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인연들

1.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뿌리를 거슬러 가면 20년이 넘었습니다. 90년 초반 IBM에 있던 분이 나와서 만든 대원(?)출신들입니다.? 세월이 흘러 원(元)기업이 망하고 다른 기업으로 옮기고 다시 망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흩어졌습니다.

지금 회사 사장님은 신입사원으로 출발하여 마지막에 임원으로 계시다 현재의 기업을 창업하였습니다. 임원이라는 지위는 중소기업에서 참으로 묘합니다. 경영자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창업자가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창업자가 전권을 행사하면 일반 실무자와 다른 없는 역할을 합니다. 들리는 소리에 따르면 개발자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권한을 위임받지는 못한 듯 합니다.

어찌 되었든 개인의 성격이나 매력때문에, 회사에서의 역할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물론 전 회사 사장님도 가끔 방문을 합니다. 또 때가 되면 원(元) 사장의 기일도 연락하여 챙깁니다.사람이 사람의 매개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장점입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2.
92년부터 15년을 대표이사로 있었습니다. 바른정보시절 함께 했던 개발자들은 네명입니다. 들리는 풍문은 있지만 현재 연락이 닿는 사람은 대만에 있는 분 한 명입니다. 이 때 헤어질 때 서로 악감정이 없었는데 연락이 쉽지 않습니다.

다음이 넥스트웨어입니다. 풀빛컴퓨팅과 바른정보가 모여서 만든 회사입니다. 창업동지들이 대략 8명정도입니다. 다들 각자의 길을 찾아서 떠났지만 연락이 쉽지 않습니다. 제가 대표이사를 할 때 많은 직원들이 왔다 갔습니다. 이 때부터 문제가 시작입니다. 아무리 좋은 관계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연을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래가지 못할 뿐더러 미운 정만 쌓입니다. ‘임금 체불’입니다.

현금 흐름이 악순환을 겪고 있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매출이 그런대로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현금을
차입했고. 그러던 중 2005년 가을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경리직원이 퇴사하면서 이전 퇴직자와 함께 모든 거래처를 가압류로 걸어놓았습니다. 한순간 현금흐름이 ‘꽝’ 막혔습니다. 회사라는 조직보다는 자신이 챙겨갈 수 있는 돈이 먼저입니다. 급여을 못준 내가 잘못인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3.
우울한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후 퇴직자들은 노동부에 진정을 내고 다시 근로감독관에서 불려갑니다. 수 십번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을 떼먹었다고 생각한 여검사(^^)가 재판에 회부하였습니다. 정식 재판을 받아서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이 때부터 저도 퇴직자들뿐 아니라 살기위한 필살의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6년말쯤에 퇴사한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민형사 소송을 걸었습니다. 형사소송은 심각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아는 형님을 변호사로 선임하였습니다. 가까스로 집행유예를 연장하였습니다. 물론 아내와 상의하여 은행에서 집 담보로 일부 돈을 빌려서 급여지급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더군요. 또다시 민사재판을 걸어왔습니다. 세금관련 서류를 제출받은 다음 모든 거래처에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이후 남은 사람들과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쯤 외환증거금거래로 들어오는 현금이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희망이 보이는 듯 하더니만 다시금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던 분들이 추석휴가를 갔다오자 마자 그만둔다고 하더군요.? 그 분들은 회사를 차려서 외환증거금거래처들을 다 인수(?)받고 – 물론 제가 인계한 것이 아니라 투자한 회사가 어쩔 수 없이 유지보수를 맡기면서 –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객사에 납품한 재산이 누구 소유냐” 하는 점입니다.? 다시금 민사재판을 1년여 했습니다.? 결국 합의로 끝냈습니다. 합의조정을 하는 몇 일동안 퇴직자로부터 ‘무능력한 경영자’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판사앞에서 말을 하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실패한 경영자가 체불임금을 해서 아직도 못갚는 경영자이기때문에 들어야 하는 소리입니다.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3.
경영자와 노동자라는 관계로 만났을 때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같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련은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생존이 해결되지 않기때문에, 내가 살아야 하기때문입니다.

두 번 재판을 하면서 변호사들에게 뉘앙스가 같은 말을 두번 들었습니다.

아는 형님은 일심재판이 끝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생즉사, 사즉생. 너는 죽기 살기로 재판을 하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못하냐….”

재판 증언때 저는 ‘배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퇴직자는 아주 심한 말을 증언했다고 합니다.

몇 일전 합의를 본 후 변호사와 마지막 한잔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김사장님은 좋게 말하면 휴머니스트이다…사장이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사람이 순하다는 뜻이겠죠.(^^;)

4.
지난 주에 우연히 회사를 문닫게 한 퇴직자들중 한 명을 우연히 제안서를 쓰고 있는 회사에서 보았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전화번호를 교환하였습니다. 몇 일후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 누구도 같이 근무합니다.”
“같이 술한잔 사주세요”

순간 당황을 하였습니다. 고민을 했고 말했습니다.

“내가 솔직히 그런 기분이 아니네…당신들은 잊었겠지만 나는 속이 좁아서 아직도 잊지 못하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거다”

지금 회사를 경영하고 있을 다른 퇴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재판을 하면서 온갖 모욕을 다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고 더 이상 재판때문에 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 마무리하였습니다. 별달리 이익을 보지도 못하고…. 한 순간 노동운동을 하였다는 인연으로 맺은 인연이었지만 지난 조정으로 마무리하여야 할 듯 합니다. 다시 볼 일도 없을 것이고 본다고 해도 인사할 일도 없을 듯 합니다.

불가에서 세상을 떠날 때 미련없이 떠나려면 가슴속에 묻은 분노, 욕망을 없애라고 합니다. 법정스님도 무소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같은 속인은 살아가는 동안 나의 존엄성을 위해 그때 느꼈던 분노와 치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런 면이 나로부터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나 봅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져서 다시 법정에서 싸웠던 인연이지만 끊어 버리렵니다. 굳이 짧은 세상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이유는 없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모두 함께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짜로 편하게 함께 가고 싶은 사람과 멀리 가고싶습니다.

마지막 술자리. 변호사왈.

“이제 50대입니다. 앞으로 10년이상이 남았습니다. 이제 시작이 아닙니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관계가 쌓이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다니고 있는 회사 사장님이 부럽다고 하더라도 모두에게 웃을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아무도 남지 않더라도…..

이 글로 가슴에 담았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풀어봅니다. 그리고 다시금 인연을 떠올릴 일이 없겠죠?

(덧붙임)
조금은 불편한 글입니다.? 블로그는 나 자신의 일기와도 같은 곳입니다. 남을 위한 글도 있지만 나를 위한 글도 있기에 이해를 바랍니다.

5 Comments

  1. 짜두

    아직 사장이란 직함을 달아본적이 없어서 공감하긴 어렵지만 몇번의 사장님들을 거치면서 ‘아~ 사장이란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구나’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먼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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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저도 지금은 사장이 아닙니다. 그냥 회사에서 상무라는 직책을 달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은 무한책임을 집니다. 잘되면 큰 보상을 받지만 – 물론 잘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아마도 대부분은 고통속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가를 해보고자 하는’ 열정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항상 월급을 걱정하여야 합니다.

      “어! 지난달 급여일이 어제같은데 벌써….”

      책임은 무한히 지면서 권한은 별로 없습니다. 직원을 마음대로 짜를 수도 없습니다. 대안이 없는 회사가 대부분입니다.(물론 전횡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꿈을 꾸기보다는 생존을 잘 이겨내는 기업이 살아남기만 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미래가 없고 결국은 사람이 떠나고 악순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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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짜두

      그러게요. 이바닥에서 사기 안치고 성공한다는건 정말 사기일까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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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niwoon

    ◆ 우연하게 들러서 본 첫 글인데, 마음에 와서 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굳이 짧은 세상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이유는 없습니다. ‘라는 부분도 그 하나입니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수많은 블로그가 있지만, 자신의 경험을 나눠 조금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곳이군요.

    Reply
    1. smallake

      그냥 일기장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물론 훔쳐보기와 같은 느낌은 없습니다. 그냥 나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글쓰기라는 뜻입니다.

      뭐!!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를 한다고 봐줄 사람도 없고(^^)

      더운 여름 건강하세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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