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을 지나 6개월로

1.
이제 6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년만의 스타트업이 벌써 6개월입니다.

92년 3월 후배 사무실이 있는 용산에서 책상하나로 시작하였을 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사실 지금보다 그 때가 훨씬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도 이십대 후반이었고 딸린 식구도 적었고 여유자금도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했습니다. 다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언가 다른 일을 하자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더구나 그 때는 함께 출발선에 있었던 후배개발자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서 시작하였습니다.   소프트웨어개발이 무엇인지, 유닉스는 뭐 하는 물건인지, PC통신서비스를 어떤 설계할지등등 ‘맨 땅에 헤딩’ 딱 맞는 말이었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은 흐른 후의 스타트업.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는 분 사무실에 책상하나를 놓고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스타트업. 생각에 따라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흘러간 세월만큼 쌓인 경험이 잘 살릴 수 있으면  긍정적일 듯 합니다. 그렇지만  대표이사 시절 마지막이 너무나 힘들었고 외통수로 몰두를 했기때문에 도움보다는 단절을 더 크게 느낍니다. 지난 직장에서도 증권사와 직접 일을 하지 않아 단절의 시간이 더 커 보입니다. 한 오,육년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과거의 인연이 있지만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하지 않은 관계라 재정립이 쉽지 않습니다.

2.
ZeroDMA.ZeroHTS,ZeroBOX.

제가 설정한 개념에 따라 만든 브랜드입니다. 큰 그림입니다. 큰 그림을 덧칠하여 세밀화하고 빠진 부분의 퍼즐을 채울 수 있는 파트너들을 찾고 있습니다.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지  벌써 3개월입니다.어떤 서비스를 들고 시장에 진입하여야 겠다는 목표를 정확히 잡고 일을 시작한지가 그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예상했던 난관들이지만 장벽이 여럿 보입니다.

목표, 비즈니스모델로 놓고 보면 약간 빠른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증권사는 DMA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습니다. 그저 리테일영업이나 국제영업에서 요구받은 업무를 수행하면 됩니다. 딱 이 지점에 증권사 고민이 있는 듯 합니다. 현재 시장의 플레이어도 여기에 있습니다. Zero시리즈는 여기서 더 나간 모델입니다.  내적인 요구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작은 수준입니다.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Low Latency에 대한 고민도 조금은 다라 보입니다. 분업화된 구조 탓에  기술적인 요소들을 각각 분리하여 사고를 하는 듯 합니다. 네트워크면 네트워크, 서버면 서버 혹은 어플리케이션이면 어플리케이션. 아직  종합적인 서비스를 계획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업이 아니라 마켓팅전략이 있어야 하고 서비스가 구상되어야 제가 치고 들어갈 여지가 있는데 아직은 여지가 부족한 듯 합니다.

실행을 놓고 보면 파트너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공지도 하고 이런저런 아는 업체들은 찾아서 이야기를 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쟁자라는 생각을 하는 곳도 있고,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곳도 있었지 않을까 합니다. 원인이 무엇이고 결과가 무엇이든 ZeroDMA, ZeroHTS, ZeroBOX라는 모델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퍼즐중 몇 조각이 아직 부족합니다. 물론 몇일 전 톱니가 빠졌던 몇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원활히 돌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시간이 곧 돈인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가장 큰 난관은 가족입니다. 작년말 회사를 그만둔다고 운을 떼었지만 언제 그만두는지는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사후에 통보를 하였죠.  맘으론 이해를 하지만 막상 생활을 하여야 하는 아내 입장에선 환영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면 그만큼 잔소리는 심해집니다.(^^;) 당연합니다.

이 모든 난관을 한번에 해결할 수 없지만 실마리라도 만들려면  시장에 빨리 진입하여 작지만 안정적인 성과를 내야 합니다.  저는  후발주자입니다. 스타트업이지만 두번째 스타트업입니다. 어떻게 시장에 진입할까 고민합니다. 가격적인 요소나 기술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경쟁의 프레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굳어진 관계를 헤집고 기회를 만들려면 판을 흔드는 것외에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어떻게 판을 흔들어 프레임을 바꿀까?”

3.
회사 문을 닫고 이런저런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었습니다. 지금도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매번 새롭게 느끼는 것은 ‘티끌모아 태산”입니다. 블로그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작지만 의미있는 이익이 쌓이고 쌓여서 회사가 성장합니다.  프로젝트의 생산성을  강조하고 프레임워크에 투자하고 하나씩 틀을 잡아나가면서 과거에 말했던 바가 하나씩 이루어 집니다.  조직문화가 생겨서 굳건해지고 업무틀이 안정화하는데  10년은 걸리는 듯 합니다.

“우리는 늘 현재의 시점에 서 있지만 방금 전은 이미 과거죠.그런 현재의 순간이 쌓이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해요. 과거나 미래의 것은 기억이나 유추에 의존할 뿐이지요. “

인간의 삶은 기억에 의존하지만 기업은 통장에 의존합니다. 매일 10,000원이라도 통장에 쌓일 수 있도록 이익을 내면 10년이 지나면 36,000,000원이 쌓입니다. 작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망하지 않도록 하는 숫자입니다. 보통 몇 십억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다음날 밀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돈이니까 돌아가지만 쌓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급해지고 초초해집니다. 옛날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급한 마음을 먹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입니다.

‘벌써, 60일’이라는 글을 쓸 때 항상 명심하겠다고 했던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일을 중심으로 하면 너무나 큰 위험이 도사릴 수 있어 Exit를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예전같았으면 주저주저했을 해외소프트웨어 판매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연락을 해서 구도합의는 보았습니다. 제가 계획했던 일과 무관하지 않았던 점도 고려하였습니다.
벌써, 60일!중에서

그렇지만 바구니 하나에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자꾸만 되돌아 봅니다. 갈 길은 멀고 이제 출발점에 섰을 뿐이기때문입니다. 최근에 가장 가슴에 새기면서 읽었던 기사는 홍수환씨의 인터뷰입니다.

“나는 펀치력이 약해요. 50전 41승 14KO란 성적이 말해주죠. 그런데 주먹이 센 놈은 턱이 약해. 주먹이 약한 놈은 맷집이 좋고. 그게 인생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누구나 통뼈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누구나 한방은 갖고 있어요. 다만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돼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서는 한방이 나올 수 없어. 이시영이가 우승한 것도 한 방이 있는 거예요.”

그가 체육관 벽에 걸린 액자 속 글귀 ‘왼손으로 세계를 제패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권투선수한테는 왼손이 앞손이에요. 앞이 안 맞는데 뒤가 맞겠어요? 평상시에 왼손 잽으로 일을 열심히 해야 기회가 오는 거예요. 그러면 바로 오른손으로 때리는 거지. 권투하고 인생하고 똑같다니까.”

한 방이 대박은 아닙니다. 그저 목표한 바를 이루면 됩니다. 저는 가늘고 길게 일하는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왼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EXIT.  다양한 EXIT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심리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꿈도 이상도 결국 살아남은 자의 것입니다.

2 Comments

  1. Hammer

    부디 좋은 결과 있길 간절히 빌겠습니다.

    Reply
    1. smallake

      가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 정리하려고 쓴 글인데…

      김태원씨가 그러더군요..
      “어릴 때 난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했다”고.

      사실 모든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입니다. 물론 저도 관심.

      그래서 더욱더 감사드립니다.

      Reply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