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 신문 부음소식에 성악가 오현명선생님이 영면하셨다는 기사가 보였습니다. 특별한 인연도 없지만 그저 노래 한곡때문에 기억하는 분입니다. ‘명태’라는 변훈선생님의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셨습니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때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때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때(카아~~~)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짝짝 찢어지어 내 몸도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명~태 허허헛 명태라고
헛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2.
40대이상이면 추억속의 가곡 하나씩이 있습니다. 여의도중학교 2학년때입니다.? 76년 1학기초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노래 하나씩을 부르라고 하더군요. 음악실에 앉은 순서대로 한명씩 한명씩 불렀습니다. 두근두근~~예나 지금이나 남앞에서 무엇을 하는 것은 긴장됩니다.? 그 때 제가 부른 노래는 ‘님이 오시는지’입니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바람 ….”
평소 음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이 날은 목소리가 가늘게 고음으로 내지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끝난 후 합창반에 뽑혔습니다.? 그리고 1년동안 흑인영가부터 여러노래를 불렀습니다. 학교축제때 발표도 하고..
80년초반 대학가에서 많이 부르던 노래는 ‘선구자’입니다. 시위할 때 부르던 노래입니다.처음에 느리게 장중하게 시작해서 ‘훌라송’ 혹은 ‘우리 승리하리라’등을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노래는 ‘명태’입니다. 80년대 초반 대학가 술문화는 학사주점입니다. 시위를 한 저녁시간 아니면 학교 모임이 끝난 후 의례껏 녹두거리에 있는 녹두집에 모여서 뒷풀이를 합니다. 지금은 노래방문화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젓가락장단의 구수한 노랫소리로 흥을 돋구었습니다. 기계음이나 MR 장단보다는 부르는 이의 목소리를 정겹게 느낄 수 있는 젓가락장단에 한곡 한곡 넘어가면 소주를 먹을 시간입니다.
이 때 선배가 변훈선생님의 ‘명태’를 부릅니다. “....쇠주를 마실때”가 터저 나오면 모두? ‘카아~~~’하며 한잔 쭉 마십니다.
3.
이제 사라진 문화입니다. 젓가락장단이 퇴폐적이다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노래방 반주기를 보면서 머리가 나빠졌습니다. 노래가사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노래에 취해서 나름으로 흥을 내기 힘듭니다. 그저 반주기가 가라는대로 잘 가야 합니다. 쇠젓가락으로 상다리가 부숴지도록 두드려도, 힘든 하루뒤에 구슬픈 젓가락 장단에도 사람냄새가 있었습니다.? 그런 주점이 없을까?
그러게요..예전 백마가 그런 곳이였는데..
밤새 기타 치고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하고
막걸리에 취한 감흥은 노래에 깨고..
그러다 또 막걸리 한잔에 노래 한곡…
그런 곳이 백마였는데….
백마는 이미 문화가 바뀌었고~~~학교앞에 가야 아마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 이봉선이사와 날 잡아서 막걸리나 한잔 하시죠. 젓가락 장단에(^^)
저야 항상 콜이지요..
언제든지…
날 잡져..아예..ㅎㅎㅎ
오늘부터 제가 본사로 복귀했습니다….막거리라면 시내가 좋을 듯. 최사장님이 도장찍으시면 저는 따르겠습니다….
피맛골 초입에 ‘열차집’이라고 있네요.여기가 어때요?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46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