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성지순례 – 손골성지

1.
몇 일전 목요일. 과천성당 바다의 별 Pr.이 1500차 주회를 한 날이었습니다. 1500차를 시간으로 바꾸면 30년쯤 입니다. 8시부터 있었던 축하모임을 위해 1500차까지의 발자취를 더듬는 사진전시화와 프레젠테이션을 맡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처음때부터 현재까지의 행동단원들의 기도와 성모님의 은총으로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비단원인 저는 뒷풀이 시간부터 설거지를 했습니다. 자매보다는 형제들이 행사 뒷정리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고 술을 덜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집에 들어가니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다음날 저녁. 야근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이스라엘로 한달 출장 갔던 분이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같이 저녁을 하기로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주제는 ATS입니다. 힘 없는 두사람이 뒷담화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사이 또 전화가 왔습니다. 전 직장 후배입니다. 사표를 쓰고 환송자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근 대신 늦은 시간까지 몇 사람과 술잔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가락시장에 다녀오면 바쁩니다. 겨울을 맛나게 나려면 부지런히 다녀야 합니다. 반나절 집안일을 하고 나니 무엇을 할지 고민해보았죠. “산? 자전거?” 11월에 첫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주말에 일을 하다보니 몸안의 노폐물이 쌓여 있는 듯 합니다. 몸도 마음도 깨끗이 할 겸 자전거성지순례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갈 곳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남양성모성지를 가고 싶지만 초행이라 선듯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을 찾던 중 성지순례 222km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한 분들의 글들이 보였습니다. 손골성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2.
손골성지는 용인시 수지구 광교산 밑자락에 위치한 성지입니다. 손골성지는 천주교 박해시기 박해를 피해 신자들만이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인 교우촌이었다고 합니다. . 손골교우촌을 현재 ‘손골성지’라고 부르는데 프랑스 선교사로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한 도리(Dorie, 金, 헨리꼬) 성인과 오매트르(Auma?tre, 吳, 베드로) 성인을 기념하고 박해시대 손골교우촌에서 살았던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는 곳이라 합니다. 손골성지를 가려면 세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지금 손골성지 주변이 전원주택단지로 개발하고 있지만 오래전엔 인적이 드문 아주 외진 곳이였을 듯 합니다. 지금도 청계산 하오고개 – 돌운리고개(여우고개라고도 합니다) – 광교산 말구리고개를 넘어야 갈 정도입니다. 다른 곳에 비해 두발 순례자에겐 힘들 길입니다.

아래는 과천에서 성골성지로 가는 길입니다. 메타세콰이어가 단풍으로 물든 길이 멋스러웠습니다.

손골성지는 다른 곳과 달리 작습니다. 작다고 신앙선조들의 믿음이 작지 않습니다.

3.
두 주전 봉사를 다니는 병원 주일미사때입니다. 두번째 봉사라 두번째 듣는 강론입니다. 구약을 ‘이방인’, ‘과부’와 ‘고아’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하느님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 묶음을 잊어버리더라도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손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너희가 올리브 나무 열매를 떨 때, 지나온 가지에 다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포도를 수확할 때에도 지나온 것을 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신명 24.17-22)

1103위 순교성인의 신분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부인, 과부, 농부들이 많습니다. 19세기말 조선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가장 고통받는 이들입니다. 나의 믿음이 역사와 함께 하여야 함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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