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과 땡볕

1.
어느 순간.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다시 돌아갈까?”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할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 더이상 고통이 없다고 할 그 순간, 질문을 던집니다. 어제 길을 나섰습니다. 몇 주만에 풍광보와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나들이를 마치고 관문체육공원에 들어설 때 지옥의 끝을 건너온 듯 하였습니다. 어제 나들이는 천당과 지옥의 넘나듬이었습니다.

2.
시작은 단순하였습니다. 지난 몇 주동안 주말마다 비가 왔습니다. 평일에도 소나기가 대지에 쏟아집니다. 사무실에 찬바람이 나옵니다. 땀구멍이 막혀서 열릴 줄 모릅니다. 매일 직업상 가까이 하는 모니터와 PC에선 전자파를 마구 쏟아냅니다. 온 몸에 피곤함이 묻어납니다. 발산을 해야 합니다. 떠나서 땀으로 온 몸을 적셔야 합니다.

비도 오지 않는다는 예보라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우연히 보았던 서울 동부 중장거리코스(100~180Km)중 하나를 선택하였습니다.

과천-잠실-팔당대교-팔당-도마삼거리-도마삼거리고개-남한산성-복정-합수부-과천

사용자 삽입 이미지느낌으로는 100Km가 조금 넘을 듯 한 거리였습니다. 토요일 아침, 출발하였습니다. 아침에 혈압이 오를 일이 있어 속도는 20km정도, 10km마다 한번씩 쉬었습니다.

3.
팔당댐까지는 그냥 평범합니다. 하남 구간이 개통된 후에 우회로를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편안합니다. 하남 구간에 그늘이 없어 여름엔 땡볕이 그대로 내 몸에 내리 쬐는 것만 감수하면 좋습니다.마침 도착한 때 닫혔던 팔당수문이 활짝(?) 열려 있더군요. 아마도 올라오는 태풍때문에 미리 대비하려고 수문을 열어놓은 듯 합니다.

팔당댐이후가 문제입니다. 한번도 다녀보지 않았습니다. 강변 북쪽으로는 두물머리까지 다녔지만 남쪽길은 초행입니다. ?남으로 난 길은 강변 북쪽으로 다닐 때 몰랐던 한강을 멋있게 보여줍니다. 도로옆으로 트인 넓은 한강의 물길은 아릅답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입니다. ?광주상수도 취수장까지 한강을 따라 길을 달리다 도마삼거리까지는 일반 국도입니다. ?평소면 도마삼거리에서 남한산성까지 계속 달렸습니다. ?쉬지 않고 두시간이상을 달리거나, 때를 걸러 끼니를 챙기지 못해 몸이 힘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염두에 두고 나들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열두시 반쯤 넘은 시간. 아침에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가져왔는데 마땅히 쉴 장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열무국수’라는 깃발이 크게 걸린 음식점에 쉬기로 하였습니다. 열무김치, 신김치국물,소면. ?맛있었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국수라 젓가락질 세번에 꿀꺽, 후르룩. 남은 허기는 샌드위치 몇쪽으로 채웠습니다.

이제 남한산성으로 갑니다. 도마삼거리를 지났습니다. 퇴촌으로 들어가려는 차량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저도 퇴촌으로 가고 싶더군요. 다음에 가볼까 합니다. 여름날 오르는 고개길은 높든, 낮든 힘듭니다. 숨이 턱밑까지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건 뜨거운 열기입니다.쌩쌩 달리는 자동차소리,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스팔트의 지열.

도마고개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길이라 생각했지만 쉬는 동안 몇 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습니다. 저처럼 홀로 떠난 분도 계시고 팀을 이룬 분들도 있었습니다. 오르는 분은 고통이, 내려가는 분은 기쁨이 가득합니다. 길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솔직히 남한산성을 올라갈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한산성을 우회하여 성남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출발한 길이었습니다.(^^) 중부면 삼거리에 좌회전하고 페달을 어느 정도 밟은 다음,” 앗!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제가 들어선 길은 중부면 광지원리에서 남한산성 동문으로 이어지는 계곡도로였습니다.

초행길일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모른다’는 점입니다. ‘힘들다’는 것은 오히려 덜 합니다. 알면 힘들더라도 조절할 수 있기에 이겨낼 수 잇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면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오르막길에서 페달을 밟습니다. 밟아도 밟아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숨이 차오고 다리는 아프고 몸의 열기는 하늘을 찌르고. 오르고 싶지 않고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두번이나 도로옆 갓길에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두번째는 동문주차장을 100미터 앞을 두고 말입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서문으로 올라가는 계곡은 너무 좋았습니다. 만약 내리막이었다면 잠시 풍광보를 세우고 계곡에 풍덩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비온 다음이라 물소리도 너무 시원한 계곡이었습니다. ?동문부터 남한산성의 모습은 바뀌더군요. 유원지가 따로 없었습니다. 산성이기 하지만 남한산에 올라온 것을 잊었습니다. 김훈의 ‘남한산성’에 받았던 느낌이 싹 달아나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남문으로 해서 성남으로 바로 빠지는 길. 서문,수어장대로 올라서 남문으로 돌아나와 성남으로 빠지는 길. 더 올라 돌아갈까, 그냥 갈까. 선택이었습니다. 수어장대로 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이었지만 오늘은 참기로 했습니다. 올라가면 도저히 집으로 가기 힘들 듯 했습니다. 꼭 수어장대에 올라갈 생각입니다.(^^)

남문을 지나 내리막코스. 남산에서도 느꼈지만 고수들은 휭~~날라서 내려갑니다. 저는 아직 내리막에 적응이 덜 되었는지 25km미터 이상을 내지 않습니다. 내리막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풍광보 제동능력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제 내리막은 쉬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온 성남은 자동차도로만 있는 휑한 곳이었습니다. 수성구쯤인데 북정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저는 ?여름날 도로를 달리는 것을 미친짓이라고 합니다. 특히 도심도로는 뭐 하나 봐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최악입니다. 아스팔트때문에 더 뜨거운 햇빝의 열기,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 ?빨리 탄천으로 들어서고 싶었지만 복정에서 탄천으로 들어가는 길이 공사라고 합니다. 찬찬히 검색해서 다른 입구를 찾아야 하지만 더위탓에 그냥 교통표지판으로 판단했습니다.

“양재역으로 가자..”

이 결심때문에 시민의 숲까지 오는 내내 후회를 했습니다. 세곡동, 내곡동을 지나 양재동으로 가는 길은 그늘도 없도 없고 쉴 곳도 없습니다. 내 몸과 풍광보를 믿고 왔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시민의 숲. 나무 그늘이 저를 반깁니다. 시원한 수도꼭지가 나를 얼싸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가득 받고 머리를 담갔습니다.

“아! 시원합니다.”

시원한 물 한 그룻이 그리웠는데, 순간 판단을 잘못하여 이 고생을 하다니…

3.
태풍 곤파스가 스쳐지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뿌리채 뽑힌 아름드리 나무가 곳곳에서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양재천, 한강변, 남한산성, 시민의 숲도 아파하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밑둥이 뽑힌 나무를 ?보았습니다. 크레인으로 다시 세우면 살아날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떠났는데 오는 길에 보니까 전기톱을 싹둑싹뚝 잘라버렸습니다. ?생명으로써 나무가 아닙니다. 그저 도시환경을 미화하는 건축재료일 뿐입니다. 쓰레기로 만들어 처리하면 됩니다. 분명 예산을 낭비하고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그렇지만 그렇게 갖은 어려움을 겪어낸 나무는 언젠가 우리에게 큰 그늘을 줄텐데. 조금만 길게 생각하면 세상이 달라보일텐데.

인생은 육십이지만 인간사를 생각하면 더 깁니다. ?경영도 눈앞의 이익보다는 좀더 긴 평판을 쌓는 것이 더 큰 이익을 줍니다. 사회적 책임경영도 그런 뜻이 아닐까요?

길에서 느낀 한마디.

“좀더 길게 여유있게 세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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