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자의 마음, 공급자의 마음

1.
지난 주말 주방기구를 살 일이 있어 하나로매장을 찾았습니다. 락앤락, 테팔 등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더군요. 아내는 그 중 해피쿡 진열대에서 이리저리 제품을 보고 있는데 파견나온 매장직원이 다가와 설명을 합니다.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후라이팬 두개를 들어 카트에 넣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매장직원이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합니다. 만약 “예. 알겠습니다. 다음에 와서 살께요?” 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제품이나 서비스를 팔다 보면 흔히 보는 모습입니다. IT영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한 발주를 내기 전에 발주사는 사전에 개발사들을 접촉하여 여러가지 정보를 얻습니다. 발주사로 보면 발주전 프로세스이고 RFI 과정입니다. 반대로 제안사는 고객과의 만남을 통하여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장점을 소개하여 발주시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프리세일즈활동을 합니다. 앞서 매장직원이 하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다만 길고 긴 시간입니다. 영업을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프리세일즈의 목표는 영업의 기회를 얻고 확률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구매자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습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등가교환입니다. 기회와 정보를 맞교환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자본시장내에 잘못된 관행이 있는 듯 ?합니다. “정보 따로 발주 따로” 입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FIX를 개발하고 난 후 영업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어느 증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FIX에 대해 알고 싶으니 방문을 해줄 수 있느냐?”

손인사정도를 생각하고 방문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FIX를 설명하는 자리를 한번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제품을 개발할 때 작성하였던 FIX 교재를 가지고 약속한 날짜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FIX프로토콜 교육이었습니다. 이후 담당자앞으로 몇 번 질문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소식이었습니다. 한참 후 알아보니 다른 개발업체에 발주하였다고 합니다. 사전교육을 열심히 했는데 제안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하고 시간만 날린 꼴이 되었습니다. 이후 증권사 담당자 근처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떤 자리에 보았습니다. 참으로 어색하더군요.(^^)
세상일이 재미있습니다.

2.
블로그를 통해 만난 협력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블로그 댓글을 달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연락을 했고 오랜기간동안 도움을 주고 받고 있는 파트너입니다. 만날 때마다 ?’증권사를 방문할 때 같이 가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저의 경험상 “프리세일즈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기회를 얻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딱 한번만 도와주기로 하고 어떤 증권사를 방문하였습니다.
KRX의 주문수탁제도가 변경된 후라 역시나 관심은 ‘Low Latency와 관련된 솔류션’들이었습니다. 저도 이야기를 하고 협력사도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리를 파할 무렵 BMT를 요청하더군요. 협력사는 아마 공급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제품을 이어서 BMT를 했다고 합니다. Latency 측정이 아주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환경을 구축하고 관련데이타를 얻기 위한 측정을 해야 합니다. ?몇 일전 찾아왔습니다. 뒷 소식을 전하네요. 다른 업체가 방화벽과 스위치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하며서 공급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기로 했으니 네트워크카드만 공급하라”

또다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와 처음 만났던 계기가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한 증권사가 원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고 무상으로 시험용 장비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언제 한번 기회를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했을 듯 합니다. 주문수탁제도가 변경된 후 발주가 나왔는데 다른 장비를 지정했다고 합니다. 일년동안 공을 들였던 탑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으리라 추측합니다. 내부 BMT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표준적인 절차와 방법에 대한 BMT를 포함한 제안을 받고 결정을 했다고 하면 흔쾌히 인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이 아니었을까요?

소트트웨어와 달리 하드웨어와 네트워크장비는 공급하는 업체가 아주 많은 듯 합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공급하는 회사가 여럿이고 서로 다른 경로로 제안을 합니다. 위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나름 공급을 머리속으로 그리면서 다양한 제품에 대한 BMT를 했던 공급자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다른 흐름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발주자와 공급자로 만나 비록 공급을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 신뢰하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꼭 발주하도록 해야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영업이란 꼭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입니다. 앞서 “정보 따로 발주 따로”라는 관행이 혹 있다고 하면 지양되었으면 합니다. 좀더 공급자를 파트너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곳의 IT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회사 외부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정보와 기회를 줍니다.

2 Comments

  1. 백팔번뇌

    증권사들의 그런 마인드 때문에 관련 IT업체들중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죠..
    본인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도 정작 하청업체들은 안죽을 만큼만 쥐어짜 뼈까지 발라먹는 곳.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요)
    그리고 필요없으면 가차없이 내치죠.
    무지하게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늘 좋은 내용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Reply
    1. smallake

      증권사 IT담당자들의 마인드 보다는 프로세스이자 관행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같은 곳에서 밥 먹고 사는 동업자들입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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