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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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으로, 전방에서 철책선근무를 한 사람들은 하나의 기억을 같이 합니다. 겨울은 왜 그리 길고 왜 그렇게 추운지….. 아무리 옷을 겹겹히 입어도 춥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손, 발, 얼굴이 모두 꽁꽁 얼어버립니다.? . 저는 86년 봄부터 이듬 해 봄까지 강원도 건봉산 911고지 대대본부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비록 철책선근무는 아니지만 911고지 꼭대기에 설치된 OP에서 감시임무를 수행(?)했습니다.

86년 겨울 강원도에 눈이 무척 많이 왔습니다. 먹고 살자고 하루가 멀다 하고 눈 치워야 하니까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었습니다. 보통 쌓이면 50cm정도입니다. 보급차량이 다닐 길을 뚫어도 밤새 몰아치는 바람때문에 다시 눈으로 덮혀버립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견딜만 합니다. 유명한 군인정신(^^)으로.

어느 날인가 새벽 불침범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내부반에서 준비를 하고 문을 여는데! 눈이 제 키만큼 쌓여있었습니다. 내부반에서 OP까지 오르막인데 100m정도 거리입니다.?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런데 발이 땋에 닺지 않았습니다. 몇 걸음을 내딛었지만 결구 제자리. 어쩔 수 없이 헤엄치듯이 눈을 헤쳐서 OP에 도착했고 다시 내려올 땐 굴러서 내려왔습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입니다. 처음으로 불도저가 동원되어 길을 냈지만 결국 사람손이 가야 합니다. 한 보름이상 매일 눈만 치웠습니다. 지겹도록 눈 구경을? 하고 눈꽃도 원없이 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신년 연휴를 집에서 보낸 나에게 하얀 눈은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물론 내리는 눈을 치우려고 삽질을 하는 것이 힘들지만 멀리 보이는 관악산이나 청계산이 하얀 색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폭설은 달랐습니다. 군대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새벽에 눈이 오길래 부리 낳게 출근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침 7시였지만 아직 동 트기 전입니다. 버스를 탈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발목까지 쌓인 눈을 보고 포기했습니다.
과천역으로 걸어가는 길이 참 길게 느껴집니다.버스는 거북이 걸음이지만 지하철은 이른 시간이라 그래도 한산합니다. 이렇게 한산한 여의도를 보긴 처음입니다.

갈 길이 걱정입니다. 지하철이 만원이라 기절한 사람도 나왔다고 하는데 천천히 여의도에서 눈구경이나 하다가 퇴근할까 합니다.

4 Comments

  1. 55연대 정훈장교

    반갑습니다.

    저보다 훨씬 고참이시군요.

    저는 96년에 육군정훈장교(당시 석사장교)로 임관하여, 같은 해 10. 18. 55연대 정훈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해서 99. 6.에 전역했습니다.

    96년부터 98년 8.까지는 장신리 연대본부에 있다가, 99. 8.~99.6.까지는 2대대 정훈장교로 꼬박 10개월을 건봉산 대대OP에서 근무했죠(그 당시 대대OP 벙커 입구 안 쪽에 조그만 박쥐가 한마리 살았는데, 지금도 살아있는지 모르겠네요^^).

    그 당시에는 군 생활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정말 그립습니다(다시 군생활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구요^^).

    그리울때면 네이버에 22사단, 뇌종부대, 55연대, 장신리 연대, 이런 식으로 무작정 검색을 하기도 하죠.

    그러다가 우연히 당시 근무하던 사람들과 연락이 닿아 만나기도 합니다.

    96~97 당시 연대장님은 어제 1군 사령관으로 취임하셨더군요. 2년 전에 역시 우연히 연락이 닿아 수방사령관 취임하실 때는 직접 가서 뵙기도 했는데….

    어제도 당시 선임하사와 11년만에 연락이 닿아 같이 축구보면서 맥주 한 잔 했죠. 마침 전역전 직업보도교육차 수원에 오셨더군요.

    그 분 말씀을 듣자 하니, 건봉산 대대OP는 911고지에서 조금 내려와서 4.2인치 진지 있던 곳에 현대식 3층 건물로 신축을 했답니다.

    정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장신리 연대 및 대대, 냉천리, 건봉산 대대OP, 까치봉, 오소동, 고진동(25소초가 죽음의 소초죠, 차량 접근이 안되는 곳이니까요), 간성읍내…

    가서 짬밥도 한 번 다시 먹어보고 싶구요.

    님도 그러신가요?

    Reply
    1. smallake

      안녕하세요. 사람마다 다 군대경험이 다르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고.
      4.2인치 진지라면 기억이 납니다. 대대OP가 결국 내려갔네요. 80년대 후반엔 시설이 무척 낙후했는데.

      제가 전방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체육대회를 건봉사입구에서 하고 올라오다 심장마비로 죽은 병사, 폭웨 철책선근무를 서다 빗물에 쓸려간 실종된 사람…

      제 직속상관이 통신소대장은 – 계급이야 위지만 나이는 하나 아래죠 – 보안부서에 저를 고발한 적도 있고.선임하사도 제 근무지를 자주 수색하기도 했고. 녹화사업이라고 해서 속초보안부대에서 한주일이상 조사도 받았습니다. 다시 부대로 복귀하니까 어색한 시선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장교의 기억과 사병의 기억. 그리고 다른 이유로 군대를 간 사병의 기억은 모두 다릅니다. 다만 지나면 그때의 아픈 기억은 사라지고 그냥 추억이 되죠.

      그렇지만 근무지를 향해 소변을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는 자주 갑니다. 작년에 간성쪽 해수욕장을 다녀왔습니다. 영동지방은 개발없이 보존되었으면 좋을 곳이지만 개발이 되니 아쉽더군요.

      하여튼 반갑습니다. 어제 아르헨티나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Reply
  2. 55연대 정훈장교

    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으시군요. 저도 뭐 꼭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그 사람들과 어울렸던 장소들, 그 사람들과 만들었던 이야기들이 자주 생각이 나네요.

    지금 무슨 일 하는 분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부대 출신으로서 하시는 모든 일 잘 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사진을 보아 하니 과천에 사시고 여의도에 근무하시는 분 같긴 하네요.

    활기찬 한 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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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저도 동기들과 만남은 좋아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끊겨서 못만나고 있지만…

      사실 몇몇을 제외하면 다 좋은 사람이죠. 일부러 부하들 얼차레주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고참이 큰 벼슬이라고 유세떨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뭐 다 기분좋게 만날 수 있죠.

      다만 만나기 쉽지 않아서..

      전직 정훈장교님도 잘 되셨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전직이 육군병장 혹은 일병 혹은 중위네요…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면…

      더운데 건강하세요…수요일 나이지리아전은 이겼으면 좋겠네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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