를 달성했고 지하경제에서 흘러다니던 자금도 세탁하여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남은 세력은 순수한 투자(투기)목적으로 배를 탔던 그룹입니다. 각자도생만 남았습니다.

사실 2017년 중반부터 암호통화거래소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12월을 전후한 때는 더 늘었습니다. 입도선매를 할 입장도 아니고 현재 하는 일이 있기때문에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요청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 오래전에 유행하였던 복부인과 유사합니다. 돈이 되는 곳에서 일확천금을 노립니다. 기술의 축적도 아니고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떳다방이고 메뚜기 도박판일 뿐입니다.

되돌아보면 비정상의 정상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옥석이 가려집니다.

2.
ELW를 중심으로 한 고빈도매매가 한참 뜰 때 전문투자자들은 엄청난 돈을 쓸어담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몇 백억이라는 소문은 사실로 들어났습니다. 너도나도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시장은 급팽창을 하였고 증권사와 선물사는 너도나도 DMA서비스로 무장을 하였습니다. 저도 발을 담궜습니다. ZeroAOS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분위가 바뀌었습니다. 규제가 나오더니만 자금여력이 없는 곳부터 하나씩 시장에서 살아집니다. 외국인이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역시 백기를 들었습니다. 이 때가 2012~3년을 전후한 때입니다. 왁자지껄한 굿 한판이 벌어진 듯 잔치가 끝난 후 여의도는 쓸쓸했습니다. 북한이 겪었던 고난의 행군을 여의도도 시작해야 했습니다. IT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두해 시간이 흐른 후 핀테크가 떠오릅니다. 너도나도 핀테크를 외치고 뛰어듭니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로보어드바이저였습니다. 고빈도매매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로보어드바이저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IT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프로젝트나 제품으로 올릴 수 있는 이익과 다르지 않다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난 현재 로보어드바이저는 금융회사들의 잔치상이었습니다. 금융 대 IT간의 경쟁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금융만의 경쟁일 뿐입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성공한 회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비슷한 서비스를 추진했던 두나무도 암호통화거래소라는 이름으로 기억할 뿐입니다.

고빈도매매 – 로보어드바이저로 이어지는 흐름은 오래된 구호인 ‘매매의 기계화’를 말합니다. 보통 매매의 기계화가 100%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직도 트레이더의 직관과 판단에 의지한 매매가 많습니다. 여기서 변화가 있나 봅니다. 몇 곳에서 ZeroAOS를 문의합니다. 2010년 처음 기획할 때 고려했던 투자자그룹입니다. 거의 10년을 망하지 않고 제품을 유지하니까 평판이 쌓인 결과입니다. 넥스트웨어 시절에 꿈꾸었던 그림인데 지금에야 비슷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3.
2018년, 어떤 기억이 남을지 모르지만 하나 확실합니다. 개인기업이었던 트레이딩컨설팅그룹이음을 주식회사로 전환한 해입니다. 폭풍과 잿더미속에서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지만 도전은 계속 이어집니다.

크런치모드를 끝내는 3월말이후 벌려놓았던 일들을 수숩해야 합니다.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본 궤도로 올려놓아야 하고 하기로 했던 일들도 살펴야 합니다. 휴식과 팀빌딩을 같이 해야 합니다.

아직 주말 이틀을 온전히 쉬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루 쉰 토요일 관악산 둘레길에서 진달래를 만났습니다. 홀로 핀 꽃입니다. 남 보다 앞섰으니 그만한 고통이 따를 듯 합니다. 꼼샘추위에 떨어야 하고 바람을 온전히 맞아야 합니다. 그래도 잘 이겨내길 기도합니다.

2 Comments

  1. 권도훈

    권 전무의 희미한 모습이 지금 사는 나의 모습입니다. 집이나 회사나 점점 투명하게 보일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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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Post author)

      투명한 권전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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