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와 증권IT회사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의견

1.
 몇 주전 증권사 전산부장님을 잠시 뵌 적이 있었습니다.IT차별화전략의 일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해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그래서 말했습니다.

“지난 15년동안 SI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SI란 서로와 서로에게 발전을 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새롭게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먼저 아닌가?”

회사를 그만두기 오래 전부터 가져온 생각입니다. 지난 몇 년동안 만났던 증권사분들에게 항상 똑같이 한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한 배경은 지난 시절의 경험과 반성입니다.

94년을 전후로 한 시기 PC통신은  SLiP/PPP기술을 도입하여 이전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증권도 이런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습니다. PC통신으로 시작한 온라인 트레이딩은 싹을 움트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기술을 위한 경쟁은 2000년 초반까지 이어집니다. 수많은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였고 증권사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기술을 접목한 솔류션을 각각 도입하였습니다. 경쟁을 통해 시장이 성숙해지긴 했지만 기술은 독자적으로 성장발전하기 보다는 서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A라는 IT회사가 O라는 증권사 시스템을 개발하고 일년후 다시 B라는 회사가 O라는 증권사 시스템을 재구축합니다. 이런 식의 순환이 10년동안 일어났습니다.  인터넷거품이 꺼지고 IMF이후 특수도 막이 내리면서 IT업체간 경쟁을 치열해지고 솔류션공급업체는 소수만이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솔류션업체들의 돌려막기가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상의 결과로 증권사별로 제공하는 IT서비스는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화면UI가 다를 뿐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별반 다르지 않기때문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HTS를 시작한다고 하여 IT적인 경쟁력이 있지 못하고 수수료면제와 같은 이벤트로 고객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합니다. 최근 화두가 되었던 ELW매매용 VIP서비스도 같은 경우입니다. 몇몇 업체가 돌아가면서 동일한 시스템을 증권사에 납품합니다. 소프트웨어적으로 차이가 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증권사 내부도 좋지 않습니다. 2000년 초반까지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경영진이나 영업담당부서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습니다.

 “IT는 돈만 쓰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직이다.”

비용절감이 필요하면 IT가 우선순위로 언급되고 적은 인원으로 더많은 업무를 감당하여야 합니다. AS-IS를 운영하기도 벅찹니다. 요즘같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상품을 출시하면 시스템이 걸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제 날자에 개통을 하여야 합니다.

 증권사IT는 인정도 받기 못하고 사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야근에 야근으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치고 있습니다. 증권IT회사는 작은 예산에 맞추어 시스템을 공급하여야 하고  작은 이익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꿈은 꾸지도 못합니다. 서로 유지는 하고 있지만 미래가 없고 발전과 진화가 없습니다. 이 틈을 해외업체가 파고들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파생상품의 프론트오피스시장은 난공불락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터무니없는 계약조건으로도 금융회사는 기꺼이 계약을 합니다. 외국은 되고 한국은 안되는 이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2.
 그동안 IT와 관련한 몇 편을 썼습니다. IT를 바라보는 시각을  IT내부, IT외부에서 변화를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IT는 비용일까?
금융회사는 IT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까?

 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좀더 본질적인 곳에 있습니다. 2000년초반 금융산업을 IT산업으로 규정한 분들이 많습니다. 최소한 말로는 그랬습니다. 2005년 미국의 자본시장구조가 RegNMS로 전환한 이후 대대적인 변화가 자본시장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 KRX가 “글로벌 증시환경의 변화와 대응전략”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Man VS Machine이라는 말로 표현하듯이 IT가 핵심적인 경쟁력인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DMA Trading, API Trading, Robot Trading, Algorithmic Trading, High Frequency Trading 그리고 Social Trading에 이르기까지 IT가 핵심적인 키워드이고 비즈니스모델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를 두 편의 글로 소개하였습니다.

Prop의 시대는 가고 헤지펀드의 시대가?
Prop의 시대는 가고 헤지펀드의 시대가?(2)

 현재 미국,유럽발 변화이면서 우리내부의 변화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든 솔류션을 해외에서 가져다 쓰겠다고 하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기 도입은 낮은 가격으로 하지만 년단위로 라이센스계약을 맺거나 트랜잭션기반으로 사용료를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비탄력적인 원가구조를 가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지 않다고 하면 현재의 구조와 관계를 변화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입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VIP서비스라는 것이 결국 다른 증권사보다 보다 빨리 고객이 원하는 매매조건을 찾아주는 것인데, 이를 여러 곳에 납품을 하면 결국 차별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비록 당장 현금이 작아지더라도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를 제안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제가 영업이 아니니 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현재의 돌려막기구조에선 어떤 회사가 새로운 기술을 들고 나오면 최소 2년이내에 동일한 서비스는 전 증권사가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증권IT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충분히 경쟁력있다고 판단하면 서로간에 성장발전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아마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첫째 장기간 계약이어야 합니다. IT시스템을 개발완료하였다고 끝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시스템이 살아 숨쉬는 동안 계속 진화,진화하여야 하고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시스템이 지향하는 가치가 유효하다면 장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시스템을 개발하고 끝나면 종치는 관계는 아닙니다.

둘째 독점적인 계약이어야 합니다. 독점적이라는 의미는 최소한 동일한 서비스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시간적인 진입장벽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합니다. 2006년 외화선물과 FX서비스 계약을 3년동안 하였습니다. 물론 독점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시장에 진입한 경쟁자가 한맥선물밖에 없었기 때문에 외환선물 국제영업부는 계약종료때까지 아주 큰 이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모험을 했지만 수익확대라는 결과를 얻은 경우입니다.

셋째 적절한 비용은 보장하여야 합니다. 고객사와 협의를 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SW개발단가를 말합니다. 물론 단가대로 지급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할인을 하고 할인을 하고 할인을 또 합니다. 결국 죽지않을 정도의 비용을 지불합니다. 장기간, 독점 계약을 한다는 의미는 서로가 서로를 통해 시장에서 이기겠다는 목표를 공유함을 뜻합니다. 이에 걸맞는 대접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의 관계는 IT서비스와 IT기술에서 경쟁을 촉진하리라 생각을 합니다. 독점적인 관계때문에 경쟁사들은 또다른 파트너를 찾고자 하고 파트너는 새로운 기술과 전략으로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증권IT시장에서 기회를 볼수 있다고 하면 떠났던 많은 팀들이 다시금 증권IT에서 스타트업을 하려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순환구조로 이어져 경쟁과 협력을 통한 발전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돌려막기, 베끼기, 현실 안주보다는 가치와 기회창출을 위한 도전이 이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무한 경쟁은 독약이지만 지금 한국증권산업에 필요한 것은 경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성과 열정으로 무장한 집단들의 경쟁. 이를 통해 증권산업을 한단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꿉니다.

 IT도 증권산업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꿈을 꿉니다.

6 Comments

  1. 나경아빠

    아울러 사람이 중심이 되면 좋겠습니다. 위기는 내부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크 아탈리가 말한 것처럼 돈으로 사람을 사무실에 12시간 무조건 앉혀놓는다고 발전은 없다고 했습니다. 창의가 있어야지 저런 트레이딩을 창의적으로 구현가능할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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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요즘 짬이 나서…슬랙을 읽고 있는데.
      첫장이 재미있네요…
      구조조정을 하고 나서 결국 일을 더시키는 것이더라..

      바쁘게 일한다고 개인뿐 아니라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
      멋있습니다.

      창의성도 같은 문제…

      나경이가 무럭무럭 건강하게
      가을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기도할께요…

      나경이는 둘째딸 친구이름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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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연준아빠

    맨날 눈팅만 하면서 보고가던 사람입니다. 오늘글도 공감하며 읽고 가며 인사남깁니다.
    저는 여의도에서 조그만 홈페이지 가게를 하는데, 얼마전 모증권사 홈페이지를 고치며 받은 관리 문서에 표기된 회사이름을 보고 호수님 블로그를 알게 됬습니다. 작지만 사업을 하는지라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식견이 짧아 게시하시는글에 머라 맞장구는 못치겠고, 이렇게 졸렬하지만 인사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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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나경아빠님에 이어 연준아빠님까지..아빠 풍년입니다.저도 아빠지만…

      모증권사 관리문서에 넥스트웨어가 있다는 뜻인데..아마도 H,M,D등등 증권사중 하나(^^)

      작더라도 사업은 사업입니다. 원리는 동일하고 그 만큼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점을 후배가 깨우쳐 주더군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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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연준아빠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새겨듣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H…맞습니다, 처음 인수인계 받고 꼼꼼한 메뉴얼에 감탄하여 찾아보게 되었지요~
    그후로 매일 들르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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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꼼꼼한 것은 그 때 일했던 개발자들과 PM의 공이죠…

      하여튼 실패하지 않도록 위험관리 잘 하시길…
      저는 워낙 공격적 성향이라 신사업을 위험도 생각하지 않고 벌이다 실패한 경우중 하나입니다.

      건강하세요.

      H.가 무슨 뜻인가 했더니 이니셜이네요.
      그 때 PM이 무척 고생하였습니다. 아마 제가 알기론 그 때 고객사분들이 팀장급이 된 것으로 들었는데. 저도 참 이런 저런 인연이 H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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