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라우터와 자본시장법

1.
내일이면 6월입니다. 다음주 월요일은 한국거래소의 부산라우터가 공식적으로 가동하는 날입니다. 부산라우터를 두고 금융위에 반기를 들겠다고 하던 소리가 있었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는 형국입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허가와 감사를 받아야 하는 금융투자사업자들이 나서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부산라우터의 정치학
“라우터 예정대로”…KRX ‘부산화’ 박차

부산라우터의 정치학에서 다루었듯이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현재 ‘부산라우터가 위법하다’는 논리는 ‘차별적 서비스 금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의 출발은 ?2009년부터 시작하여 2011년 한국자본시장을 흔들었던 ELW재판을 계기로 본격화한 시장접속 기준 논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생각하는 시장접속기준은?

시장접속기준을 둘러싼 긴 논쟁의 결과는 2012년 3월부터 시행중인 금융투자업규정중 차별적 서비스금지규정입니다.

최종 공고한 차별적서비스 금지규정

그렇지만 ‘차별적 서비스 금지규정’은 한국거래소의 차별적 서비스앞에서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차별적 서비스를 금지하고 있는 규정이 금융투자회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금융위원회의 행정행위라는 이유입니다.

사라진 지역간 차별방지방안

여기서 다시금 지난 몇 년동안 이루어진 시장접속논쟁을 되돌아 봅니다. 수많은 씨줄과 날줄이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부산라우터까지 포함하여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래도 ?얽히고 섥힌 실타래중에서 어떤 씨줄이 가장 핵심일까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시장접속의 공정성(Fairness Of Access)입니다.

2.
한국자본시장을 기본적으로 규정하는 법률은 ‘자본시장법‘입니다. 자본시장법 1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조(목적)이 법은 자본시장에서의 금융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공정성·신뢰성 및 효율성을 높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공정성을 아주 중요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본시장법상에 ‘공정성’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 알아보려고 전문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크게 두가지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공정한 매매가격 형성”과 “공정한 시장질서 “입니다. 이것이 불공정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물론 공정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입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을 놓고 보면 ‘시장접속의 공정성’을 담을 그릇이 없습니다. 오직 금융감독규정상에 정의되어 있기때문에 행정적 편의에 의해 공정성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부산라우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접속의 공정성은 비단 한국만의 쟁점은 아닙니다. DMA, 코로케이션, Sponsored Access와 HFT로 인해 전통적인 규제틀이 위협받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은 오래전부터 Fairness Of Access라는 개념을 시장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논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의 결과 SEC는 201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Fairness Of Access란 개념을 어떻게 도입할지 시장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Concept Release on Equity Market Structure

같은 선상에서 국제증권감독기구의 보고서에서도 Fairness Of Access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국제증권감독기구의 보고서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한국 금융감독원의 ‘차별적 서비스 금지 조항’도 국제적으로 일어난 논쟁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거래소가 지닌 법적인 지위때문에 ‘차별적 서비스금지’에서 한국거래소는 예외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비유가 어떨까요?

“가장 억울한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비가 있지만 동시에 아비가 없는 자, 희한하게도 그것이 서자의 운명이다.”

홍길동의 독백입니다. ‘차별’은 ‘차별’인데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아니다”라고 하니 ‘차별’이 아닌 식입니다.

3.
이런 애매함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시장법에 ‘시장접속의 공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9대국회가 나서서 논의를 주도하여야 합니다. ?2011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가 특정한 목적을 지닌 논의였다고 하면 2012년 논의는 IT기술 등에 의해 변화한 자본시장구조의 변화를 담아 시장참여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여야 합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자신들의 권한으로 묶어둔 두가지 – 시장정보의 투명성과 시장접속의 공정성 – 을 자본시장법의 틀안에서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한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개인투자자들이 나서서 ‘부산라우터 가처분신청’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라우터는 18대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부산지역국회의원들이 나섰기 때문에 현실화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규정에 의해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마치 총호가잔량 비공개때 개인투자자들이 나선 것과 같습니다. 소송의 목적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질 확률이 많다고 하지만 본질은 사회적인 쟁점화입니다. ?금융중심지 부산을 육성한다는 정책적 목적때문에 투자자들의 공정한 시장접속권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예상을 합니다.

?”부산라우터가 가동을 하면 다음 목표는 시장정보다. 부산지역은 부산지역 육성을 위해 시장정보를 부산에서제공하라고 요구할 것이고, 부산IDC에 입주한 금융투자업자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부산에서 시장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파생시장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부산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토론은 필요하고 법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시장접근의 공정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법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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