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위한 기도

1.
2013년 마지막 날.

조조할인으로 영화 ‘변호인’을 보았습니다. 극중 진우가 읽었고 변호사 ‘송우석’이 세상에 대한 의식을 바꾸한 책들은 80년대 초반 대학생이었다면 한번쯤 접했던 것들입니다. 저 역시 진우가 독서토론을 하던 그 때, 대학 동아리에서 같은 책들을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진우였지만 특별하지 않은 진우입니다. 그 시대 많은 이가 진우였습니다.

변호사 ‘송우석’은 속물 변호사입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하여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으려합니다. 처음으로 국보법 재판을 맡아 변론하고 돌아온 날, 잠자고 있는 아내와 두 아이를 바라봅니다. 돈을 밝혀서 속물이라고 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입니다. 우리 부모들입니다.

변호사 ‘송우석’이 변화하였던 밑바닥에 이런 애정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국밥집 아들이지만 남 다른 애정을 가졌던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송우석은 말합니다.

“건우와 연우에게 이런 나라를 물러주지 않기 위해서 변호를 하겠다.”

왜 변호사가 아니고 변호인일까요? 법정에서는 변호인이라고 부릅니다. 법정 드라마를 부각하려고 변호인이라는 제목을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사람 인(人)으로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부와 안락을 버리고 약하고 고통받는 이를 택하여 고난을 받았지만 대신 사람을 얻은 사람이야기가 아닐까요? 꼭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아도 80년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모습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마지막 변호인들을 호명할 때입니다. 한명의 변호인이 99명의 변호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결국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이름이 불렸는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영화 ‘변호인’을 과거에 머물지 못하도록 합니다.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영화는 암묵적으로 또 다른 ‘변호인’을 말합니다. “세상을 향한 절규를 하라”고 합니다. “삶에 지치고 아픈 자식 세대를 위해 아버지 세대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라”고 외칩니다. “다시금 달걀이 되라”고 합니다.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요,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달걀은 깨어나 그 바위를 넘는다”

2.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던 2013년을 보내면서 2014년은 맛이 있고 흥이 나는 한 해이길 바랬습니다. 변호사 송우석이 가족을 위해 속물이 된 것처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다하도록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펼친 신문에 쓰인 안도현의 글을 보면 보았습니다.

새해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난데없는 불행으로 마음 졸이지 않게 하시고, 가진 게 많아서 신나는 사람보다는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가 되더라도 ‘대박’의 요행 따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내 와이셔츠를 적시게 될 땀방울만큼만 돈을 벌게 하시고, 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열정을 소비해온 지난날을 꾸짖어주소서.부디 내가 나 아닌 이들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던 이에게는 남의 자식의 구멍 난 양말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내 말을 늘어놓느라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파도 소리를 담는 소라의 귀를 주소서. 백지장처럼 맑고 높은 정신으로 이 풍진 세상을 견디게 하소서. 이 땅의 젊은 아들딸들에게 역사는 멀찍이 서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프게 몸에 새기는 것임을 깨우쳐주시고, 늙고 병들고 나약한 이의 손등에 당신의 손을 얹어 이들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시간을 연장해주소서. 당신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시고, 통하지 않는 것을 통하게 해주소서. 겨울 팽나무의 흔들리는 가지 끝과 땅속의 묵묵한 뿌리가 한 식구라는 걸 알게 하시고, 숲 속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길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골목길이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 당신이 괴롭지 않은 세상 일구게 하소서.

가슴을 울립니다.

제가 잊고 살아도 거부하려고 해도 항상 제 마음속에 함께 계시는 주님!

2014년 먼동이 트려고 합니다. 주님과 함께 가야할 앞으로 1년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난데없는 불행으로 마음 졸이지 않게 하시고, 가진 게 많아서 신나는 사람보다는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대박에 눈이 멀었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가 되더라도 ‘대박’의 요행 따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내 와이셔츠를 적시게 될 땀방울만큼만 돈을 벌게 하시고, 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열정을 소비해온 지난날을 꾸짖어주소서.

부디 내가 나 아닌 이들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내 말을 늘어놓느라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저에게 파도 소리를 담는 소라의 귀를 주소서.

백지장처럼 맑고 높은 정신으로 이 풍진 세상을 견디게 하소서.

겨울 팽나무의 흔들리는 가지 끝과 땅속의 묵묵한 뿌리가 한 식구라는 걸 알게 하시고, 숲 속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길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골목길이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 당신이 괴롭지 않은 세상 일구게 하소서.

우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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