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성지순례 – 수원성지

1.
성(城) 하면 성문과 성곽을 떠올립니다. 한양도성(漢陽都城)인 서울 하면 남대문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을 요즘 말로 하면 도시입니다. 현대와 달리 높은 담벼락으로 외부와 분리한 도시입니다. 수원성지가 성지인 이유를 알려면 옛날 수원의 이름인 화성(華城)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화성이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그리고 화서문으로 이루어진 4대문과 이를 연결하는 성벽만이 아닙니다. 화성은 행궁이 있었고 조선시대 행정조직이 있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원성지는 수원 화성과 뗄 수 없습니다. 박해의 시대 신앙의 선조들은 관청에 잡혀 모진 고초를 당합니다. 얼마나 가혹한 고문이 행해졌는지는 김훈선생의 흑산이 잘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화성안에 있었던 대부분의 관청은 순교와 관련이 없을 수 었습니다. 재판이 이루어진 동헌인 화청관, 죄인들을 잡아 가둔 곳으로 6간 초가 감옥인 현초옥, 형이 집행된 곳으로 군 사령부에 해당하는 중영입니다. 그래서 화성내 19처를 순교성지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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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더위가 이어지는 일요일. 하루 전 토요일, 밭매기로 가을 농사를 준비하였지만 땡볕에서 일하느라 많이 지쳤습니다. 일요일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무더위가 고민입니다. 아침나절 밭에서 일을 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이열치열하기로 했습니다. 수원성지를 찾았습니다. 일반 국도보다는 안전한 안양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과천성당에서 수원성지(복수동성당)까지 자전거로 가는 길

가는 길중 아주 인상적인 길을 만납니다. 의왕시가 자전거도로에 만들어놓은 대나무숲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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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을 따라 자전거로 가면 끝무렵 콘크리트로 된 작은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거의 인적이 없는 곳입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의왕IC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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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경수대를 따라 지지대고개를 넘으면 수원입니다. 수원에 들어서서 화성방향으로 계속 직진을 하면 수원성지인 복수동성당을 만납니다. 수원성지를 처음 본 순간 “그냥 성당이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소문시민공원내에 있는 서소문성지를 찾았을 때 “어! 공원이네” 했던 느낌과 같습니다. 물론 죽음으로 증거하신 순교자들의 믿음을 퇴색시키지 않습니다.

수원성지안에 만들어진 로사리오의 길은 참 소박합니다.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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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퐁소 리구오리 십자가의 길 또한 오랜 세월을 지낸 선조들의 신앙을 떠오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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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원성당은 아주 멋진 고딕식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수원성당을 축성하신 심응영(뽈리데시레다도)신부님과 옛 수원성당을 추억하는 시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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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원성지는 수원 화성과 함께 한다고 하였습니다. 간단히 몇 곳을 다녀보려고 수원 행궁과 이아(화청관)을 찾았습니다. 저는 미처하지 못한 수원성지 순례를 글로 함께 하신 분들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수원화성 로사리오의 길 축성식& 수원성지순례

마침 행궁앞에서 무예18기 시험을 하더군요. 무예로 숙련한 분들의 멋진 시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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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무예시험을 즐기고 싶었지만 땡볕에 주행을 했는지 몸이 편치 않아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아가 있던 자리는 표지만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앞 나혜석자화상이 있는 예술극장이 보입니다. 수원 화성행궁길이고 행궁동 벽화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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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을 지나 화서문입니다. 행궁에서 출발하여 행궁동 마을을 지나 화서문에 이르는 길을 보면서 한성이 이었던 서울보다 더 전통과 현재가 잘어우러진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위를 식힐 겸 화서문 근처 카페 작은 숲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과천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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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하면 정조를 빼놓을 수 없듯이 수원을 벗어나는 순간까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던 정조의 발자취가 남아 있었습니다. 지지대고객라고 이름붙인 원인인 지지대(遲遲臺)입니다.

조선 22대왕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장헌세자, 장조)의 묘에 참배를 하러 갈 때 아버지의 묘가 보이는 데도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 느껴져 “왜 이리 더딘가”하고 한탄하고,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 더이상 아버지의 묘가 보이지 않아 그리워하는 마음에 안타까워하며 이 고개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참 지체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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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미사때 제2독서 말씀을 새겨봅니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리 12,1-2)

가을 수원으로 화성 순례를 해보려고 합니다. 못다한 성지 순례도 하고 화성도 돌아보려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 수원성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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