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 사람들

1.
날이 춥습니다.
아내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습니다. 산 곳곳이 얼어 붙었으니 가볍게 둘레길을 가자고 합니다. 양재천을 따라 부는 겨울바람은 매섭습니다. 두툼한 다운재킷을 입고 빵모자로 무장했지만 볼에 부딪히는 칼바람에 얼얼합니다.

이제 인적이 끊긴 양재천 겨울은 오리들이 지킵니다. 평소 같으면 개울안에서 먹이를 찾고 있을 오리들이 너무 찬 날씨때문에 햇빛이 잘 드는 여울변 갈대숲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가끔 인기척이 나도 별 반응이 업습니다.

“너 갈 길이나 가라..나는 여기서 따뜻히 볕이나 쬐련다….”

뭐 이런 소릴 하는 듯 합니다. 둘레길을 돌 생각으로 나섰지만 어두컴컴할 대공원 뒷길이 걱정이라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얼마전에 산 중고차 뒷자석에 놓을 방석을 사러 대형마트를 가기로 했습니다. 양재동에 몰려있는 마트들중 하나입니다.

2.
같이 길을 나서면 아내가 잔소리를 합니다.

“자기랑 같이 다니면 항상 편하지 않다. 남들이 다 다니는 편한 길을 두고 굳이 힘든 길을 찾아가냐?”

불 멘 소리입니다. 세상을 사는 모습이나 등산로 찾아 가는 모습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익숙한 길은 싫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길 좋아 합니다. 다 결과를 놓고 꿰맞추는 말이지만 이런 성격때문에 ‘사업에 실패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엔 ?양재동 시민의 공원을 못미친 뒷길로 갔습니다. 다니면서 어떤 건물인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었습니다. 옆에 서울보건환경연구원도 있더군요. 서울교육문화회관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시민의 숲에서 양재동 화물터미널로 이어진 길은 자동차로 가득합니다.어떤 차는 좌측으로 가고, 어떤 차는 우측으로 가려고 유턴할지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면 바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그냥 소모품이고 교통수단입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합니다. “다! 자기 신분을 노출하고 과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보통 중대형이상 및 외제차는 우측으로 ?반대는 좌측입니다. 소비 수준이 다릅니다. 작년까지 우측 매장의 회원이었습니다. 별로 갈 기회도 없고 가보면 포장단위가 너무 커서 낭비일 뿐입니다. 좌측 매장도 다르지 않지만 포장단위가 작고 시식코너가 많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길을 가면서 보니 특이한 현상이 보이더군요. 얼만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피자 상자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우측 매장 손님들입니다. 가격은 싸지만 짜기만 한 맛없는 피자입니다. 저만 맛없나 봅니다. 아주 인기상품이니까. 그런데 좌측매장에서 나온 손님들도 한손에 피자를 들고 다니네요. 이유는 매장에 있었습니다.

3.
주말 점심시간 이후. 손님으로 붐빕니다. 동네 시장은 한산합니다. 동네 백화점도 한산합니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물건도 다르고 가격도 다릅니다.

“역시나 돈이 사람을 모으고 다시 돈을 모읍니다. 격차는 점점 넓어집니다.”

우선 분홍색 스누피 방석을 샀습니다. 뒷 좌석 손님이 딸들이라 분홍색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뷔페음식을 즐길 때입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보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마트피자’입니다. 눈으로 봐도 크기가 큽니다. 가격은 절반수준입니다. 쉽게 유혹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정용진씨는 품질과 가격으로 소비자선택권을 말합니다. 어떤 분은 이념적소비를 말합니다.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없는 돈으로 아이들 피자를 배부르게 먹이고 싶어 ‘이마트피자’를 선택하면 ‘참’입니다. ?생존이 우선입니다. 그렇지만 공존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식품매장은 시식코너를 지키는 근로자들로 빼곡합니다. 늦은 오후 가장 손님이 많을 때라 여기저기서 난리입니다. 자세히 봅니다. 시식코너 근로자는 매장직원이 아닙니다. 아마도 생산회사 직원들이 파견나온 듯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투명한 입가리개로 무장하고 ‘시식하라’고 합니다. ?좋게보면 할인매장에 시장분위기를 더한 전략입니다. 백화점에서 요청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자사의 물건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결국 모든 비용은 소비자 부담입니다. ?얼마 전 강남에서 아주 큰 백화점 점장 – 본사 직급으로 전무입니다 – 으로 있는 후배 부친상에 다녀왔습니다. 대형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이 조화로 넘쳐 납니다. 어디서 왔나 보니 백화점에 납품하는 기업들입니다. 적어도 몇 백곳은 됩니다.

대형매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항상 웃어야 하고 서 있어야 합니다. ‘감정노동’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서 있어야 하는 노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서있으면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듯 할 겁니다. 하지정맥류 위험이 있고 여성은 불임에 노출된다고 합니다. ?한동안 ‘보조의자’로 ?제공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매장은 의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이념적 소비. 누군가 진보집권플랜을 보고 쓴 평입니다.

“여전히 진보좌파이면서 이제는 생활우파가 된 우리가 자기성찰과 혁신의 대열에 동참할 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릴 터다.”

자기성찰과 혁신의 시작은? 아마도 아주 가까운 곳이 아닐까 합니다. 진보좌파의 덕목은 연대와 협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 타도”를 외칠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공존’은 하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좌측 매장은 조만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서겠다고 합니다. ?1조원이면 수만개의 동네가게가 없어지면서 모은 이익입니다. 동네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은 딸린 식구가 3명입니다. 족히 몇십만명의 생계문제입니다. 이념소비는 결국 생존과 공존의 문제입니다.

4.
너무 늦은 시간. 짧은 겨울 해가 저물어 갑니다. 버스를 타려고 우측 매장앞 도로를 건너갑니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좌측매장앞 도로는 손님이 놓고 간 매장 카트로 어지럽습니다. 흩어진 카트를 모아 매장으로 가는 직원이 보입니다. 대충 보니 십여개 됩니다. 매장은 서비스고 손님은 편리하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렇지만 매장 카트를 끌고 도로를 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볼 성 사나운 짓을 하는 이유는 주차때문입니다. 도로에 주차를 하고 쇼핑을 한 후 물건을 실고 그대로 떠납니다. 매장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주차를 하려면 최소 30분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시간동안 매연가스가 과천 대기를 오염시킵니다.

걸어서 갔던 길을 다시 버스 타고 옵니다. 반쪽 운동인데 굳이 방석 사러 거기까지 갔어야 했을까 반성을 합니다. 하루 해가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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