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기술자와 소프트웨어 경영자

1.
보통 구두기술자를 구두기능공이라고 부릅니다. 소프트웨어기술자는 소프트웨어개발자고 합니다. 기능공과 개발자,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봉건사회의 잘못된 전통인 사농공상의 영향일까요? 아니면 현대 사회의 화이트와 블루칼라의 영향일까요?

어떤 사장님이 계십니다. 17세부터 현재까지 구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방끈도 짧습니다. 제화업체인 안토니(주)의 김원길사장입니다. 조선일보 Why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이탈리아와 우리가 다른 게 무언가.
“우리나라 구두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주저앉은 것은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기능공 출신이기 때문에 기능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우리 회사는 1년에 한 번씩 기술자들 모아서 기능인의 밤을 열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한국의 구두 기술자 다 모아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예술가다’ 그런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그동안 잘 나가는 회사들이 기능인들을 이용해서 돈만 벌 줄 알았지 소중한 줄 몰랐다. 회사를 돈 벌게 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더불어 살아야 미래가 있는 것이다.”

– 구두 기술자가 예술가인가.
“옛날에는 먹고 살 게 없어서 구두 기술 배웠지만, 앞으로 잘살수록 좋은 구두 신고 싶어한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는데, 실제로 기술자들이 예술가로 대접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람들의 발을 편하고 예쁘게 만드는 예술가들…. 이 사람들이 대우받게 될 것이다.”
[Why] 구두공에서 뚜벅뚜벅… 행복전도사 CEO로중에서

스스로가 기능공이었기때문에 구두 기술자들이 항상 자긍심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경영자 스스로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를 예술가로 대접합니다. 예술가로써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 직원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직원들이 행복할 때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 직원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얼 하나.
“사람들 마음을 잡으려면 뭔가를 줘야 한다. 똑똑한 사람, 배운 사람을 내 옆에 두려면 내가 줄 게 있어야 한다. 직원용으로 벤츠 스포츠카, 말 두 마리, 모터보트 등을 구입해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내가 하는 일은 ‘스트레스 다이어트’를 해주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모터보트 유지비로 한 달에 200만원 써서 직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수백 배를 버는 것 아닌가.”

기술자출신이라고 모두 김원길사장과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중 많은 이들이 창업을 합니다.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채용하여 개발을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한 때 관심을 받은지 10년이 넘어가지만 많은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은 스스로 3D기능공이라는 자괴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산업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때문일 수 있습니다. 덧붙여 경영자들의 철학 부족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객 만족’ 혹은 ‘회사 우선’이라는 이유를 들어 기술자를 무한소모합니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외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장사꾼에게 상도(商道)가 있으면 손님에겐 객도(客道)가

2.
생산을 할 때 자기 상표를 부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구두를 만드는 공방은 수없이 많지만 제가 기억하는 상표는 몇 없습니다. 김원길대표도 브랜드생산을 하려고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케리부룩이 망한 후의 경험이 자기 브랜드에 대한 요구를 더 크게 만든 듯 합니다.

– 그래서 바로 구두 회사를 차렸나.
“처음에는 작은 구두 부속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영세한 업체들을 상대하다 보니 수금도 안 되고 힘들었다. 1년쯤 지나 내가 떠난 이후 케리부룩의 백화점 영업이 힘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가 케리부룩의 백화점 영업을 내가 도맡아서 하게 됐다. 아예 판매법인까지 만들어서 한 2~3년 물건 잘?팔았다.”

–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언제였나.
“그러다가 내가 ‘팔 구두’가 없는 시절을 맞게 된다. 전국?각지에 매장과 판을 벌여 놓고, 케리부룩에 로열티를 주고 영업했던 시절인데 케리부룩이 부도나고 자금 회수 못 하고 다른 브랜드로?넘어가면서 3~4년 힘들었다. 그때 마포대교에서 차를 몰고 한강으로 뛰어들어버릴까 생각했었다. 내 브랜드가 절실했다.”

–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와 인연은 그때 시작됐던 것인가.
“미친 듯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업체를 물색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컴포트(comfort) 슈즈’를 내건 이탈리아의 바이네르?브랜드였다. 오래된 이탈리아 브랜드인데 그 기술을 물려받은 노인이 같은 구두공 출신인 나를 알아봤던 것 같다.”

소프트웨어경영자도 비슷합니다. 처음 투자 자금을 확보하려고 인력파견이나 파견과 비슷한 SI를 합니다. 시장도 기업의 조건도 패키지를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흐르면 처음을 잊어버립니다. 돈을 벌어서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초심은 사라지고 돈을 벌기 위해 현재를 살아갑니다. 김원길 대표는 한번의 실패 – 캐리브룩이 망한 후 좌절 -의 경허을 잊지 않고 독자영역과 독자 브랜드를 찾았습니다. 그 결과 컴포트슈즈와 바이네르를 거머 쥐었습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구두는 한국에서도 만들고 이탈리아에서도 만든다. 오랫동안 고유 상표 없이 살아왔던?’무(無)브랜드’의 설움을 떨쳐 버리게 됐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처음 시장에 대한 이해도 없고 기술도 부족할 때 배운다는 생각을 SI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독자적인 제품을 가지려고 투자했고 시장을 작지만 개척하였습니다. 또 서비스모델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김원길 대표와 비슷한 이유때문에 수익모델을 바꾸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경영자와 개발자가 느끼는 무브랜드의 설움은 갑과 을의 관계입니다. 의무와 책임만 남고 대응한 파트너가 아니라 노예와 같은 관계입니다.

3.
김원길 대표의 인터뷰중 하나의 사건은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김원길 대표는 능력있는 기술자이면서 영업인이라 캐리브룩에서 인정받은 듯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건을 사표를 제출합니다. 이? 때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네요.

“내가 실적이 점점 좋아지니까 회사에서 ‘김원길이 구두 판 돈을 따로 챙겼다’ ‘부자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회사에서 그 일로 정식 조사까지 시작하자,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 회사 다닐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

어떤 기업에 생산부터 영업에 이르기까지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회사의 경영자는 두가지 태도를 가집니다. 회사가 크는데? 주출돌이므로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자기편을 모아서 별도의 회사를 만들면 어쩌나 하며 견제를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다 회사가 선제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고사직이죠. 마른 하늘에 날벼락입니다.

저는 소프트웨어개발을 못하고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워지면 많은 경영권이 자연스레 개발자에게 넘어갑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실적이 좋아지도록 노력을 했죠. 수익 개선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개발자들이 일시에 사표를 제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금요일 정민의 세설신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명나라 말, 이자성(李自成)이 반란을 꾀했다가 거상협(車箱峽) 협곡에 갇혀 궤멸 위기에 처했다. 이자성이 큰 뇌물로 거짓 항복을 청했다. 토벌 책임자 진기유(陳奇瑜)는 사태를 낙관하여 뇌물을 받고 짐짓 퇴로를 열어주었다. 이자성은 간신히 살아나와 약속을 저버리고 군사를 정돈한 뒤 파죽지세로 북경까지 쳐들어갔다. 진기유는 제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웠다가 결국 죄를 입어 탄핵당했다. 이 일로 명나라는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다. 숭정제(崇禎帝)는 결국 황궁 뒷산에 올라가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했다.

다 잡은 적을 일부러 놓아주는 것은 쓸모를 과시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쓸모를 남겨야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놓아 줄 때는 분명히 토끼 한 마리였는데, 어느새 범이 되어 사냥개를 물어 죽이기도 한다. 토끼를 다 잡아 힘을 뽐낼 것인가? 상대를 남겨두어 내 값을 올릴 것인가? 자칫 다 잡았다간 삶아질 것이 두렵고, 남겨두어 값을 올리려니 뒤통수를 맞을까 걱정이다. 이 사이의 줄다리기가 또 미묘하다.
[정민의 세설신어] [123] 불여류적(不如留賊)중에서

진짜로 미묘한 줄다리기입니다. 사실 정답이 없습니다.? 김원길 대표도 케리브룩에 사표를 내었을 때 한가지 판단과 선택을 하였습니다. 결국 선택이라고 하면 그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가질 수 있도록 함이 최선이 아닐까요?

이런 딜레마속에서 길을 찾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해야 하나요? 리더십을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으로 다룬 재미있는 책이 있네요. ‘빅맨’이라는 책이 다루는 리더십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원시 사바나에서부터 갖게 된 본능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특정한 자리에 앉힐 최상의 적임자를 선택하는 데 종종 실패하고 조직 내 ‘사람 문제’를 일으킨다. 현대의 많은 리더십 문제는 원시 사바나 시절에 적응한 뇌가 1만3000년 전 농업혁명 이후 급속하게 진보하고 복잡해진 인간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화 리더십 이론은 설명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리더의 이미지에 대한 원형은 사람을 뽑고 쓰는 일에 있어서 흔히 직관이나 ‘감(感)’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론 본능적인 감은 오래전 만들어진 원시의 뇌가 발현하는 신호이다. 유소년 시절 신체적으로 월등한 아이들이 또래 집단의 리더가 되는 일이나, 유능한 축구 선수가 유능한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여성 리더에 대한 원인 모를 반감을 보이거나, 훤칠한 외모를 가진 리더에게 신뢰를 보이는 일은 원시의 뇌가 선호하는 것일 뿐이지 현대 조직과 인간관계에 맞는 리더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원시의 뇌가 보내는 신호는 제대로 된 판단을 방해하는 소음이 된다.
[비즈니스 북] 구석기시대 아프리카, 탁월한 리더를 뽑은 무리만이 살아남았다중에서

그런데 사람을 모으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도 리더십이지만? 인간관계에 해악을 끼치는 부분을 도려내는 것도 역시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은 결국 내가 몸 담고 있는 집단을 위한 것입니다.

4.
다시 김원길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안철수 원장처럼 김원길대표도 ‘기업가정신’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 ‘비즈니스 꿈나무’는 무엇인가.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나면 사업하겠다는 친구들이 찾아온다. 그 사람들 중 몇명이 모인 것이다.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대부분의 관심사가 오로지 어떻게 취직하고 어떻게 사회에 나갈 거냐뿐이라는 것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사업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가. 생각해보면 내가 사업하다 성공한 것은 돈이 있어서도 아니고, 인맥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오로지 끈기와 전문성이었다. 나는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지금은 어렵지만, 고시 공부하는 것보다 멋있는 사장 10명 기르는 것이 내 꿈이다.”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는 백마디의 말보다 엔젤이 되어 한 명의 창업자를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돈은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돈을 벌었는지 돈을 벌었기때문에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지는 각자 판단의 몫입니다. 다만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갈 수록 겸손하여야 합니다. 성공은 자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으로 사회적 공헌을 좀더 고민하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돈에 대한 철학이 좀 다른 것 같다.
“돈이 무섭다. 돈만 보고 좇아가면 돈의 노예가 된다. 백화점 판권을 갖고 있던 케리부룩이 망하고 브랜드 바꿀 때 정말 힘들었다. 내가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때 4년 동안의 무서운 악몽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긴 악몽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돈 앞에서 꼼짝 못하는데, 돈은 내가 쓰는 게 내 돈이지, 쌓아놓은 것은 내 돈 아니다. 자식한테 돈 물려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 요즘 강의 요청도 많다고 하던데 무슨 이야기를 자주 하나.
“사회가 성공의 개념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성공의 개념이 바뀔 때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로 바뀐다. 그리고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지. 하지만 그 운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에서 나왔다. 만약 내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렸다면 지금의 김원길은 없지 않겠는가.”

같은 신문의 Weekly Biz 보다는 훨씬 공감가는 내용이 많은 지면이 Wh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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