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오백년사의 시작읽기 첫째

1.
역사를 좋아합니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금융도 기술도 역사로 읽으면서 흐름을 찾고자 합니다. 이런 취향으로 우연히 조선 중기의 동아시아역사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먼저, 오래전 기억입니다. KBS가 도자기축제를 맞아 만든 ‘도자기’라는 다큐가 있었습니다. 현대 이전에서 첨단산업제품이었던 도자기를 통해 본 문명사입니다. 임진왜란와 도자기를 다룬 부분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끌려간 이들중 상당수가 도공이었고, 이들이 전후 일본 도자기산업을 융성시킨 주역이라는 내용입니다. 나아가 이후 일본은 도자기를 통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고 했습니다.

또다른 기억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 大望을 읽을 때입니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사후 권력을 장악한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사카를 기반으로 권력 기반을 다집니다. 이 때 중요한 지지기반을 동남아시아와 무역을 하던 상인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부를 통하여 히데요시정권을 지지하였고 무역을 할 수 있는 길을 보장받았습니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이유중 일본의 경제력에 대한 자신이 있지 않았나 추측을 했습니다. 이후 이에야스(徳川家康)가 권력을 잡은 후 도쿄로 수도를 옮긴 이유도 오사카를 기반으로 히데요시권력을 약화시킬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상의 기억을 더듬은 이유는 임진왜란을 전후한 17세기전후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이전 시기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추측을 하기 때문입니다. 삼백년이 흐른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청이 약해진 틈을 타고 한반도를 점령하여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차대전이 끝난 이후 일본이 내놓은 빈자리는 미국이 차지한 상태입니다. 물론 식미지지배라는 방식은 아닙니다.

여기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청이후 한반도에서 밀려난 중국이 G2로써 한반도 및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자 미국은 이에 맞대응하여 아시아회귀전략으로 중국포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G2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대립을 합니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정부의 미중 중간가론도 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2.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을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듯 하여 읽기 시작한 책인 ‘역사평설 병자호란’입니다. 서울신문에 연재하였던 글을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놓았습니다.

왜 병자호란이 발생할 수 없었는가, 인조의 숭명사대정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정책이었으면 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보지만 병자호란을 뚝 떼어놓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병자년 조선은 멀리 보면 조선 중기이후 경제가 피폐해지고 있던 조선을 상징합니다. 임진왜란으로 전후 복구도 못하고 있던 조선을 상징합니다.

인조 3년 1625년 10월 호조판서 김신국이 올린 상소입니다.

지금 나라의 저축은 고갈되었는데 써야할 용도는 한이 없어 각사는 하루 경비를 대기에도 어려운 형편이고 국고에는 몇 달 사용할 물자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모문룡에게 줄 채단값과 여러곳에서 외상으로 쓴 물겂이 대략 은 5~6만냥을 밑돌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가난한 집에서 아침에 저녁끼니를 걱정해야 할 혈편에, 계약서를 들고 와 묵은 빚을 악착같이 받아내려는 자가 문밖에 줄을 서고 방안에 가득 찬 격이니 어떻게 견뎌내겠습니까> 국각가 누적된 폐단을 이어받은 데다 이괄의 난을 피해 파천했다가 돌아온 뒤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경비를 거둬들였습니다. 거기에 천고에 없는 조사를 만나 공사의 저축이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으니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경제가 이 모양이면 나라의 리더인 군조라도 변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반정을 일으킨 조선 사대부들이나 사대부들의 옹립으로 왕에 오른 군왕이나 모두 개혁할 과제들을 앞에 놓고 실행을 하지 못합니다. 1630년 3월 가평군수 유백중이 올린 상소입니다.

아, 오늘날 할 말이 많은데 나라의 흥망은 전적으로 군덕의 득실에 달려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자신하여 남을 따른 점이 부족하고 의심이 많으면서 이이기를 좋아하는 단점이 있으며, 인자함은 충분하나 위엄과 과단성이 부족하고, 근심하고 앴는 것은 간절하나 실덕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안으로는 주석처럼 의지할 만한 신하가 없고 밖으로는 외적을 막는데 간성처럼 맡길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인심이 원망하고 등을 돌려 역변이 잇따라 일어나고 공안이 고쳐지지 않아 무역이 불균등하기만 합니다. 호령을 내리는 것도 조변석개라 은혜와 믿음은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이익만 따르고 공동가 무너져 벼슬길이 혼탁해져 뇌물 꾸러미가 조정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위급한 것이 마치 끊어지려는 실끈과 같은데, 신은 광해가 아직 죽기 전에 종사가 먼저 망해 천고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흔히 말하는 국력으로 보면 조선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때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이 조차도 못한 조선이었습니다. 책에 있는 한 부분입니다.

1632년 조선은 삼국관계서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과 후금 두 강국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이자 ‘종속변수’였다. 따라서 조선이 두나라 모두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다. 두나라가 서로 계속 싸우거나, 어느 한쪽에서 커다라 문제가 불거지면 그 여파는 곧바로 조선으로 밀려왔다. 명화 후금이 께속 싸우면 결국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 밖에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G2와 일본 및 북한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요?

3.
책을 빌리거나 사서 읽으면 좋겠지만 싫으시면 아래의 신문기사라도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1)10만 포로의 눈물
[병자호란 다시 읽기] (2)여진족과 만주1
[병자호란 다시 읽기] (3)여진족과 만주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4)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Ι
[병자호란 다시 읽기] (5)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6)임진왜란,누르하치,그리고 조선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7)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누르하치,그리고 만주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8)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9)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Ⅱ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12)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16)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18)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9)심하전역과 인조반정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심하전역과 인조반정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심하전역과 인조반정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22)심하전역과 인조반정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23)심하전역과 인조반정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24)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6)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27)이괄의 난이 일어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28)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31)모문룡의 작폐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모문룡의 작폐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명과 후금의 정세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명과 후금의 정세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명과 후금의 정세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6)정묘호란 일어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7)정묘호란 일어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8)정묘호란 일어나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9)정묘호란 이모저모
[병자호란 다시 읽기] (40)정묘호란과 모문룡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정묘호란의 후유증
[병자호란 다시 읽기] (42)일본의 氣가 살아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43)일본의 氣 가 살아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44)모문룡의 죽음과 파장1
[병자호란 다시 읽기] (45)모문룡의 죽음과 파장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46)自强論의 이상과 현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47)親明意識(친명의식)의 고양과 가도 정벌
[병자호란 다시 읽기] (48)가도 정벌이 유야무야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49)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병자호란 다시 읽기] (50)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1)원숭환의 죽음과 그 영향
[병자호란 다시 읽기] (52)인조의 생부 정원군 추승 논란
[병자호란 다시 읽기] (53)끝없는 가도의 風雲
[병자호란 다시 읽기] (54)후금,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5)후금,조선을 떠보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6)대릉하성의 비극(1)
[병자호란 다시 읽기] (57)대릉하성의 비극(2)
[병자호란 다시 읽기] (58)전운 그림자에 불안, 막막한 현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9)곤혹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60)반란자와 귀순자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1)반란자와 귀순자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62)반란자와 귀순자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63)엎친 데 덮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64)외환(外患) 속의 내우(內憂)
[병자호란 다시 읽기] (65)전란의 전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6)유화적인 대일정책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7)유화적인 대일정책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68)후금관계 파탄의 시초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9)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70)홍타이지,황제가 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71)높아지는 명분론,어정쩡한 방어대책
[병자호란 다시 읽기] (72)절체절명의 시간들
[병자호란 다시 읽기](73)최후의 주화-척화 논쟁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5)병자호란이 일어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76)남한산성과 강화도
[병자호란 다시 읽기] (77)남한산성의 나날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8)남한산성의 나날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79)남한산성의 나날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80)근왕병(勤王兵)이 패하다I
[병자호란 다시 읽기] (81)근왕병이 패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82)남한산성의 스산한 연말
[병자호란 다시 읽기](83)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84)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85)남한산성의 나날들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86)힘겨운 화친 시도
[병자호란 다시 읽기] (87)최명길 국서를 쓰고, 김상헌 그것을 찢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88)인조의 절박함과 홍타이지의 절박함
[병자호란 다시 읽기] (89)강화도가 함락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90)강화도가 함락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91)강화도의 비극
[병자호란 다시 읽기] (92)조선,항복하기로 결정하다
[병자호란 다시읽기] (93)파국의 전야
[병자호란 다시 읽기] (94)해가 빛이 없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三學士의 최후
[병자호란 다시 읽기] (96)처참한 나날들
[병자호란 다시읽기] (97)가도의 동강진 무너지다
[병자호란 다시읽기] (98)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9)조선,혼돈 속 청의 번국 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0)포로들의 고통과 슬픔I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1)포로들의 고통과 슬픔II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2)포로들의 고통과 슬픔III
[병자호란 다시읽기] (103)환향녀의 슬픔,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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