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2년 11월이 가고 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월급쟁이로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쓰고 다시 창업을 하겠다고 나선지 2년이 넘어서는 달입니다. 돌이켜보면 2년전 사표가 잘한 일인지 회의할 때도 있습니다. 나 혼자 짊어지면 될 고통을 함께 지고 있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잘 되겠지…”하는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생각때문입니다.
스타트업. 그것도 한번 크게 망한 사람이 다시 출발할 때의 고통은 작지 않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금입니다. 재출발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번 돈으로 투자금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빚을 갚느라 들어간 돈의 이자로 나가야 했습니다. 누구를 직원으로 채용하여 같이 일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문을 닫던 전후에 일어난 사건을 떠올리면 노사관계를 맺을 심리적인 여유도 없었습니다. 선택은 하나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협력입니다. 지난 2년 동안 한 일을 보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찾아 만나서 이야기하고 협력하는 결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면서 “선뜻 협력을 하자”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은 무척이나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시간은 비용이면서 기회의 상실입니다. 새출발을 하겠다고 한 이후 18개월이 된 때에 처음 목표로 한 그림=파트너관계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또다른 걸림돌은 평판입니다. 망한 기업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욕을 많이 먹습니다. 덧붙여 법적인 문제도 많습니다. 비록 문을 닫고 3년이 흐른 다음 새출발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저를 잊었겠지만 어떤 이는 저를 기억합니다.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나쁜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고 나쁜 소문을 기억으로 간직한 사람도 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 내가 살아온 길이 만든 결과입니다.
스타트업 2년은 협력적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협력적 개발’은 비지니스적 목표를 같이 한 사람들이 독립적인 주체로써 참여하여 하나의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어나가는 개발방식이라 정의하고자 합니다.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분들의 경험을 잘 모르지만 짐작하기에 비슷할 듯 합니다. 다만 오픈 소스 프로젝트와 달리 협력적 개발은 직접 고객에 대한 책임을 나눕니다. 고객에 대한 책임은 일정과 서비스 품질로 나타납니다. 지어야 할 책임은 명확하지만 책임을 나누는 의무는 개인에 의존합니다. 협력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소통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스타트업 1년이 지날 무렵 ZeroAOS 서비스를 곧 시작한다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이 무렵 몇 곳과 계약을 마무리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이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늦어지고 늦어지고 늦어집니다. 결국 ‘하지 않는다’로 번복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곳과 협의를 하였습니다. 다시 최종 협의를 마쳤습니다. 개발도 상당 부분 진행하였습니다. ZeroAOS의 핵심기능이 아니라 고객사를 위한 개발입니다. FEP Interface와 같은 기능입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계약은 없던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간과 노동이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또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최초 ZeroAOS는 계약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곳과 서비스를 하자는 계약을 맺고 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몇 달이 흐른 이후 갑자기 계약을 파기당했습니다. 답답합니다. 사정이 있는 고객을 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약금을 넣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객을 위한 노동이니까 최소한의 댓가는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개발을 시작하고 서비스를 위한 최소한 준비를 한 이후 1년동안 몇 번의 실패를 겪었습니다.
모 증권사와 계약을 하고 첫 상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의 서비스와 다른 방식으로 설계를 하였습니다. ZeroAOS를 처음 기획할 때 생각했던 기능이었지만 이후 없앴던 기능을 다시 넣었습니다. 서비스하는 상품도 달리 생각하였습니다. 굳이 파생에 국한하지 말고 유가증권까지 서비스를 하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Low Latency는 전자거래에서 기본경쟁력이기때문입니다. 11월을 넘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2년을 함께 고생한 파트너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작은 싹이지만 싹이 트고 있음을 주변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주 작은 소망입니다.
2.
협력적인 관계지만 대표 파트너인 대표라 이런 저런 비용이 들어갑니다. 수입은 작은데 지출은 큽니다. 힘들게 가계를 꾸려가는 아내에게 손을 벌릴 수 없습니다. 이런 어려움속에서 지난 2년을 버틸 수 있도록 해준 분들이 계십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울 때 크고 작은 돈을 선뜻 빌려주신 분들입니다. 자주 뵙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알고리즘교육을 함께 하고 있는 강사님에게도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교육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처음 본 사람이 무작정 ‘교육을 하자’고 할 때 흔쾌히 답을 주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교육입니다. 더불어 ‘트레이더를 위한 교육과정’이라는 꿈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24개월이라는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꾼 꿈을 이루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싹도 키우고 있습니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집니다. 가늘더라도 길게 꾸준히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럭무럭 자라 큰 나무로 만들어보렵니다. 큰 나무의 가지가 만든 그늘로 또다른 이에게 쉼터를 주었으면 합니다. 트레이딩컨설팅그룹 ‘이음’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릇이고자 합니다.
힘들었지만 함께 해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힘들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글에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껴지네요.
반드시 큰나무를 만드실 겁니다.
저도 옆에서 희망을 보고 싶네요…
‘힘들다’를 강조하려고 쓰지 않았는데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시네요. 월요병입니다. 약간은 감상적인 순간이라 글에 나타났습니다. 꿈과 희망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죠. 현실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2년을 변화를 조금씩 만들고 느낀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30대 사업을 할 때는 ‘한순간에 확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패를 겪고 시간이 흐르고 오십이 넘어가는 때가 되니 ‘일확’을 없고 ‘티끌’만 있다는 생각입니다. 티끌이 쌓여 태산을 이루는데 그 시간의 고통을 겪어낸 사람이 태산을 품에 안을 수 있죠. 꾸준함입니다.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건강하시죠?
위의 댓글에서 남겼지만 제 글이 ‘우울함’으로 읽혔나 봅니다. 몇 분이 전화나 메일로 위로를 전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생각보다 더디지만 그 또한 단련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꾸준함으로 어려움을 뚫고 나가고 있습니다.
水滴穿石
요즘 책상앞에 붙여놓은 글귀입니다. 시간속에서 노력하는 자만큼 무서운 것이 없음을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