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지만 사적인 일기같아서 옮깁니다.

1.
침소봉대하는 기레기의 속성상 수많은 문장중 아래 문장만이 유일한 기사감이었을 듯 합니다.

” 조국 전 장관의 임명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단호한 입장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예상가능한 입장일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기사화한 후 어떤 분이 이런 비평을 하였습니다.

“조국은 문재인 정권에서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을 지냈지만, 민주당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노회찬 후원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의당 청년 후보들은 “진보 정치인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일방적 흠집 내기에 맞서 치열히 싸우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조국 장관에 더 치열히 반대하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아직 살아있다면 저들이 어떻게 대했을지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이후 제가 아는 분들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례연합정당으로 잉태되었던 갈등이 선거를 앞두고 본격화하는 모양입니다. 87년 민주 대항쟁이후 오래된 논쟁이 있습니다. 민주대연합 vs 독자후보론. 오래지만 항상 새로운 논쟁이고 이 논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전쟁의 상처가 깊게 패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싸웠는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되었든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든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사태도 재판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증언을 놓고 보면 분명 ‘검찰과 언론의 탄압’입니다. 그렇지만 사생활을 정치화하여 까발려질 수 밖에 없었던 강남좌파의 맨 얼굴도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각자의 삶속에서 형성된 가치로 보고 싶은 부분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까지 몸 담았던 조직은 연합조직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위에서 썼던 것과 비슷한 수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아주 사적인 경험으로 일반화하면 항상 결과는 뺄셈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다툴 때 공존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많이 들었고 배웠던 단어는 ‘다름’입니다 . 다름을 인정해야 다양성이 가능하고 그래야 민주주의가 튼튼해진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타도 대상만 있었던 사고속에서 배우기 어려운 생각입니다. 그래서 박쥐이고 회색인처럼 삽니다. 가능하면 들으려고 합니다. 말을 하는 순간 청년시절 습관이 말속에 담깁니다.

“논쟁을 할 때 무조건 이겨야 한다”

다시 한번 되뇌여 봅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2.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자라면서 배우고 익히고 반성하고 행동하면서 성장합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계속일 듯 합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용하는 잣대가 문제입니다. 누구라도 그 잣대를 들이밀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컵에 반정도 물이 찼습니다. 이를 보고 “에게게 반정도밖애”라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아니 반씩이나”하는 분도 계십니다. “없다”가 아니라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지를 평가해주면 어떨까요? 고 노회찬 의원도 햇병아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의당 비례후보라는이유(^^)로 이런저런 비판을 받은 젊은 정치인들을 위한 변명입니다. 아주 개인적인…..

2 Comments

  1. 임중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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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mallake (Post author)

      저도 감사합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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