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년 말 페이스북에 이런 저런 글을 올렸습니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지내던 분들이 선거 출사표를 올립니다. 고르바초프가 저물어 가는 소련을 지키고 있을 때 세가지 진로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첫째는 사법시험, 둘째는 정치입니다. 당시 운동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었고 저 또한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포기했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고 싶지 않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업입니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다른 인생을 살았겠죠. 사업을 선택해서 나름 꿈도 있었지만 세상살이 단맛과 쓴맛을 모두 보았습니다. 별 후회는 없네요.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이 있기때문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 인생이라지만 그냥 지루한 드라마가 가장 멋진 인생이 아닐지. ^^
영화 “졸업” 마지막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떠나는 장면입니다. 출발입니다. 인생은 탄생이라는 시작과 죽음이라는 끝으로 이루어진, 겹겹히 쌓인 시간의 흔적입니다. 한발더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시작과 끝이 보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끝을 예고하지만 그 끝이 어떨지 알 수 없습니다. 실패의 두려움은 이 때문에 생겨납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시작은 나이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어릴 때 시작은 두근거림인데 나이가 들면서 시작은 두려움입니다. 젊음은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나이듬은 선택을 점점 어렵게 만듭니다. 의도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외통수인생이 됩니다.
인생은 육십부터. 인생 제2막의 시작.이런 말을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많은 이들은 새로움 보다는 익숙함, 시작보다는 연장을 원합니다.어떤 삶이 앞으로 기다리고 있던지 작은 변주곡이라도 여럿이 있는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흔히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 일관성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변했다고 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2019년을 지나면서 한 부류의 사람들이 바뀌어 감을 봅니다. 소련이 망할 때, 민중당이 실패했을 때, 3당합당이 있었을 때, 북한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처럼…
조국사태를 보는 눈이 다양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봅니다.
조국사태를 지켜보면서 정치과잉에 빠졌던 시간이 저절로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무언가 글을 남기고 싶은 것도 이유였으리라 생각합니다.
2.
1월 1일 한 해를 시작하면 첫날 성당 모임후 뒷풀이를 가졌습니다. 함께 한 교우중의 한 분이 31일의 소회를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5학년을 졸업하고 6학년에 들어서니까 찹찹하네요. 무언가 책임감이 더 커지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 나이가? 오랜 동안 숫자에 신경쓰지않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나이가 머리를 채웁니다. 매년 1월 1일 블로그에 올렸던 것이 해돋이 사진입니다. 해 뜨기 전 관악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찍고 한해의 소원을 적었습니다. 2019년은 허리를 다쳐서 그냥 둘레길을 걷기만 했습니다. 아쉬움에 2020년 첫날 새벽에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을 먹었습니다. 늦은 시간 잠을 청하고 새벽 5시쯤 눈을 뜨고 자리에 누워 계속 뒤척였습니다.
“바람이 찬데…
연말 무리해서 피곤한데”
올라가지 않을 이유 수 십가지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까 7시입니다. 부리나케 차림을 하고 관악산 용마골로 올랐습니다. 40분쯤 해가 떠올른다고 하니까 중턱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듯 합니다. 걸어가면서 하늘을 보니까 구름이 잔뜩 낀 듯 하더군요. 예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멀리 청게산이 구름에 가렸습니다. 결국 중턱에서 해돋이 대신 적막한 관악산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해의 건강과 평화를 기도드렸습니다.
오르막을 급하게 걸었지만 내려올 때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생각을 모았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정상에 올라간 적은 없지만 지금이 인생의 정상은 아닙니다. 중턱 언저리에서 머물러도 감사할 뿐입니다. 빨리 많은 것을 하기 보다 천천히 주어진 작은 것 하나라도 멋지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만 바라본, 중턱에서의 해돋이! 아름답습니다. 정상이 아니더라도 아름답습니다. 오늘 한국일보 칼럼에 실린 원효 대사의 말씀을 새겨봅니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 심멸즉토감불이(心滅卽龕墳不二)”
“마음이 생기면 일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마음이 고요하면 동굴과 무덤은 다르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