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hlehemian Rhapsody

1.
2018년 대통령의 성탄 메세지는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가 등장합니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합니다.

예수탄생대축일 하루 앞서 새로 부임하신 과천 성당 작은 신부님은 ‘할머니의 묵주’라는 성가를 부르셨습니다.

나의 가슴속에 문득 그려지는 하나의 모습
작은 손에 곱게 쥐고 계신 할머니의 작은 묵주
얼마나 힘이 드셨나요 당신께서 걸어오신 그 길이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신 예수님처럼
한알한알 돌리시며 성모송을 외시고
고개를 숙이시던 할머니의 모습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하고
세상을 위하고 하느님을 위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로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하시네
사랑을 주시네

할머니의 사랑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사회로 향할 때 우리는 강우일 주교님의 강론을 되새겨야 합니다. 매주 레지오 주회중 바치는 까테나의 한 부분입니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지난 2000여 년 동안 전 세계는 12월 25일을 예수님 생일로 경축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12월 25일이 정말 생일 맞습니까? 사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성서에도 예수님이 어느 날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생일보다는 돌아가신 날을 주로 축하해 왔습니다. 특히 성인들 같은 경우에도, 그분들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보다는 하늘나라에 태어나신날, 다시 말해 순교자로 하느님 나라에 입적하신 날을 경축해 왔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영명축일로 지내는 성인들의 축일은 대부분 그분들이 순교하신 날입니다. 그런데 12월 25일을 예수님 생일로 축하하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한참 뒤였습니다.

기원후 221년경에 로마제국은 우리로 보면 동지가 지나, 이제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태양신의 날로 정하고 축제를 벌여 왔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따르는 모든 신자들과 교회는 그따위 우상 축제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날을 세상의 참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생일로 경축해 왔습니다. 그게 12월 25일로 정착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예수님의 성탄에 대한 교회의 정신은 이렇습니다.

성탄절은 이 세상의 어둠과 그 어둠을 상징하는 모든 거짓 신들, 우상을 없애러 오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축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단순히 하느님이 아기로, 인간으로 탄생한 날을 경축한다기보다, 참 빛으로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오신 강생을 경축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19살 먹은 비정규직 청년이 혼자 일하다가 진입하던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서 숨졌습니다. 그의 유품에는 컵라면이 들어있었습니다. 근무 조건이 열악하여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에 서귀포의 한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 18살 학생이 생수업체 공장에서 혼자 일하다가 생수병 기계포장 작업 중 압착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8년 12월10일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야간 순찰을 돌던 젊은이 한 명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서 또 숨졌습니다. 그의 유품에도 컵라면이 몇 개 들어있었습니다. 이 어린 청춘들은 모두 외주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다가 인생을 제대로 꽃피어 보지도 못하고 지고 말았습니다. 이 발전소에서만 지난 10년 동안 12명의 비정규직이 사고사를 당했습니다. 세상이 이들을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생산 공정의 한 수단으로만 보고 생산단가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다보니 이런 비극이 되풀이됩니다.

지난 12월3일에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구역에서 쫓겨난 37세의 한 젊은이가 강제철거를 세 번씩 당한 뒤 한강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국가 권력이 강행하는 재개발사업 때문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자진하였습니다. 12월10일에는 택시기사 한 사람이 대기업의 카풀 사업에 항의하며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을 했습니다. 가장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자본의 가공할 힘에 밀리고 쫓기다가 분노하며 목숨을 던져 항의하였습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들이 왜 이렇게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해야 된다는 무조건적인 욕구와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사회의 가장 힘없고 나약한 이들이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 구석으로 내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물질주의가 만들어낸 번영의 신화에 취하여 한없는 발전과 성장이 세상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최상의 목표로 오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번영의 신화는 이 시대의 우상입니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절대 권력에 짓밟히고 억눌리며 종살이 하던 이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7-10) 이 계시는 이집트 제국의 왕권과 번영을 위해 제일 밑바닥 백성들을 억누르고 짓밟은 태양신 신화의 아들, 파라오를 향한 도전과 항전의 메시지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는 제국 전체에 호적등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제국의 지배력과 번영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한편 제국의 변방 시골동네 처녀가 낳아 구유에 뉘인 갓난아기 예수는 제국의 황제와는 정반대의 꼭짓점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권력과 번영 대신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동전에 새겨진 황제의 초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황제의 것은 기껏해야 쇳덩어리로 만든 동전 몇 닢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 만물은 다 하느님의 것임을 선언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로마는 권력의 우상 얼굴이 새겨진 동전으로 지탱되는 제국이었습니다. 때가 되자 우상의 제국은 무너지고, 예수님이 세우신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 나라는 갈수록 커져서 그 기둥과 그늘에 많은 이들이 기대고 쉽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의 세상도 이집트 제국, 로마 제국이 추구하던 권력과 번영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수레처럼 질주하고 있습니다. 뒤처지는 사람은 가차 없이 밟고, 버리고 가는 무자비한 수레입니다. 그런 이 시대를 향해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당신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더 큰 권력과 더 화려한 번영을 향해 끊임없이 유혹하는 오늘의 우상들에게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종으로 내어주지 말자고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 깨우치고 계십니다. 마리아와 함께 노래하자고 초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강우일 주교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2.
많이 무겁습니다. 2018년 최고의 문화현상인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패러디한 베들레햄 랩소디를 즐거운 성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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