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란법. 한동안 말이 많았고 지금도 말이 많습니다. 부패지만 관행위에 만들어진 터전이 붕괴된다고 하고 관행이지만 부패로 이루어진 삶의 기반을 허물고 새롭게 다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헌법재판소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청탁금지법이 정한 대상자와 만날 일이 별로 없지만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했습니다. 공부할 겸 국민권익위원회가 만들어서 배포한 청탁금지법 해설집을 소개합니다.
2.
김영란법은 나와 무관한 듯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기자님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내안의 부패’을 떠올렸습니다. 그 중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옮겨봅니다.
말 나온 김에, 과거 내가 경험했던 혹은 내가 전해들었던 뇌물과 선물과 밥 등의 사례들을 몇 개 적어본다. 예전 포스팅에도 적었던 것 같지만 또 적어본다. 원래 기사는 재탕 우라까이하는거다… 다행히 과거에 있었던 일은 김영란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기에 또 이런 호사를 앞으로 누릴 일도 없어 보이기에 여기서 다 까겠다. 단 나의 경험은 전부 2011년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라 요즘도 이런 문화가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이른바 ‘메이저’ 매체의 기자로 일해본 적이 없다.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영자신문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받고 살았으니 메이저 매체 기자는 뭐 맘만 먹으면 집이라도 한 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옛날엔 더 심했다 한다. 하긴 나라에서 기자들을 위한 아파트도 분양해줬던 시절이 있었으니…
– 밥: 밥은 하도 많이 얻어먹어서 셀 수가 없다. 기자는 늘 돈을 안 낸다. 과천 정부청사에 출입하면 점심때마다 공무원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사려 내려오곤 했다. 간혹 순번을 정해서 관련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홍보팀에서도 밥을 사러 온다. 예를 들어 대형 건설사의 홍보팀에서 돌아가면서 건교부 출입기자실에 밥을 사러 오거나,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에서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기관장이 직접 점심을 사러 오는 식이다. 이런 경우 보통 청사 앞에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다. 과천 일대 산속에 쏙쏙 박혀있는 무슨무슨 가든이네 하는 고깃집으로 부웅~~~ 봉고차를 타고 가서 식사를 한다. 점심시간만큼은 어디 여행온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홍보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기자실에 점심을 사러 내려온다. 내가 정말 단 한 번도 이런 자리에서 더치페이 하는 기자를 본 적이 없다. 물론 혼자 먹고 싶으면 혼자 먹어도 된다. 삼성전자 출입하던 시절에는 혼밥하고픈 기자들을 위해 매일 따로 도시락 신청도 받아줬다. 나도 초반에는 아무 부끄러움이나 문제의식 없이 기자실에서 근무하는 ‘실장’에게 ‘저 오늘 도시락 하나 시켜주세요’ 이러고 살았다. 나중엔 이렇게 사는 게 좀 비굴하게 느껴져서, 홍보팀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밥먹는 날이 많아졌다.
– 술: 술도 뭐 셀 수가 없다. 단체로도 먹고, 소수로 먹기도 한다. 단체로 먹은 자리 중에는 기재부에서 장관부터 공무원들 쫙, 그리고 출입기자들 우루루 해서 양평인가 어디에 1박 2일 워크숍을 갔던 기억이 난다. 국민세금이다.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날 하도 술을 많이 먹어서 다음날 토요일 친구 순혁이 결혼식에 증인을 못 섰다. 미안하다 순혁아… 이렇게 출입기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술자리는 사실 딱히 문제삼는 사람이 없다. 그냥 공무원과 기자 서로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소수로 먹었던 술 중에는 이른바 ‘텐프로’라고 하는 업소 같은데 데리고 갔던 모 대기업 차장님 생각이 난다. 그냥 저녁에 탕수육 먹으러 오래서 갔더니 ‘아끼는 기자’ 몇 명만 불렀다면서 묘한 업소에 데려갔다. 원래는 나 같은 클라스의 기자는 데려가지 않는 술집인데(기자 클래스마다 쓸 수 있는 술값이 정해져 있는 듯) 특별히 불러줬다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셔서 약간 고까운 마음으로 양주를 마셨던 것 같다. 술자리 중 가장 인상적인 자리는 2007년 A 텔레콤 회사의 연말 파티였다. 돈이 많은 회사라 그런지 기자들만을 위한 파티를 따로 열었다. 조선호텔 오킴스 바를 통째로 빌려서, 연예인도 등장하고, 선물도 팍팍 뿌리고… 당시 포스팅을 보니 나도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놀진 않겠지.
나의 김영란법 위반사례 이야기 중에서
이외에도 골프, 선물, 출장, 성접대, 봉투 등의 경험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몇 년전 우연히 읽었던 중국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중국, 홍콩, 대만을 다니면서 영업을 할 때 경험하거나 듣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Booze, Sex, and the Dark Art of Dealmaking in China의 글을 소개한 기사입니다.
Booze, Sex, and the Dark Art of Dealmaking in China
기사중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Alcohol, food, and sex are fun. But in China, the culture of banquet and brothel has become largely joyless, a business tool chiefly directed at transactional relationships with other men.
1994년부터 여의도에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여의도의 비지니스문화는 중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들의 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전직 기사가 소개하는 사례나 중국의 경우를 넓은 의미로 ‘접대’라고 합니다. 김영란법이 적용대상으로 하는 헌법기관, 중앙행정기관, 공직 유관단체, 각급 학교와 학교 법인, 언론사 등 3만9천965개 기관·단체 및 이와 관련이 있는 가족을 포함한 400만명에 국한한 일일까요? 아마도 갑(접대받는자)와 을(접대하는자)이 있고 갑과 을의 관계가 이익을 매개로 하는 관계인 한 접대문화는 없어질 수 없고 비록 김영란법의 대상은 아니지만 잠재적인 부패사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접대공화국이라고 합니다.
3.
은밀히 이루어지는 접대의 결과가 공개적으로 들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공성이 짙은 기업의 경우 형사사건으로 들어납니다. 오래전 사건입니다. 아래는 Exture를 추진할 때의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KRX와 관련한 일을 하는 회사는 부정비리에 얽히지 않기 위하여 조심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검찰은 8일 공기업 수사의 일환이었던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와 그 자회사인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의 각종 비리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KRX 임직원 5명과 코스콤 직원 3명에 대해 상급 기관인 금융감독원에 징계 처리할 것을 통보하고 해당 기관에도 비위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KRX와 코스콤이 비리 복마전이라고 할 만큼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고 밝혔다.먼저 2006~07년 사이 KRX 직원들은 유흥주점과 골프장에서 법인카드를 23억9000여만원어치 사용했다. 이 중 유흥주점, 골프장에서 업무회의를 했다며 쓴 돈이 2억이 넘는다.검찰 관계자는 “유흥주점, 골프장에서 여흥을 즐긴 비용을 법인 카드로 결제한 후 ‘회의용’이라고 허위 보고 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된 임직원이 전직 이사장을 포함해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밝혔다.검찰이 비위를 통보한 KRX 직원 5명 중 3명은 선진 경영 혁신사례를 탐방한다는 명목으로 해외 연수를 간다며 회사에서 돈을 받은 후, 실제로는 열흘 가까이 가족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3명이 연수비용으로 받아간 돈은 2000만원 가량이다.
증권선물거래소 임직원 ‘비리 불감증’중에서
방대한 규모로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는 코스콤도 에외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아래 사건이후 입찰과정을 투명히 관리하는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김주원 부장검사)는 코스콤 출신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가 사업권을 획득하도록 힘쓰고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코스콤 A모 부부장과 전 본부장 B모씨 등 4명을 15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07년 코스콤 기술연구소 차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코스콤 출신 선배였던 업체 대표 C모씨에게 사업권을 획득하도록 도와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향응을 제공받아 C씨를 도왔고 이같은 배임혐의로 코스콤은 수억원대 손해를 입을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콤 전·현직 직원, ‘납품 비리’ 불구속 기소중에서
그렇다고 여의도의 다른 회사들, 증권회사 등이 청청기업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공공연한 금품수수는 사라진 듯 하지만 밥, 술, 골프, 출장 등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남아 있습니다. 관계와 접대사이에서 줄타기한다고 할까요?
사업을 하면서 영미권의 비지니스문화는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과 다르다고 합니다. 다만 한국을 찾는 영미회사들의 임원들도 한국식 접대를 원하긴 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기 때문일까요? 거칠게 아시아와 영미를 비교하면 비지니스의 지속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다른 듯 합니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본능에 호소하는 비지니스문화이고 영미의 경우 신용에 기초한 비지니스문화라고 느낍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접대를 뒤집으면 대접이 됩니다. 접대(接待)를 사전식으로 설명하면
손님을 맞아서 시중을 듦
동어반복식 표현이라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상하관계를 뜻하는 ‘시중’이 들어갑니다.
반면 대접(待接)은
마땅한 예로써 대함
유교적인 해석이고 어렵습니다. ‘예(禮)’가 무엇일까요? 하여튼 대등한 관계이지만 ‘예’를 기초로 합니다. 비지니스문화가 부패의 온상에서 벗어나려면 대접의 문화이면 어떨까요?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돈을 가진자’와 ‘돈을 벌어야하는자’가 대응한 관계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