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전거를 타면 두가지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도시민의 꿈, 내 몸이 튼튼해야 최고라는 중년의 꿈.
어제는 떠나고 싶은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북악산 팔각정입니다. 몇 번 자동차로 다녔던 길이지만 두 다리로 오르고 싶었습니다.
자전거를 본격 탄 지 삼년이 넘어가면서 안장에 엉덩이를 대고 첫 페달을 밟으면 그날 몸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주전 영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이후 계속 페달감이 좋지 않습니다. 벌써 6000Km를 같이 다녀온 풍광보를 무겁게 느낍니다. 다리에 힘이 빠진 듯 합니다.
우선 점프를 했습니다. 3호선 경복궁역으로 가면 좋지만 환승을 하자니 자전거때문에 피해를 줄 듯 해서 서울역으로 목적지를 바꿨습니다. 서울역에서 서대문 사직공원으로 가서 인왕산길로 북악산을 오를 계획이었습니다. 서대문 독립문까지 기분좋게 도착. 사직공원길을 찾느라 헤맸습니다. 애매할 때는 한가지만 생각합니다. 내가 가려는 방향과 같은 쪽으로 물어물어 길을 따라갑니다. ?독립문 건너편이 무악동입니다. 사직공원에서 올라가는 길과 무악동에서 올라가는 길은 다릅니다. 저는 무악동=사직공원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결과는 무한 도전,무한 고통이었습니다.
무악동에서 인왕산길로 가려면 아주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합니다. 경사도가 45도쯤 되는 길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그냥 오르막을 탔습니다. 인왕산길 못미쳐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꼴까닥 꼴가닥”하고 가슴을 쥐어 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누굴 탓할까요? 그저 길도 모르면서 초반에 무리한 나를 탓해야지. 고통스럽지만 103초소(?)에 잠시 쉬면서 주변을 살폈습니다. 복원한 서울 성곽, 가을이 물어들어가는 풀과 나무, 멀리 보이는 남산. 왕궁과 청와대가 인왕산아래 있는 이유가 느껴지더군요.
몇 년전 인왕산길을 개방한 후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잣다고 하지만 청와대 뒷길이라 너무나 조용합니다. 사진을 찍고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통제구간이라 참아야 했습니다. 초입에 너무 힘을 빼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천천히 길을 다녔습니다. 101초소를 지나고 한참을 가니 좌측으로 무언가 아름다운 건물이 보입니다. 길가에 풍광보를 세우고 우측 동산으로 올라보니 윤동주시인의 언덕’이라 하더군요.
2.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뒤로 하고 북악산길로 접어듭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느낌과 사뭇 다릅니다. 아침 공기가 찬 산속에 산림마저 울창하니 상쾌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가 매연을 뿝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느 때부터 자전거를 탈 때 숫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르면 될 뿐입니다. 어제도 기아를 1X1로 놓고 시속 6Km로 걷는 속도만큼 올랐습니다. 숨이 가빠오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오릅니다. 500,300. 드디어 도착한 팔각정.기대를 저버립니다. 금년말까지 공사중이라고 폐쇄했습니다. 완전히 폐허처럼 변했습니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 없어 북한산 경치를 훔쳐보았습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갈지 결정할 시간입니다.
“성북동으로 가다 삼청각으로 돌아갈지, 왔던 길을 다시 갈지.”
제 성격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어제는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되돌아갈까 생각했지만 타고난 성격은 버리지 못하는 법. 성북동으로 가다 삼청각으로 빠지기로 했습니다. ?삼청각으로 빠지는 길엔 대사관길이라고 하여 북악산자락에 궁궐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한남동과 성북동이 우리나라 부촌입니다.
솔직히 “약간 배아픈 것을 참고”(^^) 삼청터널로 향했습니다. 중간 길상사도 들렀습니다. 삼청터널을 지나 내려온 곳이 삼청동 카페거리입니다. 디자인의 거리를 만든다고 난리입니다. 이곳을 처음 찾은 때가 80년말 경복궁입구에 전인권씨가 카페를 할 때 였는데 너무도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작년과 비교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디자인이 소박한 생활에서 묻어나지 않고 자본을 투자하여 만들었기때문입니다. 정취가 없어졌습니다. 금융연수원앞 수제비집도 역시 변하고 있습니다.
앞길은 강남 압구정이나 다를 바 없어 졌습니다. 하여 뒷길을 순방하였습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조금씩 풍광보를 메고 더 올라갔습니다. 알고보니 가회동, 북촌이었습니다. 1박2일의 영향으로 북적북적였습니다.
“어떤 이는 북촌을 관광지로 찾지만 어떤 이는 여기가 살림살이하는 곳인데..” 사생활보장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관광으로 사는 분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보지도 않고 “오래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만 들었습니다.
3단업힐중 하나인 감사원길을 넘어 다시금 삼청동카페거리를 지나 청와대, 광화문을 거쳐 청계천구간을 달렸습니다.
광화문,청계시장은 공통점이 있더군요. 외국인이 넘쳐납니다. 광화문은 관광을 온 분들, 청계시장쪽은 이주노동자들입니다. 서대문 평화시장에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거리를 가득 채운 노동자들을 보니까 실감이 났습니다.
혹시 청계천다리중 하나를 ‘전태일의 다리’로 명명하려는 운동이 있는 걸 아시나요? 아니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평화시장을 넘어 아래로 가다보면 전태일열사 흉상이 있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곳을 ‘전태일의 다리’로 이름붙이자고 합니다. 오세훈시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평화시장을 지키는 미싱사나 이주노동자들. 아마도곳에 가장 잘 맞는 이름은 ‘전태일의 다리’가 아닐까 합니다.
3.
어제 여행의 백미는 ‘길상사’입니다. 법정스님의 기억이 남아있지만 한번 찾아가지 않은 절입니다. 어제도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법정스님이 떠올라 찾았습니다.
지금껏 가본 절은 입구에서 장터같은 느낌을 줍니다. 청계사,연주대,부석사도 그렇고 아마 관광지로 변한 대부분 절이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길상사는 주택가라 그런지 너무 다릅니다. 마침 법회시간입니다만 마당에 있는 분들이 같이 법회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사진찍기도 미안했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수련하는 공간이구나!”
스님의 말씀이 절내 곳곳에 놓여져 있습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길상사에 가면 마리아상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리아 관음보살상입니다. 종교간의 교류에 열심이셨던 법정스님이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신 최종태교수님에게 부탁하여 만든 보살상입니다. 자애,사랑,화합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전태일 흉상, 평화시장의 이주노동자. 서울의 숲근처 공원에서 혼자 쓸쓸이 앉아 있던 실업자.
삼청동 거리를 오가가는 분들과 다른 느낌의 서울입니다.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길상사 마리아 관음보살 같은 화합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