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기로 시작한 잃어버린 20년. 시작은 금융기관의 파산이었습니다.
97년 11월은 일본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달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전후 일본경제를 지탱해왔던 금융시스템이 산사태처럼 무너져내린 시기였다. 이달 초 일본 상장증권사로는 처음으로 산요증권이 회사갱생법 적용(한국의 법정관리)을 통해 사실상 도산했다. 이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해온 홋카이도척식은행이 도시은행(시중은행) 중 최초로 무너졌다. 이 은행의 도산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1주일 뒤인 11월24일 일본 4대 증권사의 하나인 야마이치증권이 경영난으로 자진폐업을 결정했다. 세 금융기관의 붕괴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깊숙이 파고들면 결국 80년대 거품경기 때 발생한 부실채권이나 자산 등의 거품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경영난이 악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야마이치증권의 도산은 일본 금융구조를 뿌리채 뒤흔들 만큼 커다란 파문을 낳았다. 자진폐업 결정 당시 회사의 부채규모는 3조2000억엔(계열사 포함하면 6조3000억엔), 고객예탁금 규모는 23조9600억엔으로 전후 최대 규모의 도산이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야마이치증권 도산은 주요 신문의 1면 머릿기사와 방송의 헤드라인뉴스를 장식했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일본 경제에 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커질 때였다. 야마이치증권 도산은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필자가 도쿄에서 일하는 동안 지겨울 정도로 자주 써야 했던 일본 경제 관련 시리즈기사를 처음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야마이치증권 도산을 떠올리면 지금도 한 장면이 뇌리에 선명하다. 11월24일 자진폐업 신청결정을 발표한 노자와 쇼헤이 사장의 기자회견 광경이다.
처음에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던 그는 “사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저를 포함한 경영진이 나빴습니다. 사원들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7500명의 사원과 그 가족을 생각하면 괴롭고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선량하고 능력있는 우리 직원들의 재취직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라며 울부짖었다. 물론 그런다고 그가 경영파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야마이치증권 사원 중에도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60세에 가까운 사나이가 직원들의 앞날을 부탁하며 통곡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찡했던 것도 사실이다.
야마이치중권 도산은 가뜩이나 불안 조짐을 보이던 엔화 가치와 닛케이주가를 동반폭락세로 몰아넣었다. 일본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긴급자금을 투입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무디스를 비롯한 국제신용평가기관은 일본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을 낮춘다고 차례차례 발표했다. 98년에도 일본 금융불안은 국제사회의 핫이슈로 1년 내내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도쿄 특파원 리포트 ‘잃어버린 10년’ 현장체험기중에서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시작한 97년. 한국은 포스트-IMF시대를 시작합니다. 97년을 전후한 때 고려증권, 동서증권, 장은증권, 동방페레그린 증권이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위기는 잠깐이었고 증권산업은 호황을 맞으며 성장을 해나갑니다. 그리고 15년이 넘었습니다. 여의도는 다시금 97년의 악몽이 어른거립니다. 생사을 건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요즘 글을 보면 ‘일본을 배우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잃어버린 10년, 20년을 견디고 살아남은 일본 증권산업에서 교훈을 얻자는 취지입니다. 지난 10년동안 증권산업 구조조정은 화두가 아닌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용두사미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잘 보여주는 보고서가 삼성증권이 2009년에 내놓은 ‘증권업,잃어버린 10년? De rating 탈피의 요건’이라는 보고서입니다.
여러 번의 위기를 외적인 요인으로 넘겼지만 2012년부터 찾아온 위기는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일본 증권산업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이런 모색의 결과가 우리투자증권이 2012년 9월에 내놓은 보고서입니다. 이 때 일본증권사업을 살펴보는 특집기사들이 넘칩니다.(^^)
[잃어버린 10년, 日 증권업은?]① “증권사도 거래소도 쓰러졌다”
[잃어버린 10년, 日 증권업은?] ② 대형·온라인·특화·지방 등으로 재편
아마도 위 보고서가 미친 영향은 컸나 봅니다. 위 보고서는 지난 1월 금융투자협회가 주최한 ‘중소형 증권사 성장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발표되었습니다.
한국 증권산업의 미래를 극명히 보여주는 기사가 있습니다. 경쟁력과 생존을 모두 고민하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버블 붕괴,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오랜 침체를 겪어온 일본 증권업계 종사자 수가 3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이 16일 보도했다.일본 증권업협회가 15일 발표한 2012년 말 기준 일본내 증권회사 임직원 수는 전년 대비 6% 감소한 8만4천802명으로, 1976년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이는 또 증권업계 종사자 수가 정점을 찍은 1990년 말 16만1천695명의 절반 수준이기도 하다.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동안 증권업계 종사자 수가 반토막난 것이다. 최근 일본의 개인 주식매매 중 약 80%가 인터넷으로 이뤄지면서 증권사들의 대면 업무 비중이 줄어든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잃어버린 20년
…증권업 종사자 반토막중에서
2.
일본증권산업을 분석하는 것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최초 자주 방문하여 자료를 살펴보는 일본노무라연구소의 자료중 日本の資産運用ビジネス2012/2013을 소개한 도입이었지만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본론입니다 .
노무라연구소는 매년 일본 자산운용비즈니스를 정리한 자료를 발표합니다. 위의 자료는 2012년을 결산한 자료입니다. 원문은 직접 받아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다만 관심이 가는 몇가지 도표만 소개합니다. 먼저 일본 자료의 특징은 도식화입니다. 일본자산운용산업을 한장으로 정리한 큰 그림(Big Picture)입니다.
다음은 어떤 자산에 투자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해외주식과 채권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고객별 시장동향과 상품전략입니다. 읽으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입니다.
일본을 이해할 때 오해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생각입니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09년 국내총생산에서에서 점하는 각국의 수출의돈도를 보면 한국이 43.4%. 중국이 24.5%. 독일이 33.6%인데 반해 일본은 11.4%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국민총생산(GDP)의 55%를 차지하는 탄탄한 내수 덕분이었다.’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누릴 수 있는 적정 수준이라 하는 1억3,000만의 인구가 받쳐 주는 견실한 소비 시장은 해외 수출이 감소하는 와중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한국. 내수대국인 일본. 잃어버린 10년을 되돌아본다고 하더라도 같은 전략일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