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 애니메이션

1.
나이든다는 것은 주변에 무관심하고 관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긴 시간을 살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새로울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관심은 그 자체로 몸의 피로를 가져옵니다. 요즘 나뭇잎의 초록이 하루하루 변합니다. ?같은 녹색도 아래처럼 다양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녹색은 우리에게 그의 일생을 통해 그 빛깔로서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아기의 볼처럼 보드레한 연두색, 소년의 미소처럼 싱그러운 초록색, 젊은이의 기백처럼 풋풋한 녹색, 장년의 기품처럼 장중한 암녹색. 여린 연두색으로 태어나 연륜에 맞는 색깔로 살다 짙은 암녹색으로 마감하는 녹색, 우리네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녹색의 변화, 자연의 변화에서도 인생을 느끼는 세심함이 부럽네요.

그러기에, 초록(草綠)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淸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 염천(三伏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取捨)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淡綠)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素朴)하고 겸허(謙虛)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丹楓) 또는 낙엽송(落葉松)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雅淡)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이양하씨의 신록예찬중

시간을 이길 수 없지만 ?세심하게 보고 관찰하고 느끼고 성찰하는 것이 시간에 맞서는 방법이 아닐지.

2.
애벌레 애니메이션과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출근하는 버스안에서 잠깐 ‘샌드 아트’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황토흙으로 만든 초가집이 떠오릅니다. 따뜻함이 느껴지고 세월의 풍파속에 빛 바랜 낡은 초가집의 어둠도 느껴집니다. 빛과 어울려 표현하는 어두움과 밝음의 예술입니다. ?마치 시간과 어울려 다른 느낌을 주는 녹색의 잎과 같습니다.

창작자들, 대단합니다. 예전 페이퍼 애니메이션에서 느꼈던 그 경이로움입니다.

남자의 일생, 여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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