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生馬死

1.
지난 3개월동안 운동을 거의 못했습니다. 작년 말 관악산을 오르고 과천 매봉을 산책한 것외에 없습니다. ZeroAOS 마무리를 위한 길고긴 개발과 시험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할 사람이 정해지면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추가로 사람을 더할 수도 없고 요건을 다시 협의하여 재조정할 수도 없습니다.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시간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작은 사무실에 같이 일을 하고 있어서 회의를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도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컴퓨터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컴퓨터와 친하게 지내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 전자파에 의한 직업병과 컴퓨터에 의한 전자마약중독입니다. 눈이 아픕니다. 손목과 어깨가 쑤십니다. 다 전자파 탓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전자마약중독입니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제공하는 새로움에 중독되어 계속 컴퓨터를 떠나지 못합니다. 전자마약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극받은 뇌는 이상동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굳이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을 인용하지 않아도 머리는 정리되지 않은 정보와 자극으로 혼란하고 “띵!” 하고 무겁습니다. 최소 한주에 한번은 어디론가 떠나서 몸속에 흡수된 전자파를 배설하고 뇌가 머리속을 가득채운 정보와 자극을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자전거도 타고 산에도 오릅니다. 근무중일 때는 쓸데없이 어스렁거리고 수다를 떱니다.

이런 휴식과 배설을 3개월동안 하지 못했더니 드디어 지난 금요일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냅니다. 심장이 쿵쿵거립니다. 머리가 새벽부터 무겁습니다. 눈꺼플이 천근만근입니다.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출근하자마자 책상에서 잠을 잤지만 달라지지 않습니다. 만사를 제쳐 놓고 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마침 성당 모임에서 주말 산행을 한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청계산을 올랐습니다. 청소년수련관과 이어지는 소나무 능선길을 따라 매봉으로 오릅니다. 지난 여름 자주 찾았던 길입니다. 그 때는 홀로 산행이라 적막감에 무섭기도 했지만 여럿이라 편안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높지 않은 정상으로 향합니다. 내 몸에서 짙은 땀이 배어나오고 폐에서 거친 숨이 몰아치고 심장은 세차게 쿵쿵거리며 온 몸에 피를 공급합니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나의 마음과 몸이 정화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올라 매봉에 이릅니다. 갑자기 사람소리가 여기저기에 넘칩니다. 어색합니다. 다시 내려갑니다. 자주 올랐던 수종폭포에 이르는 계곡길입니다. 그런데 중간지점에서 계곡길이 아닌 능선길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길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진 그 순간부터 길입니다. 어제 밟았던 능선길도 누군가의 자취가 아주 적은 길이었습니다. 자취를 더듬어 한걸음 한걸음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누군가 남긴 흔적을 따라 오르고 내린 산행이었습니다.

2.
조용헌선생이 쓴 ‘牛生馬死’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오행(五行)에서 놓고 보자면 소는 축(丑)이고, 물이 축축한 토(土)에 해당한다. 팔자에 축(丑)이 많으면 영험한 꿈을 잘 꾸고, 기도를 조금만 해도 기도발이 잘 받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인 성향인 것이다. 말은 오(午)인데 화(火)에 해당한다. 낮 12시 무렵이기도 하다. 팔자에 오(午)가 많으면 활달하고 시원시원하면서 통도 크다. 불이 많은 사람은 추진력도 좋고, 돈을 잘 쓰기 때문에 이성에게도 인기가 좋다.

소와 말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계기는 홍수가 났을 때이다. 우생마사(牛生馬死)이다. 홍수가 나서 급류에 두 동물이 빠지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고 한다. 말은 빠르고 적극적으로 달리던 성질이 있으므로 물살에 저항하며 필사적으로 다리를 휘젓는다. 그러다가 결국 힘이 빠지면 죽는다. 반대로 소는 느리고 소극적이다. 흘러가는 급류에 자기 몸을 맡겨 버리는 습성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떠내려가는 데로 그냥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몸이 물에 둥둥 떠서 내려가다가 뭍에 이르면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급류를 만나 떠내려갈 때는 ‘우생마사’의 이치를 자꾸 머릿속에 떠 올려야 할 것 같다.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제주도 서귀포에서 올레 길을 걷다가 만난 어느 중소기업 사장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조용헌 살롱] [872]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중에서

읽는 내내 공감에 곰감을 하였습니다. 회사가 무너지려고 하고 그속에서 아둥바둥 버티려고 했던 긴 시간이 저에게 남긴 교훈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가능할 것도 있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선을 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소비하지 말라.”

무너져 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돈을 벌고 만들려고 했지만 나의 노력과 무관하였습니다. 그래도 버티었지만 남은 것은 빚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어느 순간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겨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일지는 모르지만 ‘살려고 버티다가’ 결국 말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를 못견디어 목숨을 끊은 이도 주변에 있습니다. 기업가는 ‘돈’에 도전을 합니다. 돈을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은 나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성공은 여러가지가 섞여야 합니다. 성공은 위해 아둥바둥 하지 말자.

水滴穿石하지만 牛生馬死와 같은 자세로 盡人事待天命하자. 요즘 생각입니다.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