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주교 예비신자를 교육을 받은지 다섯주가 넘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말 생활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등산배낭을 매고 동네 야산을 찾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동네 야산이라고 하지만 청계산, 관악산이라 나름 시간이 걸립니다.(^^) ?아침 교리공부도 있고 저를 인도하시는 분들과 점심 겸 한잔 하다보니 두 주를 건너뛰었습니다. 몇 주부터 다시 예전 생활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한번 청계산을 찾았다 아주 오래전 노동운동을 같이 한 선배를 뵙었습니다. 10여년만입니다. 선배님 일행과 막걸리를 한잔 하는데 하늘에서 장대비가 쏫아지더군요. 결국 집으로 오는 두시간 동안 비를 맞아 쫄닥맨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는 관악산 단풍놀이를 하였습니다. 10여년이상된 등산화가 탈이 나서 새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제가 신었던 등산화는 아버지가 신던 것입니다. 나이가 드셔서 산을 타지 못하시기때문에 제가 몇 년동안 신었는데 이제 재생할 때가 되었습니다. ‘바위에 짝짝 달라붙는다”는 등산화라 기념으로 육봉능선으로 향했습니다.
줄줄이 사탕마냥 산을 오르는 분들이 이어지더군요. 제가 오르는 등산로는 거의 사람이 없는 곳이지만 단풍철이 되니 가끔 보일 정도였습니다.
2.
꼬박꼬박 챙겨보는 신문칼럼들이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김별아씨의 칼럼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 김별아씨가 백두대간종주를 마무리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등산을 하며 삶을 봅니다.
끔찍하게 싫어했던 일이기에 꼭 하고 싶다는 모순된 동기를 앞세워 시작한 일이었지만, 실로 내가 산에서 배우고 얻은 것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나는 종종 의식적으로, 때로 무의식적으로 산과 삶을 헷갈렸다. 산행에 앞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 때면 삶 앞에서 헐벗은 나를 생각했고, 힘겹게 산을 넘어 멧기슭의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을 들이켤 때면 다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왜 오르느냐는 시비곡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곳에서 의연한 산처럼, 삶은 권리이자 의무인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저임금, 워킹 푸어, 고용 불안 등…. 하지만 비록 너절하고 비루할지라도 어떻게든 끝끝내 넘어야 할 삶이기에, 떠밀리다 탈진하고 넘어져 낙오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든 나만의 근기와 속도를 지켜야 한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산행이지만 어디선가 함께 걷는 이들을 기억하며, 디스토피아의 협곡에서도 희망이라는 아득한 봉우리를 끈질기게 바라보아야 한다. 숨차다. 힘겹다. 하지만 산을 넘게 하는 건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한 걸음 한 걸음뿐이다. 숨을 고르고 이를 악문다. 넘어온 숱한 산을 뒤로한 채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삶을 향해, 다시 신발끈을 단단히 조일 때다.
[문화칼럼] 삶을 넘다중에서
또다른 예찬이 있습니다. 조용헌씨의 칼럼입니다.
김창협의 동생 김창흡은 한발 더 나갔다. “산천은 나에게 진실로 좋은 벗이며 또한 훌륭한 의원이다(誠一好友也 亦一良醫也).” 등산이야말로 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라고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유봉(1672~1744)은 “유산은 독서와 같다(遊山如讀書)”고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만 독서가 아니고 명산을 노니는 것도 또한 독서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위에 오르고, 노을을 감상하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독서라면 독서이다. 이런 지점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 안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민서(1633~1688)는 “등산은 술 마시는 것과 같다(遊山如飮酒)”고 했다. 등산할 때 너무 많은 일행이 함께 가면 시끄럽고 서너 명이 가면 단출하면서 분위기가 집중되어 좋다는 뜻이리라. 등산의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조용헌 살롱]등산은 독서와 같다중에서
그러면 저에게 등산이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오를 때 흘러내리는 땀한방울속에서 도시의 삶이 나에게 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담아 떠나 보내는 행위입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나를 비우는 시간이면서 나를 잊는 시간입니다. 다시 산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으로 나를 채우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