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속의 사람들

1.
빙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글은 아니지만 기록을 위해 남깁니다. 먼저 떠난 사람들입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구조조정을 실시한 대형·중형 증권사 6곳의 구조조정 대상자 1400여명을 대상으로 어떤 사람들이 주로 퇴직 대상이 됐는지 조사했다. 이 결과 전체 구조조정 대상자 중 한창 일할 나이인 30 후반에서 40대 중후반이 전체 구조조정 대상자의 3/4을 차지했다. 증권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한 40대 후반에서 50대의 부장·이사급 고참들도 구조조정 대상자의 다수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경우 구조조정은 희망퇴직자를 받는 형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구조조정 계획이 통보되면 회사 분위기가 술렁인다. ‘회사에서 나를 찍어두고 계획을 발표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해지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더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분위기 때문에 사직서를 낸 이들도 있다”며 “반면 성과가 우수했던 이들이 사직서를 내면 반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희망퇴직자들은 법정 퇴직금과 별도로 20개월에서 최장 30개월치 임금을 위로금조로 받았다. 20년 이상 근속자의 경우 위로금으로 2억원 이상에 퇴직금 1억원을 더해 약 3억원 가량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다만 근속기간이 짧은 젊은 층일수록 위로금과 퇴직금 규모는 줄어든다.

신참의 퇴직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젊은층의 이탈은 하루라도 빨리 나가야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예를 들어 최근 구조조정을 실시한 A증권사의 경우 이사대우 직급의 42%가 퇴직원을 냈다. 하지만 사원급 직급인 대리와 주임 직원 가운데 퇴직원을 낸 이들의 비율도 38%와 24%에 달했다. 부장, 차장급 직원의 퇴직원 제출비율은 각각 30%와 25%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경우 영업환경 악화 등으로 인한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며 “퇴직금과 위로금을 더해 많으면 3억원의 일시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증권업계에서 떠나려는 의지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원을 제출한 이들의 직종은 지점 영업직이 대다수였다. 한 대형 증권사의 경우 전체 구조조정 대상자 중 75%가 지점 근무자였다. 증권사들이 고객들에게 받는 수수료율이 떨어진데다 증시 거래대금도 급감해 영업환경이 극도로 악화된 탓이다.

1997년만 해도 1억원어치 주식이 거래되면 증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88만원(오프라인 수수료 기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최저 1만원(온라인 수수료 기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수수료율이 낮더라도 총 거래대금이 늘어나면 증권사 수입이 늘 수 있겠지만 현재 거래대금은 2011년의 절반 수준에 그칠 정도로 줄었다.

문제는 한창 나이 대의 전문인력들을 재흡수하는 통로가 전무한 형편이라는 점이다. 구조조정 대상자 중 일부는 투자자문사를 차려서 나가거나 투자자문사·자산운용사로 흡수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증권업과 전혀 상관없는 직종으로 떠나거나 벤처업체를 창업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여의도서 옷벗은 3000명, 그들은 어디로 갔나?중에서

그러면 남은 사람은 어떨까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취재를 했네요.

“최근의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내부 반발은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어요.”

지점장 A씨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쳤던 상황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선배와 후배가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을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고 이들은 소중한 인력”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언젠가는 구조조정을 해야될 시기가 오고 지금이 그 시기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금융회사들이 현재의 구조를 지탱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며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더 시간을 끌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증권사의 문제보다는 시장 환경 악화, 규제 강화, 거래대금 축소 등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지점에서 근무하는 B대리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선 슬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일해왔던 직원들 가운데 비용도 많이 나가고 일은 안 하는 직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부장급 한 사람 비용으로 사원 3명 혹은 대리 2명 정도를 고용할 수 있다면 조직을 정비하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도 육아를 이유로 퇴직을 신청한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직원을 제외하면 40대 부장급에서 구조조정이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지원담당 C상무는 이들에 대해 크게 미안함을 나타냈다. 그는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직원들이 준비과정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내몰린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며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자라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구조조정을 단행한 증권사들은 퇴직자들이 일정 기간동안 영업전문인, 투자권유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만족스러운 급여 수준은 아니다. C상무는 “이분들은 단기계약직이어서 기본급만 받게 된다”며 “그래도 갑자기 나가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 완충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바람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곳에서는 다소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느 직원은 “희망퇴직 신청 기간 동안에는 내가 구조조정 대상자에 오른 것은 아닌지 혹은 내 주위에 앉아있는 동료가 퇴직을 신청한 건 아닌지 신경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며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한 직원은 “사장님이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하는데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며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이 느껴져 다들 숙연해졌다”고 말했다. 윗선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구조조정 후에 남은 사람들끼리는 단합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반면 타 증권사 직원은 “소위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는 사장님이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자르는 것 같더라”며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씁쓸한 뒤끝을 선사했다.
증권가 구조조정,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중에서

2.
그러면 구조조정을 앞 둔 사람들은 어떨까요? 현대증권 대표가 위기경영을 선포한 이야기입니다. 마른 수건을 짜고 그래도 힘들면 사람을 짜릅니다. 항상 정해진 수순입니다만 과정에서 사람들은 지칩니다.

담화문에 따르면 현대증권은 최근 국내 대형 회계법인과 세계적 인사 전문 컨설팅회사로부터 경영진단을 받았다.

그 결과 현대증권은 앞으로 연간 8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예측되고, 특히 리테일 사업부문은 최대 1천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윤 사장은 담화문에서 “현대증권이 인건비당 영업이익과 인적자본 투자수익률 등 각종 지표상 경쟁사 대비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현재 인력 규모도 적정 수준을 상당히 웃도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이어 윤 사장은 “지난 연말부터 주요 경쟁사들이 비상경영에 돌입했고, 우리도 더 이상 비상경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윤 사장은 “매년 1천억원 이상의 비용절감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재 실시 중인 경영혁신 활동 외에 ▲추가 조직 통폐합 ▲운영경비 20% 추가 축소를 추가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연차 사용 촉진제도 ▲광고선전비 감축 ▲회식비·접대비 통제 강화 ▲전산운용비 및 소모품비 절감 등도 이미 실시 중이거나 실시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사장은 “그동안 가능하다면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과 효율적인 이익성과 배분 등이 더 바람직하다고 피력해 왔지만, 경영혁신 방안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가 없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오는 13일 오후 6시 반부터 경기도 용인의 현대증권 연수원에서 임원, 전국 지점장 및 부지점장을 소집해 비상경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 “비상경영 돌입한다”중에서

같은 내용을 보도한 다른 기사는 이런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반면 다른 증권사 직원은 “결국 사람을 자르면서 살아보겠다는 얘기”라며 “회사는 살지 모르지만, 자리에서 밀려난 수천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는 잔인하기만 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비용절감’ 피할 수 없다면…증권가 사장의 위기극복중에서

그러면 빙하기 여의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불경기는 여의도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공간을 놀리지 않으려는 여의도 술집들은 점심시간에 옆 식당에 자리를 임대해 주고 있다. 술집에서 된장찌개와 회덮밥 같은 식사를 하는 증권맨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증권사의 강모 과장은 “일반 식당처럼 북적이지 않아서 좋지만 불황 때문에 생긴 현상이어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어떤 술집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증권맨들에게 점심시간 방을 수면실로 빌려주기도 한다. 이곳에선 점심때마다 직장인들이 긴 소파에 드러누워 곯아떨어진다. 여의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증권맨들이 퇴근하면 바로 귀가하거나 대부분 1차에서 약속을 마치는 통에 요즘 여의도 밤 풍경은 썰렁하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익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고객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선착순 현금 경품까지 내걸면서 호객을 한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자사 모바일 거래 시스템으로 한 차례 이상 거래하면 통신비 등 지원금 20만원을 지급했고, 올 들어선 수수료가 붙는 해외 증시 시세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에겐 3만~5만원의 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온라인·모바일 거래 시스템 신규 고객 중 추첨을 통해 매수한 주식과 동일한 주식을 한 주씩 선물로 줬고, 올해엔 다른 증권사에서 옮겨 온 고객에게 최대 13만원의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삼성증권도 자사 온라인이나 모바일 시스템으로 금융상품 거래를 시작한 고객 중 선착순 1000명에게 1만원씩 경품을 주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고난의 행군’ 여의도 증권가는 지금…중에서

3.
보험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험도 구조조정중이라고 합니다. 딱히 실적이 없는 판매인들을 내친다고 합니다. IMF 이후 가장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은 은행은 어떨까요? 시티은행이 시금석입니다. 과다점포의 후유증입니다.

노조의 반대로 잡음이 일었던 씨티은행의 희망퇴직 신청이 오는 13일로 마무리된다. 씨티은행 노조는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희망퇴직금지 가처분신청을 하는 등 희망퇴직은 구조조정 수순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지만 사측은 희망퇴직 신청을 강행했다.

노조의 반발에도 씨티은행 희망퇴직 신청은 이미 500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감까지는 오히려 노조 측이 점포폐쇄에 따른 구조조정 인원으로 예측한 650명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사측이 제시한 파격적인 조건 앞에서 노조의 외침도 생활논리를 넘지 못했다. 씨티은행이 제시한 60개월 규모의 퇴직금은 은행권에서도 사상 최대 규모다. 씨티은행 내부에서도 특별 추가 퇴직금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씨티은행은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일종의 복리 개념인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어 그 금액도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지난주에 신청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여행 상품권 200만원까지 지급했다. 일각에서는 씨티은행의 파격적인 조건을 두고 희망퇴직의 ‘바이블’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희망퇴직과 인력 구조조정이란 사측의 방침 앞에서 은행권 노조 파업은 점차 힘을 잃는 모습이다. 지난 2011년 SC은행의 구조조정 반대 파업에서도 결국 노조가 아무런 성과 없이 사측의 요구를 수용했고, 이번 씨티은행의 단계별 파업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논리는 ‘무임금 무노동’ 원칙 앞에서 노조도 선뜻 파업 카드를 꺼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씨티은행 희망퇴직이 우리나라 금융권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씨티은행이 가시적으로 전 지점의 30% 폐쇄를 강행했지만, 국내 시중 은행 역시 과대 점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권에서 비대면 채널 이용 비중이 90%를 넘어선 상황에서 점포 효율화 방안은 은행권 미래 먹거리에 대한 화두다.

씨티은행 희망퇴직은 표면적으로는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이지만 결국은 과다 점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다. 세계 1위의 웰스파고 은행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순이익 감소를 피해 가지 못했다. 웰스파고 은행은 과다 지점으로 인한 비용을 인력 구조조정이 아닌 은행 점포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등의 군살빼기, 매장의 상담 창구를 없앤 미니창구 등으로 고정비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웰스파고의 교훈을 우리나라 은행들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씨티은행 희망퇴직이 은행권에 던지는 메시지중에서

구조조정은 필요합니다. 회사를 살린다는 말은 곧 회사가 고용하는 사람을 살린다는 뜻입니다. 다만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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