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ZeroAOS 그리고 ZeroORS

1.
꽁꽁 얼어붙이 여의도. 핀테크 바람이 붑니다. 찬 공기를 더 매섭게 칼바람으로 만들지, 아니면 봄바람일지 궁금합니다. 핀테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IMF를 전후한 때 인터넷 태풍이 여의도를 휩쓸기 시작할 즈음으로 온라인증권사와 온라인증권거래가 화두였습니다. 이 때 변화를 되새겨 보죠. 시작은 진입 및 운영을 위한 규제의 변화입니다.

1997. 4월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사이버 주식거래가 도입 – 증권거래법 개정 전에는 문서와 전화주문만으로 수탁이 가능하였으나, 법 109조 2항(시행령 66조의 2)을 신설하여 증권사가 문서 이외에 전화, 전보, 모사전송, 컴퓨터 기타 이와 유사한 전자통신의 방법에 의해 매매거래를 수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1999. 4. 1부터 증권회사(위탁매매업 전문)의 최저자본금 기준이 10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낮아짐에 따라 기존의 증권사뿐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을 가진 업체의 다수가 사이버 증권업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

1999년 7월 전자서명법의 발효로 사이버거래의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 -전자거래 인증을 통한 거래의 안전성과 신뢰성이 확보되고, 증권사와 은행간의 업무제휴로 이용의 편리성이 증가되어 고객기반이 확대

규제의 변화는 곧 시장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기존 증권사들은 사이버영업팀, 사업부 등으로 온라인거래를 추진하였고 온라인 증권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증권사가 새롭게 등장하였습니다. 2000년 1월 최초로 설립인가를 받고 영업을 개시한 E*Trade 증권중개(주)입니다. 이후 온라인증권사는 키움닷컴, E*Trade, 세종증권, 겟모어증권 등 4개로 늘어났습니다. 이 때 많은 증권IT기업들이 여의도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이 때를 보면 제1차 핀테크시대이고 온라인증권사 1.0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1차 핀테크는 지점을 중심으로 한 증권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의 핀테크는 2000년의 변화와 다릅니다. 현재의 증권산업은 이미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거래는 수수료율을 경쟁적으로 낮추도록 하였고 사실상 수수료가 없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외부요인까지 더해져 수익성은 몇 년째 최악입니다. 핀테크는 이런 증권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미국의 사례를 보면 변화의 출발로 가능한 것은 자산관리일 듯 합니다. 온라인증권사인 키움증권과 경쟁하는 다른 증권사들이 내세우는 전략은 지점을 통한 자산관리업무입니다.

Robo-Broker 혹은 Robo-Advisor

그렇지만 100% 온라인자산운용사가 증권사의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자산관리서비스와 비교하여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영업과 관련한 규제가 풀린다고 하면 이 또한 기존 증권사들도 혜택을 받기때문에 영향이 제한적으로 보입니다.

핀테크가 시장에 변화를 주려고 어디에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논의속에서 자본시장의 변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틈을 만들어 2000년 이후와 같은 핀테크기업들의 붐을 일으키고 싶다고 하면 과거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자본시장의 변화를 위하여 나왔던 것들이 많습니다. 먼저 단순한 주문중개가 아니라 주문집행에 개입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내부주문집행이 가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불법으로 전락한 대여계좌도 제도화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허울뿐인 대체거래소도 현실화하는 후속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소셜트레이딩이 가능하도록 관련한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IT 위탁도 폭넓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런 제도의 변화가 있다면 온라인증권사 2.0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증권사와 증권서비스들이 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능할까요?

2.
위와 같은 상상을 해본 이유는 ZeroAOS입니다. 회사를 나온 이후 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트너십을 이용한 사업모델로 시장에 진입하였습니다. 우연히 증권회사의 좋은 영업대표와 의기투합하여 서비스를 시작하였지만 본격적인 도약을 하기도 전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장애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발돋음을 하려면 장애가 일어나서 주저앉고 다시 발돋음을 하려면 장애가 나타나서 꼬라트렸습니다. 결국 해결하지 못한 담당 파트너와 헤어졌지만 ZeroAOS는 실기를 하였습니다. 한번 기회를 잃어버리면 다시금 기회를 얻기 힘듭니다. ZeroAOS 2.0으로 새출발을 해보려고 하지만 시장은 무너졌고 찬바람이 요란합니다.

이런 요인들 말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최초 시장에서 생각한 ZeroAOS 포지셔닝입니다.

zeroaos

이런 자리매김으로 얻을 수 있는 고객은 DMA의 제도화에 따라 커질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세가지 면에서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첫째는 DMA의 제도화 보다 강력한 파생상품시장의 건전화정책입니다. 검찰의 구속에 따른 반작용으로 생각했지만 정책기조로 굳어졌고 오늘에 이릅니다. 둘째 직접 매매전략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적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체적인 전산능력을 보유한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규모 예측의 오류입니다. 마지막은 기회의 상실입니다. 앞서 말한 서비스외에 몇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제품 완성도의 문제로 기회를 놓쳤습니다. 계획에 따른 실행전략이 문제였습니다.

다시 맨 땅에서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새롭게 재설계를 할지를 고민하였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지도 않고 긴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지난 1년여 시간 눈 여겨 본 기술은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증권이 아니더라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듭니다. 그렇지만 실행할 여유가 없습니다. 출발은 ZeroAOS의 재설계입니다. 재설계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던 중 눈에 확 뜨인 글이 있었습니다. 아마존 창업자인 베조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종종 ’10년후에는 뭐가 바뀔것 같습니까?’ 와 같은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 질문도 흥미롭기는 하죠. 그런데 아무도 ’10년후에도 바뀌지 않을게 뭡니까?’ 라는 질문은 안하더군요. 제 생각엔 이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속한 리테일 비지니스에서는 항상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있죠. 이건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또, 소비자들은 빠른 배송을 원하고, 물건을 고를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원하죠. 10년후에 소비자가 저에게 와서 ‘전 아마존을 좋아하지만, 물건값 좀 올려 받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하는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배송 좀 천천히 해주세요’ 라는 말도 나올리가 없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들을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뭔지를 안다면, 거기에는 큰 투자와 노력을 해도 좋은 것이죠”
사업가들에게 던지는 제프 베조스의 조언중에서

투자, 매매에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주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ZeroAOS가 가진 구조적인 장점과 ‘주문’을 이을 수 있는 고리가 무엇일까요? ‘서버자동매매주문’입니다. 여의도에 서버자동매매주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들이 여럿입니다. Stop-Loss 혹은 Trailing Stop과 같은 주문을 제공합니다. AOS 즉, Automated Ordering System은 트레이더가 자체로 개발한 알고리즘 혹은 전략에 기반한 서버자동매매시스템입니다. 다만 하나는 주문이고 ZeroAOS는 시스템입니다. ZeroAOS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제공하지 않았고 만들어서 사용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점이 차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차이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Interactive Broker가 제공하는 것처럼 아주 다양하고 많은 주문유형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요?

ZeroORS

이런 기획에 따라 만들어본 서비스가 ZeroORS입니다. Automatic Ordering에서 Order Routing으로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주문 라우팅이라고 하면 복수거래소를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라우팅을 할 때 어디로 보낼지도 중요하지만 언제 보낼지도 중요합니다. 언제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주문유형(Order Type)입니다. 한국거래소가 제공하는 시장가와 지정가 주문이 아닌 주문유형을 제공하여 투자자가 원하는 시점에 주문이 거래소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자는 서비스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그려본 주문흐름입니다.

주문단말 – API – 증권사 매매시스템 – 증권사 원장시스템 – FEP – 한국거래소

VS.

주문단말(PC,모바일) – API – ZeroORS – 증권사 원장시스템 – FEP – 한국거래소

사실 서버자동주문시스템은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대부분 공유서비스(Shared Service)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몇 천명, 몇 만명일 경우를 대비한 설계를 합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점에 ZeroAOS는 대폭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원래 트레이더 개인이나 그룹을 대상으로 전용서비스(Dedicated Service)로 설계하였기때문에 초기개발비용을 줄일 수 있고 추가 등에 따른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조건에 파트너들끼리 최소비용(시간)을 들여서 현실화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3.
앞서 그림을 보면 ZeroORS는 브로커인 증권사와 비교하면 에이전시(Agency)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핀테크로 여러가지 규제가 바뀌고 그중 증권사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다양해지면 ZeroORS는 에이전시 브로커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단말(앱), API로 연결된 단말(앱)서비스 그리고 API로 이어진 에이전시 브로커. API로 이어진 다양한 증권서비스. 이런 서비스들이 모여서 하나의 기업을 만든다고 하면 그것이 온라인증권사 2.0이 아닐까요? ZeroAOS와 핀테크. 어떻게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 밀접한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었으면 합니다.

토요일 잠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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