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문을 보면 금융투자회사들의 CEO를 소개하면 “무슨 리더십”이라는 말로 미화합니다. 리더십이 몇 마디의 단어로 만들어지고 조직이 움직여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우기 위기에서 빛나고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하면 요즘같은 방하기에 반짝반짝 리더가 많아야 하지만 리더들이 택한 결정은 비슷합니다.
“닫고 짜르고 밀어내기”
구조조정중입니다. 기업은 살기 위해 몸집을 줄이고 있습니다. 더우기 기업간의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으려면 물만 먹는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금융위원회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최악의 경영환경에서도 살아남아야 하기때문입니다.
저도 구조조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덜 추웠던 2004년 불황 때 저는 대표이사였습니다. 한동안 작지 않은 인원의 생계를 꾸려나갔던 회사입니다. 매출을 급격히 떨어지고 지출을 줄지 않았습니다. 경기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현상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회사를 살리려면 인원을 정리해야 합니다.”
당시 재무를 맡고 있던 팀장과 외부 컨설턴트가 똑같은 목소리로 한 제안입니다. 이 때 저의 결정입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 경기가 나아지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 결과 몇 년뒤 직원들은 체불, 저는 부채를 안고 회사는 사라졌습니다. 이후 구조조정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모두를 살리려고 다 죽게 하는 기업가는 경영할 자격이 없다”
이 때문에 지금 여의도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조정도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기업이 망해서 모든 직원이 피해를 보다는 것보다, 몇 증권사가 망해서 다른 증권사들이 혜택을 보면 최악에서의 윈윈이라고 봅니다.
2.
한겨레신문의 곽정수 기자가 토요판에 쓴 기사 LIG·동부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까를 보면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두 극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와 같은 경우로 STX와 동양입니다. STS 회장이 한 말인 “업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나를 믿고 조금만 더 참으라”는 남의 이야기같지 않습니다. 흔히 창업자이고 기업에 대한 잘못된 애착을 가진 기업가들이 자주 보이는 실수입니다.
15년 전 외환위기 당시 외부 차입에 의존한 무모한 사업 확장으로 30대 재벌의 절반이 쓰러지면서 대마불사 신화도 종말을 고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속에 기업경영 전략도 외형 확장에서 내실 위주로 확 바뀌었다. 하지만 형편이 나아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대마불사의 망령이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에스티엑스의 강덕수 회장은 구조조정 필요성이 거론될 때마다 “업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나를 믿고 조금만 더 참으라”고 제지했다고 한다. 웅진·동양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룹은 공중분해되고, 총수들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불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다가, 전부를 잃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조금 아쉬운 사례도 소개합니다. LIG 그룹 구자원회장의 경우입니다.
그렇다 해도 구 회장이 수십년간 키워온 그룹의 주력 회사를 포기하기로 결단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열정을 모두 바쳤던, 제 인생과도 같은 회사”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구 회장이 애초 엘아이지건설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것은 엘아이지손해보험에까지 부실의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던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엘아이지손해보험을 팔아 부실을 해결하는 게 더 현명했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과 같은 극한상황은 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미리 대응한 경우도 있습니다. 동부증권입니다.
17일에는 자금난을 겪어온 동 17일에는 자금난을 겪어온 동부그룹이 3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고강도 자구계획을 내놨다. 2015년까지 주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동부메탈 등을 팔고, 김준기 회장의 사재 출연을 더해 취약한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동부하이텍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김 회장이 10년 이상 땀과 눈물을 흘렸던 핵심 사업이다. 웅진·에스티엑스(STX)·동양이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다가 무너진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이 직원들과 나눈 대화가 기사로 다루어졌습니다.
지난 금요일 기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참으로 솔직하고 리더’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남은 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자 하는 유혹이 많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기사중 질문과 답변입니다.
“직원들이 구조조정으로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이냐”
“내가 여러분의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와라. 여러분은 다 큰 어른이다. 동기부여를 (스스로) 하지 못하면 가정이 깨지는데 내가 왜 여러분의 동기부여를 해야 하나. 나는 여러분을 낳지 않았다”
“급여가 20%씩 깎이면 생계에 타격을 받는 직원이 다수 있고 이들이 과연 영업에 매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좀 더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생각이 있느냐”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대안을 가져오라. 왜 자꾸 나보고 하라고 그러냐”
저는 회사가 망해가는 그 때,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헛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마치 도박판에서 큰 돈을 잃어버리고 마지막 한판, 한판에 모든 것을 건 이의 심정이었습니다. 그것은 경영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현실은 냉정합니다. 현실을 냉정히 보도록 하는 것도 리더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