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일 미사 때 복음 말씀의 주제는 ‘복음’입니다.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16-20)
신부님은 강론하기 전에 동영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태국의 통신사가 만든 CF입니다. “Giving Is The Best Communication”이라는 주제의 광고입니다. 왜 이 동영상을 신자들에게 소개하였을까요? 직접 보시길 바랍니다.
신부님은 복음을 전하는 전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CF의 주인공인 아버지처럼 사심없는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시고 싶었나 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서공석신부님은 복음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이웃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신앙인이 아니면서도 신앙인보다 더 관대하게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보살핌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보아야 한다고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을 보살폈습니다. 신앙인이 하는 선교는 사랑과 섬김이 하느님의 생명이 하는 일이고, 보살핌의 실천으로 인간이 참으로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 있습니다.
어느 종교 혹은 어느 교파에 속하는 신앙인이 되느냐는 문제는 각자가 깊이 생각하여 결단할 일입니다. 가두(街頭)에서 사람들에게 보험가입을 권유하듯이 신앙으로 사람을 유인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으로 말미암은 사랑과 섬김의 실천, 곧 보살핌을 스스로는 실천하지 않으면서, 이웃에게 신앙을 권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화는 교세확장이나 신자배가(信者倍加)운동과 같은 단어로 표현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업이 기업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 사세확장하고, 제품 판매 배가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나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과 섬김을 배워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2.
미사때 보았던 CF를 찾다가 감동적인 태국 CF들을 더 구했습니다. 모두 소통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 주변의 관계와도 소통을 못하는 이가 어찌 하느님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