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페이스북에 남긴 생각들

1.
나무의 나이테는 계절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생깁니다.여름에는 활발하여 크게 자라지만 겨울이면 속도가 느려집니다. 나무속에 시간이 겹겹히 쌓였습니다. 관엽식물도 비슷합니다. 영양상태가 좋으면 색깔도 좋고 빛이 납니다. 속된 말로 땟깔이 곱습니다. 발육이 부진하면 색깔이 흐리고 표면이 거칩니다. 영양분과 물을 잘 준다고 해도 이미 자란 부분은 바뀌지 않습니다. 새로 나는 부분이 바뀝니다. 역시나 시간이 겹겹히 쌓여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 욕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이 겪고 나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약이야..”

과연 그럴까요? 골병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언제가 드러납니다. 고통과 아픔의 기억이 시간이 흘러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잠재적 무의식속에서 남아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의 몸에도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우습게 볼 인생은 없습니다.

2.
어느 날 저녁 미사 봉사하러 가는 길. 성당 앞길에 흩어진 낙엽을 보았습니다. 정취를 느낀다고 하지만 걷기 불편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낙옆을 쓸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청계산 둘레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 8단지 도로를 뒤덮고 있는 낙엽을 쓰느라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경비원을 보았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가을이 끝나야 합니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쓰는 소리를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쓸 때 고통을

새벽미사 봉사가는 길. 버스정거장옆으로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낙엽 쓸기를 하면서 성당 앞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넘어갔던 곳입니다. 새벽이니까 오늘은 쓸기로 하고 싸리 빗자루를 들었습니다. 쓸면서 서울 시청앞에 걸린 글귀가 떠오릅니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도 생명이었음을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은 떨어짐이 아니라 내려놓음을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생명이었네요..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3.
TV에 나오는 유명 강사들을 보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몇 시간씩 이야기를 풉니다. 준비를 하는 시간이 있지만 평생 살아오면서 쌓은 내공입니다. 내공의 차이는 썰 푸는 시간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주 모 증권사의 요청을 트레이더를 위한 강의를 하였습니다. 아주 오랜 주제인 Low Latency와 관련한 요청이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없어서 그냥 목차만 정리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습니다.2시간 정도 가능하더군요. 물론 좀더 세부적으로 하면 시간이 늘어나겠지만 세부적인 기술을 전하는 강의가 아니라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제가 썰을 풀면 어떤 주제로 몇 시간이 가능할까, 생각해봅니다. 주제 설정이 저의 인생을 드러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남들처럼 인문학적인 주제는 할 수 없을 듯…

4.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악산 연주대나 송신탑에 오르면 보았던 까마귀. 어느 때부터 마을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지난 주일 미사후 집으로 오면서 양재천 옆 전주를 보았더니 까마귀가 앉아 있더군요. 그려려니 했는데 주변에 까치가 휭 날아다닙니다. 처음엔 한마리더니 두마리, 세마리씩 늘어납니다. 무력시위입니다. 까마귀에 비해 덩치가 작은 까치가 선택한 방법입니다.까마귀가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세 마리네요. 여기저기 있던 까마귀들이 떼로 공격을 당합니다. 전술은 간단합니다.

“한마리가 탐색합니다. 두마리가 나와서 무력시위합니다. 세마리가 떼로 공격합니다.”

동네에 까치, 까마귀 울음소리가 요란합니다. 결국 까마귀가 관악산으로 쫓겨갑니다. 그렇게 잠잠 해지는 줄 알았는데 몇 일후 까마귀가 돌아다닙니다. 끝없는 영역싸움이고 생존을 위한 먹이투쟁입니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죠. 옛날에는 전쟁으로 했지만 지금은 선거로 합니다. 선거투쟁이라고 하죠. 서로 생존과 영역을 위한 싸움입니다. 다만 그들만의 생존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의 생존과 희망을 위한 싸움이길 바랍니다.
참전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패거리를 지지합니다.

5.
지난 주말 성지 순례를 위해 나선 길.. 돌아오는 길에 제부도에 들렸습니다. 커피를 한 잔 하려고 들렸던 카페. 주인 어른이 나이가 지긋합니다. 커피를 내리는데 느긋하십니다. 나와서 귀를 기울이니까 재즈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누가 커피전문점을 차려주었나봐.. 음악 색깔이 다르네….”

제가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잠시 집에서 몇 달 사신 적이 있습니다. 하루종일 건너방에 앉아서 입을 꽉 다물고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주 오랜동안 나이든 분들에 대한 저의 이미지는 단순합니다. 그냥 나이 들었다, 늙었다, 저무는 태양입니다. 그 분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현재에 대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시는지.. 솔직히 무관심이었습니다. 왜? 노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해 두해 나이가 쌓이면서 생각해보니까 저도 비슷한 이미지로 다른 세대에게 비칠 듯 합니다. 노인이 대접받던 농경사회가 젊은이의 팔팔한 힘이 존중(^^)받는 산업사회로 오면서 만든 이미지를 탓할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세월이 만든 선입견이 강합니다.
어떤 이를 사회적인 관계로 판단하고, 어떤 이는 나이와 외모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지못하고 있네요.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쌓은 내면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힘써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드는 만큼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꼰대가 아니면서 남은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 되돌아봄이라는 생각입니다.

6.
얼마 후 각 교구별로 새 신부님들이 목자로써 첫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소임을 다 할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새 신부님을 맞이하는 분들은 정성을 다해 신부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첫 단추는 인편을 보내는 일입니다. 소임지에 따라 사정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외제차로, 어떤 곳은 중형차로, 어떤 곳은 경차로, 이도저도 힘들면 화물차로 할 수 있습니다. 모시는 도구의 차이가 정성의 차이일까요? 그저 다름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도구의 차이만큼 날지 의문입니다.

오래 전 부유한 분들이 많이 사는 성당에 주임 신부님이 부임하셨습니다. 새로운 바람을 위해 부와 권력이 가까운 총회장이 아닌 평범한(^^) 분을 총회장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사제가 가난해야 한다고 교황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제를 부유하게 하고 말씀을 잊어버리도록 하는 건 신자들로 보입니다. 가난을 무시하는 신자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을….”

수원교구 주보에 실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글중

“돌아보니 그 어느 것 하나 선물 아닌 것이 없습니다. 파릇파릇한 청춘도 선물이지만 저물어가는 노년기도 선물입니다. 충만한 기쁨의 삶도 선물이지만, 혹독한 고통도 우리를 성숙으로 초대하는 선물입니다. 삶도 선물이지만 죽음도 선물입니다”

본당 신부님이 위드 코로나를 위드 코리아로 말하십니다. 처음에 무슨 말인가 했지만 여러 번 듣다보니 귀에서 자동으로 해석해줍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발음이 아니라 더 큰 뜻이 있어서 일부러 그러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와 사람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물리칠 수 없으므로 함께 공생하자는 뜻입니다. 위드 코로나 이전은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였습니다. 코로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었고 사회적인 약자는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재난의 고통은 사회적인 약자에게 컸고 사회적 양극화는 더 커졌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이 위드 코로나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드 코로나는 위드 코리아입니다.
신부님의 혜안에 존경을 표하면서 저의 해석입니다. ㅋㅋㅋㅋㅋ

7.
무슨 무슨 제안요청서를 보면 최신 기술과 최신 흐름을 반영한 제안을 바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추상적인 목표는 같더라도 비지니스와 규모에 따라 다른 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않을까요?
그래서 생각해본 단어. 적정기술.
적정 기술(適正技術, 영어: appropriate technology, AT)은 한 공동체의 문화·정치·환경적인 면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기술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를 그대로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지않을까요?

8.
언론들이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무슨 대학 운동권출신’이라고 표현을 사용합니다. 생각이 다르지만 기자들이야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당사자들이 그걸 마치 훈장처럼 달고 다니면서 가끔씩 끄집어 내면서 자기 우월감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서 지켜야 할 것은 “그 때의 초심”입니다. 초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서 되돌아보고 되돌아 보면서 오늘을 살펴야 합니다. 세속적인 잣대로 성공적인 삶이라고 하더라도 성공속에는 우리 사회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으리라는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아주 많은 이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꼰대, 기득권”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졌으면 하는 단어.

“대학 운동권”

9.
몇 년전부터 동네에 신축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짓고 있죠. 그래서 함바집장사가 될 듯 하여 길 건너편에 하나 들어섰습니다. 이후 아파트 상가의 식당을 멀리하고 이곳으로 일하는 분들이 모입니다. 상호는 맛있는집인데 먹어 보면 그다지 맛은 없죠. 동네 신축을 맡는 건축회사들이 몇 있습니다. 건축주가 자비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회사들이 농협을 통해 대출을 받아서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바집에 모이는 분들이 일하는 분만이 아니라 십장, 건축회사 사장, 돈대는 사람등 다양합니다.
그중 한 사람이 한 달전부터 새벽에 와서 주차를 이상하게 합니다. T자로 된 골목. 차가 나오는 길의 1/2을 차지하고 일자 주차를 합니다. 새벽 출근을 위해 나오는 차랑 실랑이를 몇 번이나 했지만 고치치 못하네요. 오늘 아침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고급차를 몰고다니는 사람이…..”

아버지 세대에게 고급차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고 사회지도층입니다. 맞을 수 있지만 제 세대에게 고급차는 그저 돈의 상징입니다. 남을 배려하려 하는 마음을 돈에게 기대할 수 없죠.

10.
어떤 회사에 IT 도움을 주기 위해 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여성분들과 회의를 하면서 드라마를 주제로 대화가 잠깐 이어졌습니다.

“본방 사수를 거의 하지 않는데 전 검은 태양이 재미있네요.”
“갯마을 차차차가 너무 좋아요..”
“김선호때문에?”
“아니요. 신민아때문에. 너무 예쁘게 나오네요,”

오! 신민아 배우가 여성들의 워너비인 듯 하네요. 개인적으로 홍반장의 김주혁이 남주인공으로, 여주인공은 신민아씨가 괜찮아 보이지만 두 배우의 조합이 어떨지..

15회 줄거리중.

홍반장이 도시를 등지고 바닷가에 사는 비밀이 드러납니다. 그럴 수도 있고 드라마에서 비슷한 식으로 다루지만 개인적으로 틀린 사건과 해석입니다.
드라마중 홍반장은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펀드투자와 관련한 조언을 해주었을 뿐 불완전 판매와 같은 자본시장법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은 자기 책임하에서 이루어진 투자의 책임을 홍반장에 돌립니다.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 개인의 책임입니다. 물론 투자권유인이 위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수 있지만 드라마 배경인 리먼브라더스는 펀드매니저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인데도 펀드매니저를 탓합니다.
15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죽음을 다루는 장면입니다. 동네 할머니 3인방이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형님들은 그럴 때 없으셔? 몸은 늙어가는데 마음은 안 그래서 서글플 때”
“말도 느려지고 생각도 더뎌지고 자꾸 엇박자가 나. 세월이 야속하다”

김영옥 배우님이 분한 김감리 왈

“나라고 그런 적이 왜 없겠어. 근데 나는 지금이 참 좋다. “나이 먹으면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봤고 좋은 풍경도 많이 봤고 이거보다 행복한 게 어디 있냐. 행복하다. TV에도 나가봤고 노래자랑에서 노래도 해봤고 너희들이랑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재미지냐.오늘 노을이 참 고왔어. 오징어도 맛있었고 잘 둘러보면 귀한 거 투성이야. 나는 매일이 소풍 가기 전날인 것 같다”

그리고 잠이 들고 김감리는 편안히 눈을 감습니다. 늦은 밤 잠결에 눈을 뜬 할머니가 돌아가신 분을 보고.

“같이 놀러 가자더니 무슨 성질이 그렇게 급해. 잘 자요. 먼저 가서 기다려요”

11.
찾아도 찾아도 못 찾았던 네잎 클로버를 내가 지금 손쉽게 발견하여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예전의 토기풀이 아니고, 예전의 풀밭이 아니다. 과거이 풀밭은 장례식처럼 지나가버리고, 미래의 풀밭은 달갑지 않게 찾아오는 손님과 같은 확실한 죽음뿐이니.

이제와 생각하니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풀 같은 것. 들에 핀 들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 이미 사라져 그 서 있던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꿈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공동번역 시편 103장에 있는 말씀중 일부를 인용하여 쓴 문장입니다. 공동번역 시편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남았던 부분을 검색해보니 최인호씨의 소설이 나오네오. 최인호 베드로의 삼십대 초반에 쓴 소설중 ‘이상한 사람들’의 일부입니다. 항상 어려운 질문.

“인생이란?”

12.
오징어게임을 조금씩 보는 중입니다. 2회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 합니다. 실패가 가져온 과거의 기억과 겹쳤기때문입니다. 중간 이정재가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면서 소주 한잔이 생각났습니다. 그 날 저녁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오랜만에 집에서 소주 3잔을 마셨습니다. 또 몇 일후 동네사람들과 만나서 평소같으면 막걸리일텐데 소주를 선택했습니다.

쓰린 가슴을 달래주는 쓴 소주 한잔.
현실을 잠시만이라도 잊게 하는 소주 한잔.
그래서 우리의 벗인가 봅니다..

13.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며느리 같고 참 좋은’ 돌봄은 없다

칼럼도 지적하지만 돌봄을 며느리 혹은 딸의 몫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은 말로 돌봄이지 다른 말로 하면 ‘시중’입니다. 보통 가족끼리 폭탄돌리듯 돌립니다. 그중 가장 마음이 약한 자식이 맡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를 ‘효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임계점이 있습니다. 임계점을 넘으면 시중의 외주화가 이루어집니다. 요양병원행입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진료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투입합니다. 죽음의 지연이고 죽음의 의료화입니다. 어찌 보면 노령화가 꼭 인간에게 좋은 건 아닙니다. 자기몸을 간수할 때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그래서 아내와 이야기합니다.

내 부모는 내가 돌보자
내 몸은 내가 간수하자.
노화는 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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