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전 술자리. 정치활동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어떻게 온라인전략을 가져갈지”를 안주삼아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 때 제가 한 이야기의 요지입니다.
“그동안 네이버에 비하여 다음은 시민운동에 친화적이고 열린 태도를 취했다. 그렇지만 다음카카오가 다음을 내리고 카카오로 간다는 것은 이런 정책이 바뀌는 징조로 이해해야 한다. 네이버나 카카오나 뿌리로 따지면 ‘삼성’으로부터 문화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기업의 이익,숫자를 중요시 하는 문화로 바뀜을 의미한다. 아마 네이버가 보여주는 모습과 비슷한 태도를 보일 듯 하다.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분들은 ‘다음’에서 인터넷공론장을 보았을 듯 합니다. 이 때 어떤 분이 시민의 날개를 이야기했습니다 제안문중 일부입니다.
문득 ‘우리에게도 이런 플랫폼 하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디를 가든 ‘기가로 터지는’ 인터넷 환경과 세계 압도적 최고 수준인 스마트폰 보급률 그리고 독재란 독재는 모두 무너뜨린 시민의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민사회를 열어갈 토양이 충분함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쇠고기 촛불시위나 다음 아고라에서 30만 명이 서명한 ‘국정원 국정조사 청원’처럼 한껏 타올랐다가 끝내 잦아들어 낙담만 키울 것이 아니라, 한번 참여한 시민의 힘이 누적되고 확산되려면 시민이 주인인 온라인 광장이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기업 혹은 온라인기업이 사회적 책임보다는 사적 이해를 중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결과로 나타난 대응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공적 역할을 회사의 가치로 자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PC통신시대의 나우콤입니다. 강창훈 대표의 나우콤은 하이텔이나 데이콤에 비하여 시민운동에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영업적인 이유이든 아니든 나우콤이 만든 공간은 시민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우콤이나 다음은 온라인공간이 민주주의를 위한 공론장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이를 통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듯 합니다. 그래서 좋은 기업으로, 훌륭한 기업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2.
다음이 다음카카오로 변하고, 다시 카카오로 바뀌면서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등장할 듯 합니다. 사라지는 것중의 하나가 ‘다음’의 기업문화입니다. 창업자 이재웅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입니다.
“1995년 다음을 설립한 이재웅 창업자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실험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경영을 펼쳐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ㅎㅎ 회사경영을 무슨 문학사조초럼 분석하는 신문기사를 처음봤어요.. “실험주의적, 낭만주의적 경영을 펼쳐왔다” 과분하지만 제가 창업한 이후로 받은 가장 멋진 찬사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세상의 어느 경영자가 저런 멋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실험은 실험으로 끝날 수도 있지요. 물론 실험이 성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많은 것을 실제로 바꾸었지만), 세상이 더 빨리 바뀌었다면 자신도 바뀔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지요. 즐거운 실험은 이제 일단락 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해왔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 될거라고 믿습니다. 그 실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각자 새로운 자리에서 세상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즐거운 곳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양한 소리를 조화롭게 모아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실험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서로 힘들게 한 것도 많겠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들과 이렇게 모여서 같이 즐겁게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있다는 즐거움에 취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갔던 20년. 영속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 DNA는 영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 이름은 소멸되지만 그 문화, 그 DNA, 그리고 그 문화와 DNA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으니까요.
세상을 바꾸는 힘든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이 힘든 세상을 “즐겁게’ 바꾸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자랑스럽게 그 과정이 즐거웠고 그리고 우리가 어느 정도는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모두 같이 노력한 사용자, 회원, 동료 여러분들이 한 일입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리겠지만, 전설이 되어서 더욱 자랑스러운 일에 나도 참여했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회사였다고 믿습니다.
물론 후회도 많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져서 요다음에 같은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 경험을 잘 전수해서 새로운 세대가 더 잘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세상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이제 없어집니다만 요다음엔 선배들을 거울삼아 새롭게 이 사회의 다양성을 좀 더 진작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조화롭게 모아내고,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면서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많은 서비스와 회사가 후배, 동료들에 의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설을 만드느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새로운 전설을 기대하느라 가슴이 두근두근 뛰네요! 고맙습니다!”
창업자의 생각만이라고 하면 다른 평가가 가능하지만 직원들이 공감하는 문화라면 다를 듯 합니다.
내 타임라인은 온통 ‘굿바이 다음’.
6년 반 다음에서 일했다. 좋은 회사였다. 다음이라서 가능했던 일들에 고맙다. 손님이라도 오시면,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향 좋은 아메리카노 한 잔 드리면서, “저희 직원들이 낸 커피 값을 모으고, 1년에 한 번 바자회 수익을 모아 해마다 제3세계에 희망학교를 짓고 있어요. 이번엔 라오스였죠”라고, 착한 기업 티를 냈다.
근무환경을 슬쩍 구경시켜 드리며 “저희는 사장님도 방이 없어요. 모두 그냥 나란히 책상에 앉아서 일해요. 수평적 기업 문화 강조하잖아요. 사장님도 사장님이 아니라 종훈님, 세훈님, 그냥 이름을 불러요”라고 잘난척 했다.
“기업이 부동산은 뭐하러 해요. 기업 열심히 하면 되지”..창업자 철학에 따라 서울엔 집 한 칸 없는 셋방살이 처지이지만, 수도권 대신 제주에 터잡는 프로젝트 등 끊임 없이 도전했던 과정을 즐겁게 설명했다.
제주 사옥에서 하늘로 향한 창 아래 작은 소파가 있는 도서관 자리를 보여주며, “비 오는 날, 유리 천정 아래서 일하는 재미는 뭐라 말 못해요. 제주 왔을 때, 운이 좋으면 여기서 일해요” 자랑했고, 매달 동료에게 ‘설레는 책’을 선물하는 제도를 으스댔다. 비영리 단체 관계자들에게 티스토리를 기반으로 홈페이지를 그럴싸하게 만드는 노하우나 SNS 운영 실무를 가르치는 IT 프로보노 프로그램도 자랑에서 빼놓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터넷 기업 중 유일하게, 다음이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낸 다는 점을 칭찬하더라고 회사 내부에 신나서 전했고, 누군가 힘 센 분이 맘에 안드는 글, 지우란다고 지우거나, 내리라고 해서 내리는 일 없다는 걸 쿨하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애국적 할아버지들이 뉴라이트 단체와 함께 찾아와 아고라 폐지하라는 시위를 하던 그 해 여름, 그래도 대한민국에 누구나 떠들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고, 대한민국에 이런 기업 하나 쯤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국세청 조사, 검찰 조사, 경찰 조사, 공정위 조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해도 투명한 기업이라 별 탈 없이 하던대로 열심히 하노라 했다.
미디어 서비스가 바깥의 오해와 달리 공정하게, 미디어의 사회적 책무를 절감하며 시스템에 따라 운영된다고 설명하는데 쾌감을 느꼈고, 대외협력 과정에서 밖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모든 걸 당당하게 설명 가능한 회사란데 안도했다. (이른바 대관 업무라 불리는 대외협력 일을 여자에게 맡긴 국내 기업, 더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이것도 다음 다운 태도다.)
세상의 즐거운 변화를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던 회사. 꾸준히 매년 몇 백억 흑자를 냈으니 그다지 나쁜 성적표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ICT 생태계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데 힘이 부족했나보다. 멜랑꼴리한 밤이라 아쉬움과 비판적 지지의 목소리를 더할 필요는 없겠다.
내일 다음카카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카카오의 짧지만 빛나는 역사가 레전드가 되어 가듯, 20년 다음의 역사는 고비고비 한국 인터넷의 증인. 다음카카오가 이제부터 만들어낼 도전들이 더 즐겁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일개 직원이 뭐 그리 감상적이냐고? 다음은 이 정도 애정은 받을 만한 회사였다. 안녕.
<다음> 한국에 이런 기업이 있었다중에서
3.
새로운 다음, 카카오를 느낄 수 있는 두가지 글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임지훈 대표가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Tell Me가 문화가 아니라 프로젝트인 것이 변화라면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신임대표이기때문에 필요한 것이지만.
지난 한 달여 동안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신다면 단연 한 가지인데요, ‘100명 만나기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고,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한 프로젝트였는데, 구성원 100명과 1:1로 30분씩 면담을 하는 그런 시간이었답니다. 100명이 편향되지 않도록 People & Culture 팀에서 구성원들을 추천해줬고, 추천된 분들 중에서 저랑 면담하고 싶은 분들은 신청을 하는 것이었고요, 쉽게 얘기하면 “신임 대표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세요”였던 거죠. 저희 회사를 실제로 움직이는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리 회사에는 정말로 좋은 인재들이 많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아주 좋은 문화를 갖고 있구나’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출발, reboot중에서
둘째는 오늘 아침 기사입니다. 기업의 숫자를 위해 가치를 포기한 경우로 느꼈습니다.
카카오는 이날 저녁 7시 보도자료를 내어 “신중한 검토 끝에 카카오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통신제한조치’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신제한조치는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뜻하는 용어로, 카카오톡의 경우 대화방 안에서 나눈 대화를 검열하는 행위를 뜻한다.
카톡, 감청 협조 재개…‘불응 방침’ 1년 만에 ‘백기’ 중에서
아무튼 어떤 칼럼을 보고 쓴 트윗으로 마무리합니다.
구글과 다음카카오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전략적 결정을 하였습니다. 한쪽은 내부의 개발자, 다른쪽은 외부의 투자자를 단일CEO로 선입했습니다. 만약 개발자라면 어느 회사에 더 많은 열정을 쏫을까요? http://t.co/uT5zkg6yA9
— smith Kim (@smallake) August 11, 2015
다음을 버리고 변신을 꾀한 카카오의 현재입니다.
양 날개 잃고 추락하는 카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