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1.
광화문 교보문고 뒷골목. 지금은 재개발로 다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1981년 전두환정권이 들어섰던 해, 대학을 입학한 저는 교보빌딩 바로 뒷편에 있는 막걸리집을 자주 다녔죠. 교보문고는 대표이사 시절 해외기술서적을 구하러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교보문고를 제외하면 더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글판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의도에 있는 교보빌딩으로 글판을 접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화문을 상징하는 문화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멋진 일입니다. 알고 보니 1991년부터 시작한 일입니다. 1991년 부터 걸린 글판을 정리한 광화문글판(1991-2013)을 보니까 1998년부터 시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교보생명 신창재회장은 인터뷰에서 이런 설명합니다.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광화문 글판’은 원래 교보생명 직원용이었다고 들었다. 요즘은 문구 선정도 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결정한다더라.
“교보 명함만 내밀면 다들 광화문 글판 얘기를 먼저 해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드려야겠다고 결정했다. 간혹 난처한 적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초창기였나.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을 때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라는 문구가 걸리는 바람에 교보생명이 파병을 반대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웃음)”

2.
2011년 서울시민에게 조사를 하여 광화문글판중 깊은 인상이 남긴 것을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1등이 다음입니다.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광화문 교보생명 글판을 보면 2005년이후 주옥같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판에 올라갈 시는 어떻게 선정할까요? 한겨레신문기사가 쓴 참관기중 일부입니다.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박남준, 깨끗한 빗자루)를 추천한 유제상 카피라이터는 “봄비를 빗자루로 표현한 참신함, 봄비가 주는 청명한 느낌이 와닿았다. 묵은 때를 새 봄에 벗겨낸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한강, 괜찮아)는 상처받거나,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위한 다독임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샀다. “내 안의 ‘타인’에 대한 위로와 관용, 자신에 대한 용서를 담았다는 면에서 세태와도 연관된다”(곽효환 시인)는 의견도 나왔다. 그 외에도 ‘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 중 하나만 보여주마/ 그리고 내일 또 하나’, ‘사랑한다, 내놓고 하지 못한 그 말이/ 봄이 다 가도록 절벽 끝에 매달려 있었다’등을 두고 각론이 오갔다.
‘광화문 교보 글판’ 선정, 문학상 심사 뺨치네중에서

이런과정을 통하여 선정한 2014년 봄 글판의 글귀입니다.

2014KYOBO1

3.
교보생명을 설립한 신용호 회장은 존경받는 기업가였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분이 어떻게 큰 기업을 일굴 수 있었을까. 책 덕분일까.
“책이 아니라 의지였다.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불굴의 의지. 그런 의지가 있다면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 아버님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선배들에게 책을 빌려서 독학하셨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배웠고 실전에서 다졌다. 요즘 말로 하면 ‘북 스마트’한 사람이 아니라 ‘스트리트 스마트’한 분이었다. 생전에 아버님이 교수들과 얘기를 나누면 다들 깜짝 놀라셨다더라. 초등학교도 안 다닌 사람이 배웠다는 식자들보다 훨씬 체계적인 사고를 갖고 계셔서. 아버님 말씀 중에 명언이 있다. 세상에는 ‘거저’와 ‘비밀’이 없다. 모든 일에는 코스트(비용)가 따르고 조직은 거짓이나 비밀이 없이 투명해야 한다는 거다. 요즘 경제학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아닌가. 중요한 건 제도권 교육이 아니라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겠다는 강한 의지라는 걸 아버님이 보여주셨다.”
―신용호 전 회장은 어떤 타입의 리더였나.
“감성리더십이 뛰어난 분이었다. 숫자와 셈에는 한없이 약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기막히게 움직이셨다. 아버지한테 칭찬을 받으면 하늘로 날아갈 듯 기쁘고, 야단을 맞으면 눈물이 쏙 빠졌다고 하더라. 격려와 질책을 지혜롭게 하시면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참 잘하셨던 것 같다. 말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셔서도 임직원들을 위해 음악회를 여는 등 치어리더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셨다.”

그런 리더십이 반영된 탓인지 광화문글판 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더군요. SNS드라마인 ‘러브인메모리’입니다. 2탄이 진행중입니다. 광화문 글판만큼이나 따뜻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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