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아시아 오백년사의 시작읽기 첫째에서 쓴 시각이 아마추어라고 하면 전문가의 시각으로 동아시아 오백년사를 쓰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가 주간조선에 연재하고 있는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입니다.
근본적 문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에 군사·정치·경제 등 모든 부문을 전적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유라시아 동해안의 국제적 동향을 무시하고 어느 한 나라에 종속되어 편안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유라시아 동부의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 자리한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복잡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힘들지만 자립되고 번영하는 세력으로 존재할 것인가. 2014년 현재 한국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한반도를 유라시아 동부의 진정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시킨, 그리하여 한반도에 고난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준 임진왜란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 역사를 움직인 원동력을 추적할 것이다. 연재 중에는 낯선 인명과 지명, 사건이 빈번하게 등장할 것이다. 이들은 필자가 학식을 자랑하기 위해 역사의 궁벽한 곳에서 애써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한국이 동아시아사를 중국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들이다. 그 누구보다도 세계를 염두에 두고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 군인과 기업가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명·지명·사건을 언급했을 때 청중들이 당혹스러워하거나 심지어는 반발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경험했다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 1. 들어가며 : 한반도는 언제부터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었나중에서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는 동아시아 지각변동의 출발은 일본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의 통일부터 시작합니다. 계속 연재중입니다. 흥미진진합니다.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1. 들어가며 : 한반도는 언제부터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었나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2.16세기 후기 일본, 분열에서 통일로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3.1592년 임진왜란(1) : 한반도,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다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4.1592~1598년 임진왜란(2) – 대륙 세력이 되고자 한 일본의 세 번째 좌절
2.
앞서 한명기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소개하였습니다. 한명기교수가 김시덕씨와 비슷한 문제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하였던 기획이 ‘한명기의 -420 임진왜란’입니다.
“한국은 중국 덕분에 먹고살면서 왜 미국만 바라보며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는가?” 작년 천안함 사태 이후 중국의 <환구시보>에 실린 칼럼의 내용이다. 다가오는 거대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피곤해진다. ‘기존의 제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제국’이 떠오르는 전환기에 한반도가 늘 위기를 맞았던 전철을 고려하면 ‘G2 시대’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난 수년간 무수한 필자들이 강연과 칼럼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필자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여 우회로를 모색해 보려 한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밟았던 전철을 다시 살피려는 것이다. 14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국제질서의 틀이 바뀌던 시기, 그들이 보였던 대응의 득실과 공과를 찬찬히 읽어보려 한다.
조선사, 그 가운데서도 외교사를 다시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끼여 있는’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상대적 약소국’으로서 강대국들을 요리할 만한 적절한 지렛대가 마땅치 않은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의 외교사는 어쩌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일 수 있으며,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거울인 것이다.
제국 전환기마다 한반도 ‘핏빛’…임진·정묘·병자, 그다음은?중에서
같은 글을 보면 조선초 융성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을 ‘명과의 사대관계’에서 찾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로 읽혀지진 않습니다.
새로 건국된 조선의 지배층은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국이자 ‘슈퍼 파워’였던 명에 사대하여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15세기의 치세를 구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 질서는 다시 요동친다. 패권국 명의 쇠퇴 조짐이 뚜렷해지는 와중에 신흥 군사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이 명에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길을 빌려 명으로 들어간다”는 명분 아래 조선을 침략했다(임진왜란). 명은 자국의 안보를 지키려면 ‘울타리 국가’ 조선이 극히 절실하다는 인식 아래 참전한다. 1597년 일본군이 재침했을 때, 정희득 일가가 마주해야 했던 뼈아픈 체험은 임진왜란이 남긴 무수한 비극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의문이 듭니다. 조선은 초기의 발전을 이어가지 못하고 중기에 이르러 퇴보를 하였을까? 개인적으로 조선 왕조는 임진왜란을 통하여 멸망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후 조선은 왕이 아닌 사대부의 조선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정도전이 말한 신권정치(臣權政治)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선 사대부는 무능력하였죠. 그래서 이어서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리려는 책이 민음사 한국사입니다. 두권의 한국사 책을 읽고나면 셋째를 쓸 수 있겠죠?
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3.
아래는 한명기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기획입니다. 앞서 김시덕씨가 쓴 그들이 본 임진왜란을 보시면 좀더 폭넓은 사고를 얻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한명기교수의 글도 훌륭합니다. 신문에서 읽을 때 가슴이 시릴 정도였습니다.
1.제국 전환기마다 한반도 ‘핏빛’…임진·정묘·병자, 그다음은?
2.“조선은 아침 한끼 거리” 주원장 협박의 본뜻은…
3.명-북원 세다툼 틈타 ‘요동정벌’ 칼 빼든 공민왕
4.‘조선’ 국호 받는 등 명에 조아렸지만 ‘요동정벌’ 야심 계속
5.‘왕자의 난’에 무산된 요동정벌이 남긴 유산은…
6.‘조선 노략질’ 왜구가 해외진출 개척자라고?
7.고려-일, 오랫동안 끊긴 외교를 왜구 탓에 재개
8.조선은 ‘외교의 힘’으로 왜구 막았지만…
9.쓰시마 정벌이 명나라 때문이었다고?
10.왜구난동이냐, 조선정벌이냐, 항왜원조냐
11.뎃포 vs 무뎃포, 일본의 패권을 바꾸다
12.구월산에선 임꺽정이, 삼포에선 왜인들이…
13.“나는 태양의 아들…조선의 국왕이여 알현하라”
14.200년 만의 전쟁, 풍문만 듣고도 무너졌다
15.경복궁에 불붙인 건 일본군이 아니었다
16.충격적 평양성 참패…압록강을 사수하라
17.왕자 잡혀가자…“일본군의 심장을 구워먹었다”
18.이순신, 멸망위기의 조선을 구하다
19.“평양성 탈환, 명군이 죽인 자의 절반은 조선인”
20.류성룡, 이여송의 바짓가랑이를 잡았으나…
21.“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 후궁으로 보내라”
22.개 한마리 남기지 말고 죽여 없애라
23.조선 고위신료들, 명군에게 곤장을 맞다
24.“일본 상인, 조선인 원숭이처럼 목줄로 묶어…”
25.명에 겁박당하고 일본에 손발을 묶이다
26.조선인 코를 베어오면 땅을 주리라
27.선조의 의주 파천이 나라를 구했다고?
28.명청교체 소용돌이, 또다른 전쟁이 싹트고…
29.이순신은 왜 무능한 왕조를 전복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