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빛에 비친 가을 낙엽이 꼭 나이든 노인의 얼굴과 비슷합니다. 주름이 깊고 빛 바랜 낙엽이 검버섯이 피어오른 얼굴입니다. 세월의 흔적입니다.
2.
어제는 성당 모임에 함께 하는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봉사를 위해 방문한 곳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어제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서중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코,10.21)
신부님은 강론 시작을 수도자들이 서원하는 정결, 가난, 순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도 이야기하셨습니다.
20대의 젊은 아들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더 이상 혈육으로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님을 간절히 요청하는 연설을 한다. 이제 자신을 놓아달라고, 이제 자신을 신과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살게 해 달라고, 그러기 위하여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청산하여야 하겠다고, 간절히, 간절히 호소를 하였다. 없는 자식이라 여겨달라고, 이것이 죄라면 부디 용서해 달라고, 간청, 또 간청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의 무너지는 심정 또한 아들의 그 비장함 만큼이나 컸던 까닭에 아버지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공식적으로 단상에서 독립선언을 호소하는 아들에게 소리치며 욕을 한다. 네 놈을 용서할 수 없다고, 감히 내 재산과도 같은 아들의 신분을 훔친 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지금껏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모든 비용을 낱낱이 내어놓기 전에는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너는 내 소유와 같으니 어림없는 소리 말고 내 집에 들어와 잠자코 있으라고, 고함을 지르며 끌어내려고 하였다.
그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나가기 직전, 프란체스코는 단상에서 옆으로 비껴서서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웃옷을 벗고, 바지를 벗고, 속옷을 벗었으며 마지막 남은 팬티마져 벗은 후 그는 단상에서 내려와 아버지 앞으로 갔다. 그리고 천천히 진심을 다하여 말하였다. “이것이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저는 이제 실오라기하나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옷을 받아 들고 조용히 나갔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알몸인 채로 그곳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그의 벗은 몸을 천으로 감싸주었다. 그는 마침내 이렇게 하여 청빈할 자유를 얻게 되었다.
가난한 삶은 경제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적 소유욕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생활을 말한다고 합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속에서 궁핍한 자, 가련한 자, 억눌린 자, 핍박받는 자을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흔히 쓰는 말로 ‘더불어 함께 하는 삶’입니다.
비록 육신은 없어지더라도 ‘더불어 함께 한’ 사람들속의 기억속에 나는 남아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