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분노의 시대?

(*)아직도 가끔 이런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내 마음의 어딘가에 써놓는 낙서입니다.(^^)

1.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얼마전부터 ‘분노의 시대’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기획을 보이고 있는 매일경제신문 주장입니다.

기획을 시작하며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6%가 최우선 국가목표로 삶의 질 개선을 꼽았습니다. 이어진 분석을 놀랐습니다.

성장에 대한 인식 변화는 △성장잠재력 소진에 따른 충분하지 못한 성장률 △고용이 따르지 않는 질(質) 낮은 성장 △양극화를 부추기는 불공정한 게임 룰 등 세 가지 이유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 중에서도 한국인은 불공정한 게임 룰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정직하게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기존 기득권자들에겐 자기 것을 놓지 않으려는 경쟁적인 지대추구 행위(Rent seeking)로 나타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행위가 쓰라린 좌절감의 원인으로 작용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분노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금전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4.6%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인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56.9%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또 국민 83.5%가 인맥을 활용하면 목적을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여겼고 30.1%는 실제로 목적을 위해 학연ㆍ지연ㆍ혈연 관계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응답자 중 13.6%는 목표를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응답자 72%는 한국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답했다. 체제 자체를 가짜로 여긴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분노의 시대’중에서

또다른 기획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4.0을 이야기하는 조선일보입니다. MB정부이후를 준비하고 사회적 아젠다를 선점하려는 보수층의 전략일 수도 있지만 나름 우리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본지가 최근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경제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7%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몫을 빼앗아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좋은 실적이 자신의 살림살이에 전혀 혹은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2.1%에 달했다. 경제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대해서도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55.2%로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38.5%)보다 훨씬 많았다. 살림살이에 불만족하는 이유로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 때문'(35.1%)이라고 보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성장은 하는데 부(富)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다수 대중은 빈곤해지는 ‘빈곤화 성장’ 때문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기존의 시장원리로만은 해결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이젠 ‘자본주의 4.0’이다중에서

지난 지방선거부터 ‘복지’라는 화두가 왜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조사입니다. 다만 사회적 요구가 단순히 ‘복지’에 국한하여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IMF이후 14년. 지난 세월 세계화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소개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그리고 세계화는 양극화만을 남겨 놓았고 지금도 양극화는 깊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는 80:20사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90:10 사회라고 합니다. 이제는 99:1 사회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만이 배부르고 대다수는 배고픈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국사회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안철수현상이 등장한 사회경제적인 배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세계화된 한국의 자본주의’를 수술대위에 올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회의 보수를 대변하는 매경이나 조선이 착한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도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나름의 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시위를 보면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변화를 열망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습니다.

장기 집권해온 독자재들의 붕괴를 가져온 중동의 ‘재스민 혁명’
런던을 불태웠던 영국 폭동
정부의 긴축재정과 허리가 휠 정도로 늘어난 빚더미에 화가 난 그리스 국민들
국민의 94%가 가톨릭 신도인 스페인에서 재정 부담(1550억원)을 이유로 벌인 교황 방문 거부 시위
서울에서 진행됐던 대학 반값 등록금 시위

그리고 뉴욕 월스트리트에 울려퍼지는 “Occupy the wall street”운동까지 빈곤의 시대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이런 현상을 “분노의 시대” “분노의 세계화”라고 정의합니다.

The Age of Outrage
Globalization of Anger

‘분노의 세계화’를 이야기한 프리드만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There are multiple and different reasons for these explosions, but to the extent they might have a common denominator I think it can be found in one of the slogans of Israel’s middle-class uprising: “We are fighting for an accessible future.” Across the world, a lot of middle- and lower-middle-class people now feel that the “future” is out of their grasp, and they are letting their leaders know it.

‘불안한 미래’를 만든 주범은 세계화입니다.

The merger of globalization and I.T. is driving huge productivity gains, especially in recessionary times, where employers are finding it easier, cheaper and more necessary than ever to replace labor with machines, computers, robots and talented foreign workers. It used to be that only cheap foreign manual labor was easily available; now cheap foreign genius is easily available. This explains why corporations are getting richer and middle-skilled workers poorer. Good jobs do exist, but they require more education or technical skills. Unemployment today still remains relatively low for people with college degrees. But to get one of those degrees and to leverage it for a good job requires everyone to raise their game. It’s hard.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주체는 정당이 아니라 네트워크화된 개인들(super-empowering” individuals, enabling them to challenge hierarchies and traditional authority figures)입니다. 안철수현상중 하나인 탈정치를 설명하는 배경중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 정당으로는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주체=네트워크형 개인의 등장입니다.

이들의 시위는 다릅니다. 과거처럼 통합된 지도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축제인 듯 하면서도 시위이고 불법인 듯 하면서도 합법입니다. 2008년 촛불시위나 2011년 반값등록금시위와 비슷합니다.

현재 미국의 ‘Occypy the wall stree’운동은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PERCENT)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We are the 99 percent

미국대중들은 ?거대한 폭식자인 월스트리트를 향해 분노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한국 대중들은 한국의 월스트리트인 여의도가 아니라 재벌을 향해 분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삼성동물원’,’LG동물원’이라는 안철수씨의 비유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환호를 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3.
현재의 변화가 어디로 향하든 소수에게 집중된 경제가 더많은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쪽으로 바뀌지 않으면 변화의 흐름은 계속 될 듯 합니다. 흔히 ‘경제민주화’라고 합니다. 경제민주화를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틀에 가두면 안됩니다. 출자총액제도 중요하고 1%도 안되는 주식을 가진 오너경영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갑을관계를 바꾸고 이해당자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도 중요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일련로 줄을 선 듯한 관계를 벗어나 서로 대등하게 협력할 수 있는 관계가 사회곳곳에서 퍼져야 합니다.

지난 저녁 박원순씨가 국민참여경선에 승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59%가 넘는 투표참여로 ‘동원정치’에 능한 민주당을 이겼다고 합니다. 밑바닥부터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변화가 한국사회를 어디로 이끌지 잘모르겠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또한 우리의 선택입니다.

변화를 보면서 다시금 20년전을 떠올립니다. 처음 스타트업을 할 때 “남과 다른, 좋은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꿈이 있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였습니다. 너무 몰랐던 것이 많았다고해야 합니다. 한 번의 실패지만 큰 좌절이었습니다.

다시금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지금 그 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4 Comments

  1. 아거

    잘 읽었습니다.

    Reply
    1. smallake

      가끔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쓴 글인데..하여튼…

      Reply
  2. LogCat

    공감가는 내용 잘 읽었습니다~

    Reply
    1. smallake

      사실 필요한 것은 변화죠. 분석이 아니라….

      Reply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