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내가 논술선생을 한 지 몇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할 때부터 가정 경제를 책임져온 아내의 여러 직업중 하나입니다.자구책입니다.(^^) 논술선생을 하다보니 책을 많이 읽습니다. 아이들과 읽을 책을 선정하고 교안을 만듭니다. 논술선생들과 세미나를 위한 책을 읽고 토론 준비를 합니다. 바쁩니다. 많이 읽습니다. 하도 많이 읽어 농담삼아 목디스크가 생겼다고 합니다.

 주로 읽는 책은 인문학, 철학이나 역사쪽이 많습니다. 역사는 저와 같은 취향입니다. 그렇게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중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습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딱딱한 논문과 같은 글쓰기가 아니라 소설이었습니다. 연암선생의 사상을 글쓰기와 연결, 소설형식으로 표현한 책입니다. 멋있는 발상, 훌륭한 글쓰기, 깔끔한 뒷맛까지 감동과 교훈이 넘치는 좋은 책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 번역서들을 읽으면 외국어인지, 우리글인지 헷갈립니다. 우리말을 잘 못하는 번역가들이 번역한 것처럼 문장이 어색합니다. 글을 쏙쏙 들어오지 못하고 붕붕 떠다닙니다. 번역서들로 가득한 경영관련 책을 읽을 때 힘듭니다. 쏙쏙 들어오도록 글을 써내려갔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2.
 글쓰기란 무엇일까? 아주 평범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을 내려고 하면 막막합니다. ‘말’은 입으로, ‘글’은 손으로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무언가’가 무엇일까? 그저 단순히 생각하면 ‘나의 생각,느낌’등…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작은 “천천히 읽어라”는 교훈으로 시작합니다.

 우선 <논어>를 천천히 읽게.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읽어야 하네. 그저 읽고 외우려 들지 말고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게. 잘 아는 글자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네. 반드시 한 음 한 음을 바르게 읽게.

 학창시절 들었던 귀절이 생각납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現). 여러번 자주 읽으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으라고 합니다. 요즘 쓰는 말로 슬로리딩(Slow Reading)입니다. 한자어로 말하면 慢讀 혹은 緩讀입니다.

緩慢과 精密

두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를 강조한 이유는 생각을 하고 또하여 문맥을 이해하고 행간을 이해하여 글을 온전히 이해하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옳바른 글쓰기의 밑바탕엔 읽기가 있습니다.

3.
이제 글쓰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아봅시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바법이다. 네가 이리저리 걸으면 까마귀를 본 것이 그 방법이었다.그럴 때 비로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언젠가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 통찰의 순간이 오는 법 네가 갑자기 깨달았다고 한 그 순간이니라.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컬어 오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거리를 두고 문제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約과 문제를 넓고 깊고 파헤치는 悟, 約(약)과 悟(오)의 이치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였습니다.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變(변)과 (전)의 이치라고 합니다.

옛것을 모범으로 삼고 변통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의 이치이다. 또한 변통하되 법도를 지켜야 하다. 이것이 바로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의 이치이다.


이라 함은 지금 현실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일세.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줄 알아야 한다.典이라 함은 현실에 대응하여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지만 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특히 變(변)을 강조하였지만 오늘날 바라보면 變과 은 모두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間(사이간)의 이치입니다.

사이는 법고나 창신과는 또다른 경지니라.사이의 묘를 깨닫게 되면 법고니 창신이니 하고 구분하는 것이 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양쪽의 중간, 이쪽 저쪽을 꿰뚫는 사이의 묘를 깨닫지 못하고 쓴 글은 헛것이지. 사람사이의 만남도 마찬가지니라. 사이의 묘를 알아야 사귐의 참의미가 깊어지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입장을 고려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하는 것이다.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내가 서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관찰(觀察)하고 통찰(通察)하라
의중(意中)을 정확히 전달하라
통합적(統合的) 관점(觀點)을 만들어라

4.
이제 글쓰기를 하고자 할 때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를 잊지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책에서는 글쓰는 이의 자세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마천의 분발심을 잊지 마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낼 수 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글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모든 기쁨과 분노와 슬픔을 글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없이 쓴 글은 모두 헛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한순간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지요.”‘’

“연암은 글쓰는 사람의 자세를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세속의 명예나 이익이 아닌 순정한 마음으로 쓰는 글, 거짓된 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쓰는 글만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주려 했던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5.
꺼꾸로 간 시계를 되돌려 오늘로 와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인터넷으로 정보가 떠다닙니다. 정보의 홍수라고 합니다. 소셜네트워크로 짧은 글을 둥둥 떠다닙니다.  짧더라도 글입니다. 글을 보면서 사람의 깊이와 넓이를 느낍니다. 살아온 내력도 살짝 훔쳐봅니다.

글은 또다른 나입니다. 나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연암선생의 가르침을 한번더 되새겨 봅니다.

緩慢과 精密,, 約과 悟, 變과 典 그리고 間. 마지막으로 사마천의 분발심.

2 Comments

  1. 일하시는근처건물 애독자입니다

    평소 생각하시는 내용들 정리하신 것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애독자입니다.(자전거도 그 중 하나입니다.)
    별로 내세울게 없는 금융권 종사자라서 업무에 당장 필요한 지식외에 꾸준히 연습하면 정말로 피가되고 살이 될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글쓰기가 그 중의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요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맞춰 아직 제가 보지 못한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신 것 같아 소개글 읽자마자 여의도 당일 배송으로 책 당장 주문했습니다. ^^ 앞으로도 좋은 내용과 좋은 책들 소개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Reply
    1. smallake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야 있으시겠지만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가 좋은 점은 워낙 많아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 좋은 것은 왜 학교때 가르쳐주지 않았나? 학교는 왜 글쓰기를 그렇게 어렵게 가르쳤나?”(^^)

      글을 쓰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부담입니다. 사적인 글쓰기는 자신의 내밀한 기록일 수 있지만 사적이지만 공개된 글쓰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혹 읽다가 좋은 책이 있으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읽다가 후회하는 책도 많습니다. 특히 경영관련 책들은 후회가 많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책들이 있었지만..

      좋은 한주 되세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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