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구름이 어울린 길

1.
두 주정도 자전거를 쉬었습니다. 비가 오기도 하고 가족모임도 있었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물론 핑계이겠죠(^^). 어제는 오랜만에 팔당을 나들이했습니다. 출발할 때 약간 어둑어둑해서 비가 올 듯 했지만 나들이내내 맑은 하늘과 하얀 구름과 함께 나들이였습니다. 물론 덤으로 땡볕도 같이 했습니다.

연초 암사동을 지나 하남시로 가는 자전거길이 개통되었습니다. 암사동을 지나 구암정을 지나 고덕으로 가는 오르막과 내리막은 서울에서 오르가즘과 내리가즘을 소박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내려올 때 시속 40Km까지 나옵니다. ?오르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페달을 밟은 사람만이 느끼지만….. 아니 자전거를 끌고서라도 도전을 한 사람이 느끼는 쾌감입니다.

2.
자전거길이 열리기 전 암사 및 고덕생태공원을 여름에 다니면 밀림을 연상합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쭉쭉 뻗어 사람을 거부하였습니다. 갈대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한강변 철새,텃새나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새끼를 낳고 돌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너무 많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 걱정입니다. ?어떤 곳은 길 가는 사람에게 불편하다고 높이 자란 갈대를 벌초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갈대는 오히려 다른 존재의 보금자리인데…

어제 나들이는 하늘과 구름이 맑게 빛났습니다. 올해 본 하늘중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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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에서 팔당쪽을 보고 찍은 하늘입니다. 하남시 생태공원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분들도 많더군요.3.
열하일기중 호곡장(好哭場)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디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정진사가 묻는다.
“하늘과 땅 사이의 툭 트인 경계를 보고 별안간 통곡을 생각하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지, 그렇구 말구! 아니지, 아니고 말고. 천고의 영웅은 울기를 잘했고, 천하의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하지만 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옷깃에 떨굴 정도였기에, 그들의 울음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 듯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네.
사람들은 모두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喜)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의 감정이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야.
이 때문에 상을 당했을 때 처음엔 억지로 ‘아이고’ 따위의 소릴르 울부짖지. 그러면서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소리는 억눌러버리니 그것이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꽉 뭉쳐 있게 되는 것일세.
일찍이 가생(賈生, 한나라 문제에게 등용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난 賈誼)은 울 곳을 얻지 못하고, 결국 참다 못해 별안간 선실(宣室)을 향하여 길게 울부짖었다네. 그러니 이를 듣는 사람들이 어찌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정진사가 다시 물었다.
“이제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한번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그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디에 해당할까요?”
“그건 갓난아기에게 물어봐야 될 것이네. 그 애가 처음 태어났을 대 느낀 것이 무슨 정인지. 그 애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으로는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 같은 기쁨이 늙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이치가 전혀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나.
그런데 도리어 분노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삶이란 성인이든 우매한 백성이든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온갖 근심 걱정을 두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 울음을 터뜨려서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확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보고 발도 펴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박지원선생이 요동벌판을 앞에 두고 읋은 글입니다. ?아마 어제와 같은 맑은 날 산도 없고 강도 없고 그저 드 넓고 넓은 평원이 몇 날 몇 일 이어지는 곳을, 반도에 사는 이가 태어나서 처음 봤을 때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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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이루지 못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 스스로 죽기살기로 노력해서 목표를 이뤘을 때 기쁨의 눈물과 매 한가지일 겁니다.

나에게 기쁨의 눈물이 있었던가? 아니 죽기살기로 내 모든 것을 바친 때가 있었던가? 슬퍼서 서러워서 흘린 눈물은 기억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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