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IT는 별 볼 일…

1.
송년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송년회때 어떤 모임에 참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이 지역과 학교 및 직장입니다. 저는 사실상 서울이다 보니 지역이 없습니다. 학교도 대학때 학생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의 모임이 아니면 나가지 않습니다. 직장은 더욱더 없습니다. 대표였고 망했기 때문에 기억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직장을 대신하는 것이 오랜 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과 송년회입니다.

어제도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아무 관심도 없지만 70년대말부터 80년대까지 학원민주화는 아주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84년 학도호국단이 학생회를 대신하던 시절 학도호국단이지만 학생들의 뜻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자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 때 모여서 같이 일했던 분들의 송년회입니다. 대기업 임원들, 대학교수, 증권사 임원들처럼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간 친구나 후배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한겨레신문 기자이거나 학술단체를 이끄는 동기도 있습니다.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국회의원들이거나 해외에서 교수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제 주제중 하나는 50대보수론이었습니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되돌아보면서 긴급조치와 광주항쟁을 겪었고 87년 민주화대투쟁때 넥타이부대로 앞장 섰던 50대가 어떻게 보수화하였다고 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갑론을박을 하지만 신문이나 평론가들이 말하는 “50대의 정의가 틀렸다”는 생각에 공감을 합니다. 대학을 다니고 87년 민주화대투쟁 및 노동자대투쟁을 겪었던 50대가 전체 50대중 몇 % 되지 않습니다. 대학진학률이 30%가 넘지 않았고 87년 민주화를 경험한 부류도 크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으로 다른 것을 바라보는 오류일 뿐입니다.

2.
이런저런 수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습니다.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증권사 임원을 맡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아마 부서 회식때문에 늦었는 듯 술을 약간 하고 와서 갑자기 “자식들이 이과계열이냐, 문과계열이냐”를 열심히 묻더군요.

요즘 증권사는 채용시즌입니다. 고위임원이기때문에 최종 면접자리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먼저 문과계열. 학력이 휘양찬란합니다. SKY는 기본이고 미국 유명대학의 석사들이 넘칩니다. 채용 통보를 받은 사람을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몇 년동안 증권사는 구조조정중입니다. 직접적인 대상은 지점 직원과 이와 관련한 본부 직원들입니다. 아마도 선제적인 지점 조정으로 흑자를 기록한 미래에셋증권이 다른 증권사의 선행모델일 듯 합니다. 사업부분을 구조조정한다고 하지만 결과는 인력 조정입니다. 있는 사람도 짜르는 판에 새로운 사람을 채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과계열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점 직원은 계약직인지 오래입니다. 본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경쟁이 높아지면서 IT와 금융공학과 같은 수학적 사고를 가진 이들을 선호합니다. 역시나 인문학적 지식으로는 힘듭니다. 증권사가 선호하는 인재는 공학적 사고와 경영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융합형 인간입니다. 문과계열 졸업생들이 선호하던 금융권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때문에 구직이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반면 전산계열. 전세계적으로 보면 금융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상품이 복잡해지니 제도도 점점 복잡해집니다. 규제는 IT에 의존적이고 서비스는 IT화하고 있습니다. IT와 결합한 공학적 지식이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여의도에서 본 자본시장IT는 여전히 ‘노가다’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은 있지만 탄상공론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용이고 일정입니다. 일정을 위해 품질은 뒷전이고 날밤은 필수입니다. 이런 작업환경을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당장 떠나서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최종 면접에 올라온 이들을 보면 통속적인 기준으로 떨어지는 대학 출신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50%정도가 다른 직장에서 채용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비약해보죠. 금융산업은 IT산업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금융 IT를 책임질 사람들의 경쟁력이 점점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체 전산이 힘들면 외부의 힘을 받는다고 하지만 외부 IT 또한 수준이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해외 IT로부터 비즈니스적 요구를 채우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이런 배경때문에 “문과냐, 이과냐”를 물어보았습니다. 문과를 다니는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써의 어려움을 토로했죠.

3.
몇 달째 골드만삭스를 읽고 있습니다. 주식회사도 아니고 ‘파트너’들간의 협력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업입니다. 골드만 삭스는 70년대 중반까지 제너널리스트인 개인이 지배하던 투자은행업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스페셜리스트들의 협력인 조직이 주도하는 투자은행부서로 시장을 주도합니다. John Wirehead가 처음 변화를 제기할 때부터 10년이상이 걸렸습니다. 한국 증권사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당장 실적에 매달리면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위기라 변화를 모색하지만 위기가 물러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10년을 보냈습니다.

몇 일 남지 않은 2012년. 송년회는 세 번 남았습니다. 매일 ZeroAOS를 시험하면서 보내는 오늘, 내일의 디딤돌이길 기도합니다.

(*)어떤 글에서 김동춘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네요

“50대의 80%는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고등학교 이하 졸업자다. 이들이 (대학교육을 받은)유신세대와 체험한 것은 다르다.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담론을 주도하고 있어 80% 사람들을 착각하고 있다. 대학교육이 가져오는 비판적 효과나 정책적 문제에 대해 굉장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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