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물동이

1.라디오에서 이런 글을 들었습니다.

어떤 집에 긴 작대기 양끝에 물동이를 달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물 긷는 도구가 있었다.
그런데 한쪽 물동이에 금이 가서,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오면 깨진 물동이에는
물이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깨진 물동이는 자기가 절반밖에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항상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하였다.
어느 날 깨진 물동이가 주인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당신께 용서를 빕니다.”
“왜? 뭐가 죄송하다는 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 언제나 물을 절반밖에 못 가져 왔지요?
나의 결함 때문에 당신의 노력이 허사가 돼버렸잖아요!”
주인은 깨진 물동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물을 길어 집으로 오는 길가에 핀 꽃을 본 적이 있니?
네가 걸려 있는 쪽 길에만 아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지?
나는 네 결함을 알고 있기에, 네가 물을 흘리는 쪽에다 꽃씨를 심었단다.
매일 우리가 물을 길어 집으로 가는 동안 네가 그 꽃에다 열심히 물을 준 셈이지.
그동안 나는 그 아름다운 꽃으로 집을 가꿔왔으니
결국 우리집이 밝고 아름답게 된 것은 다 네 덕분이 아니겠니!”

2.사마천의 사기중 ‘孟嘗君列傳’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개도둑도 쓸모가 있다 제나라의 귀족 맹상군의 이름은 문이고, 성은 전이었다. 그의 아버지 정곽군은 제나라의 위왕의 막내 아들로서 요직에 임명되어 나라 일에 관여하였다.

정곽군의 뒤를 이어 설 땅의 영주가 된 맹상군은 선정을 베푸는 한편 널리 인재를 모아 들였다. 그는 식객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자기와 대등하게 대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자기만 특별히 잘 대해주는 것으로 알았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했다가, 그가 제나라 왕의 일족임을 알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했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어 석방해 주도록 힘써 주기를 부탁했다. 소왕의 애첩는 그 대가로 여우 겨드랑이 가죽으로 만든 옷인 호백구를 요구했다.

맹상군은 이미 한 장에 천금이나 되는 호백구를 소왕에게 바쳤기 때문에 다른 호백구는 없었다. 맹상군은 데리고 온 식객들과 묘안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개의 흉내를 내서 좀도둑을 잘 하는 이가 나서서 호백구를 훔쳐올 수 있다고 하였다. 과연 그는 한밤중에 개 흉내를 내며 궁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소왕에게 바친 호백구를 다시 훔쳐왔다. 그 호백구를 받은 애첩의 간청을 물리치지 못한 소왕은 맹상군을 석방했다. 맹상군은 일행을 거느리고 서둘러서 국경인 함곡관으로 향했다.

한편 소왕은 맹상군을 석방한 것을 후회하고 곧 그를 추격하였다. 한밤중에 함곡관에 당도한 맹상군 일행은 닫힌 성문 앞에서 멈춰 서야만 했다. 당시에는 첫닭이 운 뒤에야 관문을 열기 때문이었다. 그때 일행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내자 부근의 닭들이 모두 울어댔다.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깬 병졸들이 관문을 열자, 맹상군 일행은 통행증을 보이고 함곡관 문을 쏜살같이 빠져 나왔다.

3.잭 웰치의 유명한 책 ‘위대한 승리’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력관리시스템이 있습니다.

잭 웰치는 부단히 변화하는 수많은 사업들을 관리하는 최고의 방법은 결국 사람의 관리라고 판단하고 사람에 모든 집중을 하였다. 한 예로 취임 후 5년 동안 전체 직원의 4분의 1을 감원하면서 같은 시기에 크로톤빌 경영개발센터의 개축에는 7,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사람을 줄이는 와중에 연수원을 호화롭게 만든다고 해서 사내외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좋은 사람은 좋은 시설에서 길러야 한면서 반박하였다. 잭 웰치는 1만 8,000명에 달하는 GE의 핵심 리더들을 크로톤빌에서 직접 만나 한달에 한두 번, 최소 네 시간 이상 강의를 했으며 크로톤빌은 GE 개혁의 핵심으로 <포천>은 이를 ‘아메리카 주식회사의 하버드’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잭 웰치는 온정주의를 배격하고 철저하게 차별화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활력곡선(vitality curve)을 활용하여 직원들을 실적에 따라 상위 20%, 중위 70%, 하위 10%로 구분하였다. 상위 20%의 사람들에게는 보너스, 스톡옵션, 칭찬과 격려 등 다양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주되 하위 10%의 사람들에게는 회사를 떠나라고 통고하였다.

‘차별화는 좋은 방법이 아니며 약한 자에게 위협을 가한다’, ‘차별화는 사람들을 서로 경쟁시키며 팀워크를 훼손한다’, ‘이 제도는 상위 20%에게만 좋은 것이다’ 등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잭 웰치는 이보다 더 훌륭한 인력관리시스템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이 제도를 밀어붙였다. 이 제도를 시행한 지 3년이 지나자 문제사원이 거의 제거되어 관리자들이 하위 10%를 선정하는 데 곤란을 겪기도 하였다고 한다.

4.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차이일까요? 아니면 개인,기업,국가라는 서로다른 차원에서 사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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