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 삼심과 사십. 김광석이 ‘서른즈음에’를 블렀고 그 노래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했을 만큼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는 때인 듯 합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지내온 삼십이 끝날 즈음 사십을 맞은 사람들은 ‘청춘 끝, 중년 시작’을 느끼는 듯 합니다. ‘듯 합니다’는 나의 경험이 아니기때문입니다.
내가 서른 즈음인 1992년. 이념과 투쟁으로 이어진 이십대의 끝에 맞닥뜨린 것은 사회주의의 붕괴였죠. 내가 사회주의이든, 아니든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이 때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삼십이 주는 낭만은 온데 간데 없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내가 선택한 길이 정보기술(IT)였죠. 그 때의 선택이 여기까지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마흔 즈음인 2002년. IT로 이어진 선택은 또다른 선택을 요구하였습니다.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여야 하는지, 나와 다른 방식을 참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나에 맞는 방식이 가능한 권력을 얻는지”를 놓고 좌충우돌하였습니다.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경영자로서의 나’였습니다. 2002년이 끝나갈 무렵 회사를 완전히 인수하였습니다. 하지만 준비하지 못한 선택은 또다른 길을 예정하고 있었죠. 시간이 흐른 후의 실패였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스물즈음인 1882년도 선택을 하였던 때였습니다. 요즘과 다른 대학입시지만 공부만 한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학한 대학교. 1981년입니다. 이 시절 대학에 낭만이 있었다고 하면 술입니다. 대학은 조용하고 술집은 부적였습니다. 토론으로 시작하여 노래 합창으로 끝납니다.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내발로 찾아간 어느 동아리. 그후 82년은 학생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2.
10년이라는 시간은 강산을 변하게 한다고 하죠. 스물 즈음에 본 여의도는 한강 수중보가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밀물, 썰물때가 되면 한강의 물흐름이 급히 바뀝니다. 물살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보다 하늘빛에 더 가까왔습니다. 마흔 즈음에 찾은 한강은 짙은 색깔이었죠. 끝을 알 수 없는 혼탁함이었습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했지만 시간은 강산도 변하게 하고 사랑도 변하게 하고 사람도 변하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도 바뀌게 합니다.
마흔 즈음에서 십여년이 지난 2012년. 생각해 보면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섰네요. 회사원 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사업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지 한 해입니다. 준비한 시간을 놓고 보면 본격적인 출발인 때입니다. 그런데 오십 즈음은 이전과 다릅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변화입니다. 노화(老化)입니다. 몸이 아프타고 난리입니다. 어느 날부터 귀울림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조금 조용히 집중하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고칠 생각보다는 의례 그려려니 하고 삽니다. 언제는 눈이 아픕니다. 조금만 모니터를 보아도 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혹시나 해서 안과를 찾습니다. “녹내장일까요? 백내장인가요?” 물어봅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다리도 속을 썩입니다. 무릅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고 엉덩이도 불편합니다. 나이가 들면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이 되지는 알 듯 합니다. 새로운 변화가 있으면 마음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거부합니다. 몸이 힘들어 합니다.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릅니다. 결국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을 인정합니다. 몸이 편해지더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런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3.
내 또래를 보면 슬슬 퇴직을 준비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우아한 삶을 설계하고 여유가 없으면 생업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합니다. 자기 사업을 하던 이들은 다릅니다. 지금까지 왔던 길을 계속 갑니다. 한번의 실패지만 큽니다. 회사원으로 가도 남은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다시 창업을 하더라도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원으로 일 했고 길지 않은 시간 회사에서 썩기보다 내 길을 가자고 해서 창업을 했죠. 그 때 아내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하니까 “앞으로 이십년은 일을 해서 노후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토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십년을 놓고 보면 변화와 혁신 또한 중요합니다. 그런데 몸이 계속 신경을 쓰도록 합니다. 앞으로 가고 싶은데 뒤가 땡깁니다.
속도를 조절할 때입니다. 몸이 힘들어 하지 않을만큼 그렇다고 두발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을 속도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 엄홍길씨가 세번째 안나프르나를 등정할 때 동료였던 셰르파 라티가 크레바스에 빠져 유명을 달리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전에 원래 서로 줄을 로프로 연결해서 해서 안자일렌이라고 해서 대원들끼리 안전 확보하기 위해서 로프를 연결하거든요 그리고 스틱 갖고 탐침하듯이 푹푹 찍으면서 가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는 저희가 매일 다녔던 길이거든요. 다녔던 길인데 한 3일 동안 폭설이 내려서 등반 안하고 쉬고 있다가 날씨가 좋아져서 다시 등반을 재개해서 하다가 하니까 매일 다녔던 길이니까 이제 발자국 표시가 있고 표시를 눈에 꽂아놨었거든요. 평소 그동안 다녔던 길이니까 전혀 의심을 안 했던 거죠.”
경험은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그렇지만 경험이 실패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곳곳에 크레바스가 있겠죠. 다녔던 길이라 방심해서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겠습니다. 그래서 곳곳이 아픈 내 몸도 나를 따라주겠죠. 내 몸이 탈이 나면 이도저도 없겠죠.