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일절 연휴를 시작하던 날. 다른 분들은 연휴의 시작이었지만 저는 휴일 특근의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4개월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때보다 이번 근무는 더 힘들었습니다. 3월 2일 대학 동기들이 강화에 모이는 모임이 시작입니다. 2일 오후까지 일하고 동기들을 태워서 강화도까지 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미사 – 성지순례를 하고 숙소근처에 있는 진강산에 오른 후 서울로 출발하여 초지대교를 지나서 약암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여의도에서 일을 한 다음 다시 과천에서 성당분들과 저녁을 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12년 말 대학 동아리 송년회 때 몇 사람이 강화도에서 야유회를 갖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강화도에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는 동기커플이 초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자리에 없었지만 산악모임 연락을 담당하고 있어 문자와 카톡을 날렸습니다. 4명이 응답했습니다. 오랜만에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살아온 과거에 대한 공감이 있어서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늦은 시간에 토막잠에 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강화도성당을 찾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천장을 가진 정성이 느껴지는 성당이었습니다. 신부님이 강론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남성 신자분들, 식사 전후 기도를 하지 않죠.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 쑥스러워 하죠? 식사 기도 또한 훌륭한 사도직 수행입니다.”
오래전 밥을 먹을 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은 같은데 왜 하지 않을까, 자문을 해보았습니다.
“이 밥을 위해 피와 땀을 들이신 농부들은 기억합니다.”
2.
성당 미사를 보고 잠시 짬을 내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한옥성당인 강화읍성당을 찾았습니다. 성공회 성당입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적막하였습니다. 도시의 넓고 높게 올라가는 성당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습니다. 백년이 넘는 시간이 상징하는 역사는 다릅니다. 긴 시간속에서 영광뿐 아니라 고난과 박해도 있기때문입니다. 그것을 견딘 결과입니다.
성공회 성당을 떠나 찾은 곳은 갑곶순교성지입니다. 몇 년전 과천에서 자전거로 강화도를 찾았을 때 잠깐 방문했었습니다. 그 때와 다른 점은 지금은 신자로써 찾았다는 사실이죠. 갑곶순교성지는 순교성인 3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위비 기도문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느낌표로서의 신앙이 아닌 물음표로써의 신앙을 말합니다. 주님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의 삶을 사는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뇌여보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 늘 품어 안아주시는 주님, 갈 길을 찾으러 온 저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소서..
● 목적지가 아니라, 길이라 하신 말씀을 따라 제 시선을 결과에서 과정으로 돌리게 해주소서.
○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3위가 걸어갔던 순교의 여정이 주님께 맡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길이었듯이
제가 붙잡고자 했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겨두고 가게 해주소서.
맡기고 나서 생기는 미련마저도 이곳에 남겨두고 가게 해주소서.● 주님께 맡겨둔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소중한 과정임을 믿게 해주시고,속단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소서.
또한, 그것이 주님께서 저희에게 마련해주시는 최선의 길임을 받아들이게 해주소서.○ 느낌표를 원했던 저희를 꾸짖어주시고, 물음표의 십자가를 지고, 안고 가게 해주소서.
아니, 또 생기게 될 물음표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지혜를 갖게 해주소서.● 고요한 곳에 오면 더더욱 커지는 제 안의 소란함을 죽여주시고, 이곳 순교자들처럼 침묵하게 해 주소서.
⊙ 마침내 이 순례를 통하여, 저희의 영역에 주님을 모시려 했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당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순교자들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세 번)
● 아멘
3.
순례를 끝낸 후 진강산에 올랐습니다. 마니산을 마주보고 있는 산이지만 무명이죠. 무명이기때문에 찾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시간때문에 정상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생각을 하면서 걷기 좋은 산이었습니다. 사람의 발걸음이 드문 곳을 좋아하다보니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