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아침에 받아본 한겨레신문. 굳이 주제를 정한다면 ‘자본에 둘러싸인 대한민국’ 특집입니다. 4면에 실린 기사인 ‘0.09% 재벌’의 품에…정부의 ‘4종 선물 세트’가 압권입니다.
정부는 해외 차관이나 국민 저축, 세금으로 축적된 자본을 산업정책에 따라 이들 기업에 우선 배분했다. 이제 글로벌 경쟁력까지 갖춘 10대 재벌은 477조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더이상 국가의 지원이 필요 없어 보이지만, 대기업은 여전히 커다란 빨대를 국가에 꽂고 수십조원의 예산과 수백조원의 금융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다.
소수 대기업에 건설 등 돈 되는 정부의 큰 일감이 몰리고, 정부의 전략적 금융자원 배분이라 할 수 있는 정책자금도 수출 대기업이 중심이다. 조건만 맞으면 반대급부 없이 주는 보조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연구개발(R&D)에서도 대기업의 이해와 필요가 중시되고 이들이 가져가는 예산 또한 적지 않다.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한 ‘세금 할인 혜택’(비과세 감면)도 대부분 이들의 차지다.
이뿐 아니다. 수출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고환율 정책 등도 내수 기업과 가계 등 다른 경제 주체에 손해를 끼치면서 정부가 대기업에 주는 특혜라 할 수 있다.
이를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오래전 제가 받았던 정보화촉진기금은 진짜로 세발의 피일 뿐입니다.
2.
마지막 면에 실린 두개의 칼럼. 자본이 공무원사회와 대학사회에 미친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정녕 창조경제·혁신경제를 성공시키고, 우리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말하기 전에 창조와 혁신의 경제 생태계를 짓밟아대는 공무원부터 규제하라. 국민들을 죽이고 우리 경제를 파탄낼 의료 민영화를 중단하고 그 대신 공무원부터 민영화하라.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경쟁을 시킨다며 허황된 논리로 위장한 철도 민영화를 말하기 전에 공무원부터 경쟁시켜라. 우리 미래를 갉아먹을 교육 민영화를 꿈꾸기 전에 공무원부터 혁신하라.
공무원들이 매월 200만원, 300만원이 넘는 풍족한 연금을 받으며 안정된 노후를 즐길 때 대다수 국민들은 공무원연금의 3분의 1, 4분의 1도 안 되는 팍팍한 국민연금에 만족해야 한다. 또 적지 않은 노인들은 그나마도 없어 월 20만원의 노인연금에 의존해서 겨우 생명을 부지해야 한다. 이런 사회가 정상이고 건강한 사회인가.
많은 은퇴자들이 퇴직 후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어 마지막 수단으로 빚을 내 편의점, 치킨점 등 자영업 구렁텅에 빠져들어 과잉 경쟁과 갑의 착취로 파멸되어 간다. 그러나 다수 공무원들은 풍족한 연금도 부족하여 퇴직 후 공기업, 산하기관, 관련 기업들에 ‘낙하’하여 공무원 때의 몇 배나 되는 거액의 월급을 받으며 아름다운 인생 2라운드를 즐긴다. 이런 사회가 정상이고 건강한 사회인가.
능력들이 출중해서 그런 대우를 받을까? 대부분은 그들이 현직에 있을 때 이권 편의를 봐준 데 대한 보상(후불제 뇌물)이거나 또는 과거 자신의 업무를 대상으로 로비스트 짓을 하는 데 대한 보상(현직 공무원 후배들과 짜고 하는 합법으로 위장된 뇌물)과 다름없다. 그러니 법무법인에 고문으로 취직해 말 몇 마디 해주고 연봉을 몇억원씩이나 받지
[이동걸 칼럼] 공무원부터 민영화하라중에서
이 땅에 대학은 없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 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고등직업훈련소’만 존재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 대학은 그 외양도 정신도 완전히 변해버렸다. 대학 캠퍼스는 기업 상호를 단 건물, 기업 홍보물, 취업 정보물로 뒤덮여 있다. 자본은 건물을 지어주거나,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혹은 대학을 설립하거나 기존 대학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 시장은 ‘경쟁력’, ‘수익성’, ‘효율성’ 등 경영 논리를 앞세워 대학을 평정한 지 오래다. 게다가 시장 논리로 중무장한 재벌언론이 대학 평가의 칼을 움켜쥠에 따라 대학은 꼼짝없이 시장의 포로로 포획되었다.
[세상 읽기] 자본에 점령당한 한국 대학중에서
3.
비관적인 현실이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두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책입니다. 철학자 고병국씨의 이야기입니다.
철학은 “살아가는 기술”이며, “앎의 대상이라기보다 행함의 지혜, 결국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이며 철학자는 “자기 삶으로 철학을 입증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 삶을 잘 가꾸고, 그 속에서 또한 타인에 대한 돌봄을 깨닫는 것, 다시 말해 삶의 연대, 이를 위한 투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 한다는 것”의 의미라고 그는 말한다.
수많은 저항의 현장에서 철학은 무엇이란 말인가중에서
지금 한국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니이신 강우일 주교님의 강연록입니다. 사제으로써 모범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존경하는 분입니다.
어떨 때 보면 세상은 요지부동이기만 한 것 같지만, 그래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만약 세상이 바뀌는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은 함께 생각하고, 함께 꿈꾸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바로 연대입니다.
제주로 간 신부, 평화를 외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