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버스

1.
자가용이 있어도 타고 다니지 않습니다. 오며 가며 길거리에서 운전으로 쓰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도심운전이 주는 피로도 싫습니다. 물론 기름값, 주치비등도 적지 않습니다. 강남에 사무실이 있던 시절 몇 개월을 빼면 항상 대중교통입니다.

집에서 여의도로 오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지하철도 있고 직행좌석버스도 있습니다. 주로 9호선을 이용했지만 맥쿼리와 한 계약이 신문에 오르내릴 때부터 직행좌석버스으로 바꿨습니다. 더 비쌉니다. 그래도 내가 더 지불한 요금이 엄한 곳에 가지 않아서 기꺼이 감당합니다.

지하철과 좌석버스는 같은 대중교통이지만 차이가 많습니다. 그 중 재미있는 모습을 만드는 차이가 출입문입니다. 지하철의 경우 차량 한량에 출입문이 네 곳입니다. “어느 곳에서 기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준은 걷는 시간입니다. 바쁜 출근시간이라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려는 마음입니다. ?4호선 사당역에서 가장 긴 줄은 총신대역과 동작역에서 빨리 환승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반대로 좌석버스의 출입문은 두 곳입니다. 앞문은 타는 문, 뒷문은 내리는 문입니다. 타고 내리는 문이 정해져 있어서 만원버스일 경우 탑승자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2.
만원버스라고 하더라도 자세히 보면 다 같지 않습니다. 진짜 만원버스는 버스 앞과 뒤 모두 승객으로 꽉 찬 버스입니다. 반원(만원의 반이라는 의미 ^^)버스는 버스 앞만 승객으로 꽉 찬 버스입니다. 인간성이 드러나는 버스는 반원버스입니다.

버스 기사님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뒷문 승차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요금때문입니다. 반원버스의 경우 뒷문부터 버스끝, 기사석 옆과 앞문 계단쪽 정도만 빈 공간입니다. 기사님이 문을 열어 몇 손님을 태웁니다. 여기까지는 견딜만 합니다. 다시 버스가 출발합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손님을 내리고 태우려고 합니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 중간쯤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일어나서 내릴 준비를 합니다. 몇 분의 승객이 자리에 앉습니다.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조금씩 뒤로 옮기면 몸이 편합니다.?그런데 중간에 한 분이 자리를 막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손님들이 탑니다. 한 명이 뒤로 자리를 옮기면 좋을텐데 요지부동입니다. 점점 몸이 받는 압력이 커집니다. 옆 사람의 더운 체온이 느껴집니다. ?짜증도 늘어납니다. 또 다음 정거장입니다. 더이상 태울 공간은 없지만 출근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태웁니다. 압력이 더 커집니다. 승객들이 후문으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지부동인 승객은 그래도 꼼짝달싹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 분이 나서서 장벽(^^)을 뚫고 뒤로 옮깁니다. 다른 승객들도 후문으로 옮깁니다. 비록 서서 가지만 자리에 여유가 생깁니다.

3.
요지부동형 인간입니다. 남들이 힘들어 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그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한 소리’하고 싶지만 참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이지만 남의 피해는 상관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기도 합니다. 시류에 편승하는 인간도 등장합니다. 스스로 상황을 해결할 생각은 없지만 누군가 옆에서 압력을 가하면 못 이기는 척 이동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형일까요? 저는 개척형입니다. 앞문에 있으면 여러가지로 힘듭니다. 저도 힘들지만 새로 타는 승객도 힘듭니다. 누군가 뒤로 가서 공간을 넓혀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고 모두(^^)를 위한 길이죠. 좁은 버스 통로에서 승객을 피해 이동하는 일은 잠시동안 타인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죠. “미안합니다.”고 하면서 후문뒤로 빠집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버스는 ‘상수’이고 ‘탑승객’은 ‘변수’입니다. 서서 가는 승객들이 어떤 공간에서 목적지에 갈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입니다.

버스 통로의 면적 /탑승객 수 = 내가 차지한 공간

위 등식은 틀립니다. 탑승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개인의 태도뿐 아니라 모두의 생각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얽히고 섥힌 결과가 출근길 만족도입니다.?만원버스속 풍경입니다. 오늘 제가 겪은 일이지만 거의 매일 출근시간마다 겪는 일이며 매일 보는 인간군상입니다. ‘한반도’라는 버스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복은 단지 내가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 혹은 내가 사는 집의 넓이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나눔, 배려, 봉사, 사랑 등이 더해지면 달라집니다.

참, 이런 등식에 중대한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좌석이죠. 내 앞에서 자리가 갑자기 비면? 신분상승입니다. 버스안 로또입니다. 물론 인생의 로또는 흔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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