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상인을 이야기하면 “상성”이라고 부르는 ‘호설암’을 떠올립니다. 저도 책제목이 맘에 들지 않지만 ‘중국 상도’라는 이름으로 호설암을 접하였습니다.그러다 이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거상의 혼’이라는 책을 선택하여 읽었습니다.? 솔직히 선택한 이유는 두주째 읽고 있는 ‘우연의 법칙’을 다 못읽어서 시간을 벌 생각이었습니다.
중국 산서상인으로써 청말 ‘교가’를? 우뚝 세워냈던 교치용은 소설속에 따르면 처음부터 ‘상인’으로 교육되고 훈련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를 보기위해 ‘논어’,’맹자’등을 배웠고 ‘장자’의 사상에 심취한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가업을 이어받았습니다.
교치용은 달랐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위에서 장사를 하였습니다. KBS “유교,2500년의 여행’중 2편 의(義)를 다룰 때 나왔던 공자의 제자 자공이나 오사카상인 – 회덕당을 설립하여 유교경전을 상인들에게 교육하였던 오사카 상인, 그리고 호설암과 같은 분들이 강조하였던 “이익에 앞서 의를 강조하였던” 바와 같은 행동을 보였습니다.
교치용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가에는 대대로 지켜오고 있는 장사원칙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의리, 둘째는 신용, 셋째는 이익입니다. ..”
2.교치용의 삶속에서는 오늘날 기업가정신,벤처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산서상인들의 중요한 거래품목중엔 ‘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치용이 활동할 때에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하여 장강을 이용하여 차를 거래하던 길이 몇년째 막혔습니다. 그런데 교치용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말고 궁극적으로 차를 거래함으로써 차거래와 관련된 백성들 – 차농사꾼,뱃꾼등등 -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치용은 그것을 ‘천하제일의 장사’라 하였습니다.
“천하제일의 장사란 바로 왕협선생이 이미 백년전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대륙전체를 휩쓸고 다니며 장사하는 것이요. 즉, 전국곳곳에 생산되는 상품을 방방곡곡으로 고루고루 유통시키는 것이야말로 천하 최고의 장사란 말이오.”
? 그래서 거래를 처음으로 성사시켰을 때 사년동안 거래가 끊겨 삶이 힘들어질대로 힘들어진 강남지역의 차농사꾼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명대말엽부터 이곳 사람들은 대대손손 차를 재배하였고 나리와 같은 산서상인들 덕분에 모두들 굶어죽을 걱정없이 살아왔죠. 헌데 장발적 떼가 장강을 점거한 이후로 찻길이 끊어진지 벌써 사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재배한 차들은 팔 수가 없어서 창고에 쟁여둘 수 밖에 없었지요. 차로 밥을 지어먹겠습니까 아니면 아궁이의 땔감으로 쓰겠습니까? 이러한 마당에 차를 사러 오셨으니 저희로써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을 되살아난 듯한 기분입니다.”
3.교치용은 장사에서 사람이 중요한 일깨워주었습니다.그리고 그에 맞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견습기간이 만료된 다음에는 다른 상점에서 곱절의 월급으로 점원을 데려간다고 하면 억지로 붙잡아둘 수가 없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습니다. 이는 못가게 붙잡아두는 것은 돈을 못벌게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치용은 이를 처음으로(?) 혁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도화하여 모든 객주들이 모인 가운데 교가의 규칙을 개정하였습니다.
“국가든 집안이든 혹은 점포든 간에 번창하려면 자고로 인재를 중용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요.특히나 점포에서 사람을 쓸 때는 주인과 객주, 점원의 이익을 두루 돌볼 수 있어야 하오. 그래서 난? 우리 점포에 한가지 조항을 추가하고 싶소, 즉 사년이상의 견습기간이?끝나고 정식 점원으로 우리점포에서 계속 일하는 자에게는 일률적으로 배당금을 나누어줄 것이며 실적에 따라 해마다 배당금을 늘려주겠소.”
이에 대해 객주들이 점원을 통제하기 힘들 것을 우려하자
“..둘째는 점원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면 객주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점원들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오.내 말 맞소이까? 이 두번째 반대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도록 하죠. 점포의 새규칙을 하나를 만드는 겁니다. 객주와 점원은 똑같이 이익금을 배당받되 서열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이오. 객주를 존종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점원은 규칙위반으로 간주하고 대객주에게 그를 내쫓을 권한을 보장해주는 거요…”
라고 하였습니다.
4.그리고 금융산업의 기반을 닦으면서 명확히 비전을 세웠습니다.
“광진원에서는 최초로 표호를 만들어 상인들이 현금대신 신용만으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 장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소이다. 자사치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천지개벽과도 같은 대사건이라도 할 수 있지요. 이사업을 좀더 폭넓게 확대시켜 여러상인들이 표호업종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만들어 전국의 표상들까리 거대한 신용망을 형성하는 겁니다. 그럼 전국의 상인들이 이 신용망을 이용하여 현금없이도 자유자재로 장사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그리되면 우린 천하의 상품을 유통시키겠다는 산서산조상인들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소이까?”
표호산업은 일종의 은행입니다. 은행산업을 발전시켜 유통시스템을 확대발전시키고 그를 기반으로 국가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비전을 세웠고 실천하였죠.
산서상인을 소개하는 글을 보더라도 금융업에서 산서상인, 교가가 이룩한 성과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양쯔강 이북의 상인 중에는 산시상인을 제일로 꼽고 있다. 세계의 경제사학가들은 산시상인을 “경영능력, 기업가 정신, 계산적 두뇌, 숫자의식과 금융감각이 탁월하여 중국의 유태인으로 부를 만하다”고 평한다. 경리와 회계 부문에 종사하는 산시성 출신이 많고 은행, 신탁, 증권, 전당포 등 금융과 관련된 업무는 산시성 출신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여 왔다. 명나라 시대든 청나라 시대든,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중국의 금융권 재정권은 산시성 출신에게 장악되어 왔다.
비단에서 차와 전당포, 고리대금업 산시상인이 손을 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 서쪽으로는 아라비아에서 동쪽으로는 일본, 북으로는 모스크바, 남으로는 홍콩, 쟈카르타로 산시상인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산시 상인들은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참새가 날 수 있는 곳에는 산시상인이 있다.”
청말과 중화민국 초기 산시상인의 금융기관 山西票號는 전 중국의 금융시장을 석권한 바 있었다. 산시인은 관리와 군인을 적게 배출한 반면 산시인은 가장 오랜 문화의 보유자로 그들의 우월감은 다른 형식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중국 상인의 지역별 특성중에서
? ? ? ? ? ? ? ? ? ? ? ? ? ? ? ? [사진]교가대원.영화 ‘홍등’의 촬영지
5.중국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디 넓은 나라입니다. 자신의 시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그릇이 명확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나에 머물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고 나의 가슴이 요구하는 대로 백성과 호흡을 같이 하려한 교치용.?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도전’과 ‘비전=꿈’이 아닐까 합니다.
(*) 거상의 혼을 읽고 나서 많은게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중국 상인,4천년의 지혜,진상 중국제일상인등 중국상인에 대한 책과 우리나라의 개성상인,일본의 오오사카상인에 대한 책을 볼까 합니다. 금년 여름은 상인들과 함께 지낼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