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 년 새해 첫날 관악산을 오릅니다. 그동안 성당 교우들과 함께 올랐지만 나이들이 들어서인지 금년에는 혼자 올랐습니다. 번잡하지 않은 삼봉능선을 오를까 하다가 밤이라 위험해서 평소 다니던 케이블 능선을 올랐습니다. 어두컴컴한 새벽 6시 구세군 교회앞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악회를 뒤로 하고 홀로 올랐습니다. 의외로 혼자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오신 분들이 많더군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들은 무선조정 자동차로 관악산을 오르는 분들입니다. 오프로드 등산입니다.
케이블 능선을 올라가면서 찍은 일출입니다.
2.
여의도에서 일을 시작한지 벌써 25년이 넘어섭니다. 요즘 영화로 화제가 되고 있는 1987년 6월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하다가 IT와 관련한 사업을 시작한 때부터 따지면 30년이 넘어갑니다. 그 동안 바른정보, 넥스트웨어는 경영자로써, 아이낸스는 임원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고 헤어졌습니다. 헤어진 후 다시 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인연을 만들어 지금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지만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한다는 기쁨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잘못은 저의 모자람탓이고 기늘지만 길게 여기까지 여의도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주변의 도움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우연과 인연의 연속이었습니다. 2015년 말 코스콤 프로젝트를 무척이나 지친 가운데 마무리하였습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회의를 가졌던 몇 없는 경험때문입니다. 프로젝트를 하던 중 우연히 걸려온 전화가 어찌보면 2017년을 만든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서울외국환중개가 발주한 차세대프로젝트제안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었습니다. 2010년 한국자금중개 차세대프로젝트를 제안하여 수주했던 경험을 되살려 두 달정도 제안작업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차세대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제안하다보면 너무나 뻔한 속셈에 혀를 끌끌 찹니다. 고객이 요청한 요건을 충족하는 제품으로 제안을 하면 순수한 인건비로 지출하는 비중이 너무 낮아집니다. 결국 주사업자, 하드웨어 및 기간소프트웨어공급자만 이익을 보는 구조입니다. 지난 제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업무의 특성상 반드시 오라클을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이었고 값 비싼 프레임워크로 어플리케이션 개발하여야할 필요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바꾸려고 수많은 협의와 토론을 하였습니다. IMDB도 성능상 경쟁력이 있었던 회사 제품으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하고 발표했지만 예상했던 가격으로 낙찰이 되었습니다. 지금 수주한 회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소식을 들어보면 우여곡절이 많은 듯 합니다. 불행이 행운이 된 첫번째 우연이었습니다. 두번째 우연은 명동에 있는 모 회사 제안이었습니다. 앞서 IMDB를 개발한 회사를 통해 제안을 한 사업이었습니다. 뜨거운 여름 과천에서 명동으로 오가면서 협의를 하였지만 발주가 늦어지던 때입니다. 모 회사가 저에게 물어봅니다.
“DB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이를 걷어내고 IMDB를 교체하면 성능이 나오겠는가?”
“IMDB의 특징이 있으니까 성능이야 나오겠지만 가능하면 어플리케이션도 재개발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2017년 하반기 프로젝트는 이 대화가 시작이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회사, 생각하지못한 프로젝트때문에 하반기를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하여 50대 개발자로 프로젝트팀을 꾸렸습니다. AS-IS를 분석하기 위해 합류한 개발자도 AS-IS 기술구조에 무척이나 친숙한 분들이라 분석,개발 및 시험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끔 여의도 소식을 들으면서 여의도가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면 강남은 뜨는 태양과 같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느끼지 못한 활력이 느껴집니다. 젊은 개발자들이 많고 오래전에 보았던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개발자도 자주 봅니다. 물론 항상 크런치모드가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발하면서 토론도 많이 했습니다. 서로 협의하여 길을 찾아갔습니다. 금융과 같은 듯 다르기 때문에 도메인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기 위함입니다.
세번째 우연은 교육이었습니다. 코스콤 프로젝트를 할 때 요청을 받았지만 사정상 하지 못했던 교육을 했습니다. 그동안 교육기획자였지만 이번에는 강사였습니다. 주제는 디지탈트랜스포메인션, 블록체인, DevOps와 같은 주제들입니다.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정리하면서 얻은 것이 많았습니다. 앞서 개발만큼이나 교육을 통해 젊은 분들은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확실히 조직이 정형화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구성원들의 관심은 변화보다는 ‘안정’입니다. 대변혁의 시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기의식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교육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2017년을 마무리하면서 프로젝트도 끝냈습니다. 2017년 마무리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합니다. ZeroAOS이외의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혼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동안 함께 해온 동료들과 함께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는 2018년이길 기도합니다.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겨울산의 정상은 언제나 춥고 위험합니다. 일출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 손과 발이 얼어갑니다.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미래를 대비하여야 하고 겸손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