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민은행 전산팀장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금감원이 자살의 원인이냐 아니냐로 설왕설래했습니다. 국민은행은 조용히 차세대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가동하였습니다.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자살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인다고 하였고 성명서로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금융소프트웨어 엔지니어(프로그래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먼저 국민은행 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입니다.
국민은행 노동조합 성명서 전문
-‘노동조건감찰단’ 중심으로 지난 16일부터 어제까지 광범위한 진상조사 실시.
-故 노성우 팀장의 PC를 복구했으나 유서 등을 비롯해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주변 직원 면담 등을 통해 정황 중심으로 조사.
-고인의 죽음을 단순하게 ‘자살’로 몰아가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며, 사업부제 등을 포함한 KB국민은행의 총체적 문제와 차세대 전산 개발, 금감원 종합검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경찰의 자살이라는 잠정 결론 이후 고인의 노제(路祭)와 장례식이 이어졌고, 노동조합은 지난 주부터 본격적으로 사인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고인은 2007년 1월부터 여신업무팀장으로 일하면서 일반여신(주택대출, 일반대출, 기금대출, 외화대출)과 보증기금, 특수채권, 기업특화(B2B), 자동대출, 무역금융 등의 업무를 담당했으며, 시간대별 사건발생 개요는 아래와 같다.
일 자 시 간 내 용
2. 14 23 : 30 자해시도 발견 및 병원 이동
2. 15 00 : 15 동료들이 상처 치료 후 귀가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고인이 거부
02 : 30 사무실 주변 숙소에서 휴식
05 : 00 동료들의 귀가와 취침 요청을 재차 거부하고 사무실 출근 시도
06 : 50 동료직원 및 배우자와 통화
직원 통화 내용 : “업무 잘하자”
배우자 통화 내용 : 일상적 내용으로 자살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음
09 : 00 경찰(여의도지구대)로부터 사망사실을 연락 받음노동조합은 아울러 고인의 업무용 PC 데이터를 복구하여 사망 경위에 대한 확인작업을 실시하였으나, 유서 등 직접적인 단서가 될만한 내용이 없었고 사망 직전 자해시도 사실 및 경찰의 자살 추정 결론과 함께 주변 직원들을 중심으로 면담 등을 통해 사고 경위를 추정했다.
정신적 압박감과 관련된 개인적 측면에서 확인된 사망원인은 이렇다
첫째, 과중한 업무량 및 더딘 작업 진척도와 촉박한 일정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고인이 담당한 업무는 광범위하고 리스크가 큰 업무로서 여신업무팀장 1인이 동 업무에 대한 차세대 전산 구축을 관할하기에는 너무나도 과중한 업무량으로 촉박한 일정을 준수하는 데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여신업무의 특성상 다른 팀이나 부서와 많은 연관관계를 지녀 자체업무 개발은 물론 지원업무의 이중고에 시달렸으며, Open에 임박한 영업점 Test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둘째, 차세대 전산개발 막바지에 실시된 금감원의 종합검사로 전산개발 일정에 큰 차질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차세대 개발 실패에 대한 우려가 극한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금감원 종합검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1월 15일에서 2월 10일까지의 기간은 차세대 Open 이전 전 영업점 최종 Test (1월 9일) 실시 후 나타난 문제점을 최종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고인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계약 담당자도 아닌 전산 프로그래머임에도 불구하고 자료제출과 면담을 포함해 수 차례 검사장에 불려갔으며, 그때마다 3~4시간에 이르는 수검을 받아, 차세대 오류사항을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료제출에만 거의 매일 밤샘작업을 해야 했다. 특히나 고인은 전산정보그룹 상위 직급자에게 Test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도 못하는 실정에서 검사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심각하게 토로하기도 했으며, 자해시도 후 병원에서조차 담당업무에 대한 차세대 실패의 중압감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셋째, 금감원의 검사방식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조합의 진상조사 결과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차세대 시스템 도입과정에서의 비리 의혹」이나 「검사 연기 공문 발송」, 「금감원으로 불려가 직접 조사를 받은 것」은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검사기간 중 「고인이 모욕적 언사를 당했다」는 부분은 고인이 계시지 않기에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동일한 기간에 유사한 수검을 받은 동료들은 “모욕적 언사가 있었다”고 밝혔다.
넷째, 2년간 지속되어 온 야근과 휴일근무 등에 따른 정신력 약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은 책임감이 강하고 완벽성을 기하는 업무스타일의 유능한 직원으로 평소에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특히 이러한 성격 때문에 2009년 11월 이후부터는 모든 휴일을 반납하고 새벽에 퇴근하거나 밤샘작업을 많이 했다고 한다. 더욱이 부모님의 병환과 입시생 자녀에 대해 중요한 시기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조직문화적 차원에서 노동조합이 결론을 도출한 사망원인은 이렇다.
첫째, 차세대 개발과 관련한 무리한 일정과 운영이다. KB의 경우 타행과는 달리 기존 시스템의 유지 및 보수업무와 개발 업무를 병행함에 따라 개발일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나 통상적인 차세대 전산 코딩(컴퓨터에서 프로그래밍 등 기계언어로 기입하는 일)기간이 6개월이나 최초 4개월 일정으로 진행하다 다시 2개월을 추가하는 등 당초부터 일정을 무리하게 단축하려 했다는 의견이 전산정보그룹 직원들을 중심으로 개진되고 있다.
둘째, 그 동안 누누이 지적된 사업부제의 병폐에 따라 차세대 개발이 은행 전체의 일이 아닌 전산정보그룹만의 일로 치부되었다. 물론 차세대 개발 초창기에는 전산정보그룹은 물론 여타 그룹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충분한 예산배정은 물론 인원 충원도 없었으며, Test 일정수립 및 진행에도 상당한 애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나 검사일정 조정이나 인력 수급의 문제를 포함한 적절한 지원과 관련해 전략그룹, 재무그룹, HR그룹, 감사본부 그 어느 곳도 책임을 면할 수 없으며, 전산정보그룹의 부서장급 이상 또한 면책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긍정적 방향에서의 업무위임이 아닌 책임전가 성격이 강한 현행 KB금융그룹의 그릇된 조직문화다. 언제부터인가 문제점이 발생하면 부서장을 비롯한 임원이 책임지는 것이 아닌 실무자를 중심으로 한 담당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조직문화가 정착화 되었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통합 및 합병 이후 나타난 병폐로서 KB의 장기적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장애요소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조직문화는 분명 ‘혁파(革罷)’의 대상이다.
특히 고인은 생전에 이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여러 차례 동료들에게 토로했으며, 본인이 담당한 여신업무가 금감원의 종합검사 영향으로 실패할 것과 그에 따라 차세대를 성공적으로 Open하지 못하면 KB금융그룹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극도로 우려했다고 한다.
넷째, 전 직원에 대한 관심으로 사전적 예방을 기울이지 못한 노동조합 활동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과 가족, 동료들에게는 그 어떠한 위안도 ‘사후약방문’에 불과할 것이다. 노동조합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반성하며 남은 임기 동안 모든 부조리를 일소하는 데 매진하고자 한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작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 하의 KB금융그룹에 대한 인위적 지배구조 개편과 그 속에서 나타난 강정원 행장의 리더십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른 임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하는 태도다. 강정원 행장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러한 노동조합의 지적에 대해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변명을 한다면,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앞으로 대응방안은
먼저 고인에 대해 노동조합은 물론 은행측에서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고자 한다. 은행에 승격 추서를 요청하는 한편,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이미 소식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산정보그룹 직원들에 대해 ‘시간외수당’을 포함한 금전적인 부문과 ‘강제휴가’ 등의 비금전적인 부문에 대해 사기진작방안을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어제 전산정보그룹과 HR그룹을 방문해 노동조합의 요청사항을 전달하고 “빠른 시일 내 안을 만들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아울러 전산정보그룹 외에 고질적으로 초과근로에 시달리는 일부 본부부서 직원들에 대해서도 더 이상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 공동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직원보호프로그램’을 올 상반기 중에 완벽하게 정착시키고자 한다.
아울러, 강정원 행장과 금융감독원에 대해 사과 및 유감표명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촉구한다. 금번의 불행한 사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재발되어선 분명히 안 될 일이며,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책임은 강정원 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이며, 금융감독원 또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강정원 행장은 ‘조직 추스른다’는 명목 하에 전 임원을 연수원에 집결시켜 회의를 할 것이 아니라, KBN을 통해 전 직원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 고인의 마지막 걸음을 명예롭게 만들 수 있는 후속조치를 내놓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또 하나, 그 동안 본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이 보여준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금감원이 언론을 통해 본 사태와 관련해 최근 보여준 언사는 분명 잘못됐다.
노동조합은 사과 및 유감표명의 이행을 은행장과 금감원장에게 정중하고 분명하게 요구한다. 만약,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거나 또 다시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한다면, 노동조합은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도리이다.
[단결! 다 함께 전진!]
2.
국민은행 내부를 들여다 볼 기회가 없어 내부에 대한 주장한 부분은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조직문화가 회사마다 다르기때문에 국민은행은 모르지만 다른 은행의 경험상 오십보 소백보(五十步 笑百步)가 아닐까 합니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산관계자들이 겪었을 고생은 충분히 짐작가능합니다. 그리고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아쉽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시각이 아주 좁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차세대를 하든 하지 않든 항상 잔업과 야근 그리고 특근에 시달립니다. 이 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자사 직원들만 있지 않습니다. 좋은 말로 협력업체, 소위 ‘을’직원들이 다수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 차세대프로젝트를 진행한 엔지니어들도 역시 IBM, SK C&C 또 이들 주사업자와 계약을 ‘병’개발자 그리고 ‘정’개발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국민은행 전산팀이상으로 야근, 특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한 금융그룹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가 전산인력의 전환입니다. 전산직원들이 하루아침에 ‘갑’에서 ‘을’로 바뀝니다. 증권사에서 근무하다 ‘을’로 처지가 바뀐 아는 분들은 하나같이 ‘을’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갑’과 ‘을’은 다릅니다. 그렇지만 언제 ‘을’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노동조건에서 ‘갑’,’을’이 따로 없습니다.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지 않으면 힘듭니다. 엔지니어들의 초과노동으로 일정을 단축하고, 결국 예산을 절감하는 식의 프로젝트 진행은 지양하여야 합니다. 아니 예산편성할 때부터 이런 조건을 고려하여 예산을 줄이는 발주는 지양하여야 합니다.
전산팀장의 죽음이 진실로 안타까우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엔지니어에게 초과노동을 강요하는 ‘갑’의 발주관행부터 없애야 합니다. 그것이 노동조합의 할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