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같이 살면

1.
요즘 분들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 왕진.

의사가 집으로 직접 방문하여 진료하는 행위입니다. 의사가 많지 않았던 시절 왕진은 있는 집이나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습니다. 어느 때부터 왕진이라는 말도 뜸해지고 그 자리를 주치의가 자리잡았습니다.
고급서비스가 아니라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로 왕진을 되살렸으면 하는 바람을 요즘 갖습니다. 구순을 넘기신 부모님은 아직 의식주 모두를 스스로 하십니다. 다만 시간이 흐를 수록 기력이 약해집니다.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말라갑니다.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곳도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아픔입니다. 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고 무한정 요양병원에 맡길 수도 없습니다. 기력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수액주사라도 맞습니다. 그것도 힘들어 하시니까 궁리를 했습니다.

“왕진을 하는 의원이 있을까?”

동네 전화를 해보니까 수액주사 정도만 한다고 합니다. 없는 것보다 좋았습니다. 오늘 오실 예정입니다.
이번 여름 내내 고민한 것이 부모님 건강입니다. 갑자기 주거환경을 바꿀 수도 없고 에어콘은 너무 찹니다.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있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문진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방문 요양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장애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현재 요양병원을 ‘죽음의 외주화’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택임종을 언급하는 이도 있습니다. ‘내 집에서 죽을 권리’입니다. 이런 권리가 가능하도록 통합돌봄제도가 있긴 합니다. 역시나 문턱이 있습니다. 장기요양 등급 혹은 장애 등급입니다. 장애등급외 인 경우 ‘통합판정조사’ 을 해서 통과해야 합니다.
꼭 사회 복지제도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왕진처럼 내돈내산으로 통합돌봄을 해주는 동네서비스가 있으면 합니다. 지자체가 왕진의사 풀을 만들어 수요자와 연결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내집에서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석 연료없이 깨끗하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
죽음의 외주화가 보편인 현재, 가까운 이가 임종으로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경우가 극히 드믑니다. 더구나 오랜 기간 삶의 끝자락으로 가는 시간을 함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일상의 은총을 매일 느낍니다. 아흔을 넘기셨거나 가까이 가시는 부모님이 외부의 도움없이 일상생활을 하십니다. 치매도 없고 거동도 불편한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나이이니까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한해 한해, 한달한달,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폭염이 덮친 여름은 거의 누워서 지냈습니다. 근육은 거의 없어서 뼈만 남은 느낌입니다.

매일 이런저런 상상을 합니다. 병원이 아니면 119에 신고하는 것부터 정했습니다. 큰 그림도 그렸습니다. 어느 날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례식장은 수원연화장으로 하자..”
“조문객 없이 가족장으로 하자”
“부고장없이 하자”

많이 고민했던 것이 장례미사입니다. 성당에 알리기 보다 그냥 가족끼리 미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친구 신부에게 부탁하려고 합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입니다. 매일 이런 상상을 하지만 솔직히 그 순간이 닥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요즘 입맛이 없다고 하십니다. 한동안 잘 드셨는데 다시금 목넘김이 불편하신 듯 합니다. 잦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는 양재동에 유명한 순대국집에서 포장을 했습니다. 한숟가락 하시더니만 “맛 없다”고 하십니다. 맛 없다는 목으로 넘기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많은 경우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시골장터에서 먹던 구수한 순대와 옛날 칼국수가 먹고싶다..”

어디 먼곳을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이동시간을 견디시지 못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어딘가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함께 하시는 동안만큼은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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